prologue, 바깥, 서성거리다, 만나다 

 

 

 

소설가 金 飛

 

 

 

 

 

 

생각해보면 언제나 누군가의, 어딘가의 '()'이 그리웠던 것 같다. 따스하고 훈훈한 공기 속에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이 있는 집 안, 정다운 친구들이 웃으며 맞아주는 학교 안, 사랑한다고 더듬거리며 두 팔을 벌리는 누군가의 품 안.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살던 고향집은 방 안에서도 자리끼가 꽝꽝 어는 낡고 버려진 집이었고,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학교 안에서 나는 언제나 그들과는 다른 '이방인'이었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의 품에 안긴 것도 겨우 마흔이 되어서였고.

언제나 바깥을 서성거리는 느낌은 거대한 바다에 던져진 것만 같다. 아니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앉아있는 광장 속에 벌을 서듯 혼자만 두 팔을 들고 서 있는 느낌이거나. 안에서 들어오라는 손짓도 조롱처럼 느껴지고, 어서 여기 앉으라 내미는 자리도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은 불편함이다. 그럴 필요 없다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더욱 더 고립을 부추기고, 말없이 건네오는 손길조차 진심의 표피처럼 징그럽기만하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으니 그 시절의 소외가 추동시킨 것들을 담담하게 나열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나를 내려놓지 않고 부유한 채 살아가겠다는 고집은 그 시간들의 흉터인지도 모른다. '담담하다'고 말해놓고 심장 밑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는 그저 평온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듯하고.

 

어딘가의 안쪽은, 그렇게 언제나 바깥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곳에 내가 있음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 생활을 이어가던 경기도에서 부산에 내려온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산이 아닌, 부산의 외곽도시 양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나는 어차피 양산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산의 근처라고 이야기해야한다. 내 소설 '빠쓰정류장' 속 주인공인 '리브'가 용문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결국 양평의 근처라고 말해야했던 것처럼.

게다가 대부분의 모임들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보니, 부산은 양산이라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보다 훨씬 더 가깝다. 고백하자면 일일이 설명해야하는 것이 귀찮아 아예 '부산'이라고 얼버무리고는 중언부언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토록 부산이라는 이름은 명치 끝에 얹힌 밥 한 숟갈처럼 언제나 나에게 생각의 몸을 뒤척이게 했다.

부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래서 더욱 간절해졌을 것이다. 매일 부산에 가면서도, 어딘가 내가 미처 만나지 못한 부산의 얼굴이 존재할 것만 같은 기시감은 2년 넘게 부산을 오가면서도 매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지하철에 앉아서도, 버스에 올라서도 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들은 여전히 낯설고 그래서 설렌다.

물론 나는 짝지(''을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이자, '지팡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물론 우리 커플이 서로를 부르는데 쓰는 말이기도 하고.)의 손을 붙들고 두어 번 갈맷길을 걷거나 못 가본 관광지를 다녀보기도 했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에게 부산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안내인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닌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부산의 온전한 속살을 마주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어차피 내가 마주한 것은 나와 똑같은 관광객들이거나 스스로의 정체성은 숨긴 채 열심히 걷고 있는 누군가, 혹은 그들 앞에 뻗은 무수히 많은 길들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없는 것을 기다리며 혹은 찾으며, 이렇게 애타게 부산이라는 이름을 연거푸 중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부산을 알고 싶다. 부산을 만나고 싶다. 부산이라는 이름을 휘장처럼 두른 번쩍거리는 곳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숨결이 화석처럼 새겨진 곳들에 (괜찮다면)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고 싶다. 물질 문명이 쌓아올린 시대, 자본과 돈이 중심이 되어버린 시대. 어쩌면 사람들은 주목받고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바깥으로 밀려나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물질의 화려함에 이끌린 우리들에게, 소외되고 버려진 바깥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절실히 필요한 뉘우침의 시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의 중심이 아니라, '바깥'을 서성거리기로 한다. 화려하고 번뜩이는 마천루의 풍경들이 아니라 모두들 등지고 서있는 그곳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기고자 한다.

 

몇 개의 마을이 될지, 내가 만나게될 시간이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나는 기껏해야 괴상한 취미를 가진 관광객들 중에 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최대한 그들의 삶을 훼손하지 않으며 누군가 쏟아버린 물자국처럼 시커먼 바닥 위에 흩어졌다가 잠시 잠깐의 햇살 속에 말끔하게 말라버리고 말겠다. 매번 들고다니던 카메라도 내버려둔 채, 이번에는 작은 휴대폰 카메라에 그곳의 모습을 담을 생각이다. 그만큼 사진의 품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겠지만 벽 위에 남겨진 누군가의 서툰 낙서가 때로는 그 어떤 명화보다 아름답게 보이듯, 나는 나의 흐릿하고 모호한 기록이 부산이라는 도시에, 풍경에, 그리고 그 속에 삶들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일 수도 있고 때로는 넉 장 혹은 다섯 장의 사진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내게 허락한 것임을 겸허히 깨달으며 부산이 살아있는 부산의 '바깥'으로 짧은 여행을 시작하고자 한다.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남쪽나라.

그 바깥에는 내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

 

 

20096월 부산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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