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by 김비)




3회: 각혈하는 몸이란 무엇인가

 

 

 

 

윤인로

 

 

 

1) 단편 「지도의 암실」에 나오는 한 대목, 묵시적 끝의 통찰. “태양은제온도에조을닐 것이다 쏘다트릴것이다 사람은딱정벌러지처럼뛸것이다 따뜻할것이다 넘어질것이다 색깜한피조각이뗑그렁소리를내이며 떨어져깨여질것이다 땅우에눌어부틀것이다 내음새가날것이다 구들것이다 사람의피부에검은빗으로 도금을올닐것이다 사람은부듸질 것이다 소리가날것이다/ 사원에서종소리가걸어올것이다 오다가여긔서놀고갈것이다 놀다가가지안이할것이다.”(2: 154) 지도 제작술의 근대를 암흑의 암실로 인지하는 묵시적 힘. 그것은 가시지 않고 보존되는 사원의 종소리, 매회 매번으로 지속되는 신의 조종소리로 번지고 퍼진다. 증식하는 조종소리. 거기에 가브리엘 천사를 가브리엘천사균으로 적었던 이상의 근거와 맥락이 있다. 각혈의 아침중 한 대목을 보자.

 

별이 흔들린다 나의 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어릴 적 사진에서 스스로 병()을 진단한다// 가브리엘천사균(天使菌) (내가 가장 불세출의 그리스도라 치고)/ 이 살균제(殺菌劑)는 마침내 폐결핵의 혈담(血痰)이었다(?)(1: 208)

 

이상은 야만적인 법률을 침식하는 광부를 세균이라고 표현했고, 속이는 법의 저울을 달아 재는 신의 저울은 대천사 가브리엘의 것이었다. 가브리엘이 광부/세균과 하나의 계열체를 이루는 것은 법에 대한 기소과정 속에서이며, 그런 사정을 응축한 말이 가브리엘천사균이다. 이상에게 균(), 세균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상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다. 세균학의 창시자 로베르토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했던 1882년 이래 세균은 병원체(病原體)’였다. 그것은 의학 사상의 패러다임만 바꾼 게 아니라 정치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사고의 틀도 바꾸었다. 병든 국가를 치료해야한다는 말, 사회의 암적 존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일상의 말에서 드러나는 건, 그 말들이 정치의 문제를 제1원인을 찾는 병원체의 사상에 근거해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학적 사상 속에서 국가의 암적 존재는 반드시 있어야만하는 것이 된다. 없으니까 없다고 진단되는 게 아니라 늘 개발되고 발굴되어야만 된다. 병원체라는 의학적 사상은 정치적 데마고기의 힘이다. 이상에게 세균은 병원체가 아니었다. 이상에게 세균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었다. 병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정치적 이면을 투시했던 이가 이상이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 어째서 그런가.

 

2) 이상은 결핵균이 사는 장소로서의 자신의 몸을 진단하는 의사들을 곳곳에서 신성의 이름으로 언급한다. “의사믿기를 하는님같이하는 그”(병상이후」, 3: 140), “예언자”(병상이후」, 3: 139), “반왜소형(胖矮小形)의 신()”(오감도 5호」, 1: 90), “하이한천사”(내과」, 1: 156), “()베드로”(각혈의 아침」, 1: 209)가 그런 예들이다. 과학적인/절대적인 의학적 지식을 위임받아 대행하는 의사의 진단과 치료란 그 자체로 신적 권능을 지닌 것이다. 그들의 진단은 병의 근본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원래 하나의 원인을 확정지으려는 사상이야말로 신학형이상학적인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141] ‘의사가 곧 성직자라고 했던 건 계보학의 빛으로 계몽된 근대의 암실을 비추었던 푸코였다. 이상이 자신의 몸을 결핵균의 감염으로 진단하던 의사를 신성의 이름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의사야말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힘의 절대적 주체가 되는 과정을, 그와 동시에 의사 앞에 앉은 이가 진단과 치료의 단순한 대상으로 되는 과정을 문제시했다는 것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이상에게 의사는 사목(司牧)하는 목자였으며, 환자는 의사라는 목자의 보살핌과 계도를 치료와 구원의 아우라 속에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신자였다. 이상은 의사와 환자의 그런 관계 속에서 의학적 형상-질료 도식으로 된 근대성의 위-(-)를 투시했다. 병의 근본원인을 찾는 의사/목자의 진단과 구원의 과정은 그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 병의 발생과 등가적인 것으로 구성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원인이 먼저 있어서 병이 발생된 게 아니라, 그 병을 병이라고 진단하고 확정하기 위해 원인은 사후적으로 그 병과 등가적인 것으로 끌어올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성한 제1원인을 찾는 병원체의 사상은 세속화된 신으로서의 화폐장치의 발생 및 운동과 상동적이다. 풀어 말해, 등가화될 수 있는 것들이 먼저 있고 그 다음으로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가 생긴 게 아니라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가 등가화될 수 없는 것들을 등가화될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을 확립해간 과정과 병원체의 사상은 유비적이다. 원인과 결과라는 하나의 계열 안에서 등가적인 것으로 될 수 없는 병원체와 병은 의학이라는 신학적 프로파간다에 의해 등가화되는 것이다. 병원체라는 사상은 의학 안에서 이뤄지는 화폐적 등가화의 과정이다. 그 의학적/화폐적 전도와 전치를, 그 유혈적 과정의 재생산을 보증하는 병원체의 사상을, 세균의 이데올로기를, -계에 봉헌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균을 살균(殺菌)’하는 일. 줄여 말해 세균이라는 제1을 박멸시키는 일. ‘가브리엘천사균이라는 살균제가 그 일을 행한다.

 

3) 이상에게 병이란 통계화(census) 가능한 상태로서의 국세(國勢)를 증진시키기 위한 내치의 중심요소로서의 의료시스템에 의해 진단분류되는 것이었다. 병은 어떤 분류표, 기호론적 체계에 의해 존재하며, 그런 한에서 병은 원래 시작부터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143쪽]이었다. 중앙집중화된 의료체계에 의해 분류된 병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이미 언제나 절대적으로 받들어야할 국민건강이라는 의학적/정치적/신학적 의미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다. 자신의 병에 대한 의사의 진단행위에서 이상은 그렇게 분류된 의미의 위압성을 인지했다. 이상이 스스로 병을 진단한다.’라고 적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히스테리의 몸이 의미의 질서에 한 조각, 한 지대의 시니피앙스-결여를 관철시키는 정치적 비판의 몸이었듯, 이상의 자기 진단된 병든 몸 또한 그러하다. 앞서 인용한각혈의 아침」에서의 가브리엘천사균은 각혈한 이상이 자신의 피와 가래에 섞인 폐결핵균을 표현한 것이다. 그 자기 진단은 그 자체로 의학적/정치적 병원체의 사상이 만든 의미의 매트릭스에 하나의 결여와 구멍으로서 발생하는 시니피앙스-결여(a-signifance)이며, 그것의 수행이고, (‘a-’)의 융기이자 기립이다. 그때 이상의 결핵은 국세의 내치에 봉헌하는 의미의 카테고리를 절단하는 병이 된다. 그때 이상의 폐결핵균은 세고 재고 쪼개는 저울로서 임재하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된다. 그렇게 이상의 병은 표준적 분류법을 깨고 그 바깥을 개시하는 신학적/정치적 비판의 의미를 획득하고 구성한다. ‘책임의사로서 스스로를 진단하던 진단 0:1의 소멸과 파국의 그 제로, 그 공백은 이미 좌표 바깥을 향해 있는 의미로서의 병의 한 사례이기도 했다(1회 연재분 참조).

 

4) 앞서 인용한 얼마 안되는 변해에서 문제의 별빛을 채광하던 그 광부, 파국의 파편들을 채집하고 수집하던 그 광부로 돌아오자. 그는 별빛의 광산을 채굴하는 자다. 그의 그 채굴은 폐허는 봄”(1: 200)이라고 말하는 자, 폐허로서의 봄의 도래를 기다리는 자가 수행하는 굴착과 한 계열을 이룬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나는 흙을 판다 // 흙속에는 봄의 식자(植字)가 있다// 지상에 봄이 만재(滿載)될 때 내가 묻은 것은 광맥(鑛脈)이 되는 것이다 (…) 봄이 아주 와버렸을 때에는 나는 나의 광굴(鑛窟)의 문을 굳게 닫을까 한다.”(1: 201) ‘을 파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묻은 자. 지금 그는 자신의 그 모든 것이 흙속에 있는 폐허로서의 봄의 파편들과 혼재되는 시간 속에 있다. 광부가 별빛을 채광하고 수집하듯, 그는 흩어진 봄의 편린들을 그러모아 재배열함으로써 의미를 현현시키는 식자공이다. 이상은 산촌여정에서 낱글자들로 성경을 제작하고 있는 식자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바 있으며, 그런 한에서 봄의 파편들로 구성되는 그 의미란 신성과 결합해 있다. 식자공/광부는 흙 혹은 지상, 이른바 대지의 법과 의미의 질서를 굴착하는 자다. 다시 한 번, 그는 지구를굴착하라”(1: 77)는 정언명령을 따르는 지하생활자였다.

 

5) 이상이라는 광부는 임박한 폐허로서의 봄이 대지에 쉼 없이 누적되고 적재될 때 자신이 굴착한 지하와 거기에 묻은 자신의 모든 것이 빛들로 된 광맥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폐허라는 봄, 거듭 도래중인 그 파국의 봄이 이미-벌써 아주 와버린 것이 되었을 때, 다시 말해 그 봄의 임재가 완료완결완수된 사태로 마무리되고 말 때 그는 자신의 그 지하라는 장소, 광굴이 봉쇄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에게 봄이란 무엇인가. 매번-매회 도래하는, 항구적으로 임재하는 메시아적인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광부는 최후의 종언을 기다리는 사도다. “폐허가된육신을 가진 사도, “갈갈이 찌어진 사도(使徒)”. 풍마우세(風磨雨洗)로 저절로다말라 업서지고”(3: 58) “마멸되는 몸”(1: 112). 이상은 앞서 폐허는 봄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하나의 계열체가 만들어진다. 폐허=, 폐허=, 폐허===메시아적인 것. 폐허는 이상 자신의 몸이기도 했다. 그 몸이 곧 봄이다. 그 봄/몸이 곧 메시아적인 것이며 제헌적인 것이다. 갈갈이 찢어진 몸, 사도의 몸, 사도적 몸이 법을 기립시키고 재정초하는 장소가 된다. 그렇게 몸이 폐허가 되고, 찢어지고, 다 말라 없어지고, 마멸된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이건 () 신의 심판과도 같다. 신은 사라지지만, 그 뒤에 자기의 심판을 남겨둔다.”[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 31쪽] 이상이 말하는 최후의 종언’, 그 신의 심판은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가. 매번의 사라짐을 통해 매회 도래한다. 부과된 법의 지상에서 거듭 사라짐으로써, 다시 말해 관리되는 의미의 대지를 굴착해 만든 지하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고 보존함으로써 매회 도래하는 게 최후의 종언이다. 얼마 안되는 변해의 마지막 한 대목은 폭열(爆裂)하는 몸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몸은 무언가를 분만하는 중이다.

 

그는 아득하였다./ 그의 뇌수는 거의 생식기처럼 흥분하였다. 당장이라도 폭열할 것만 같은 동통(疼痛)이 그의 중축(中軸)을 엄습하였다./ 이것은 무슨 전조인가?/ 그는 조용히 사각진 달의 채광(採鑛)을 주워서, 그리고는 지식과 법률의 창문을 내렸다. 채광은 그를 싣고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몇억의 세포의 간극을 통과하는 광선은 그를 붕어와 같이 아름답게 하였다./ 순간, 그는 제풀로 비상하게 잘 제련된 보석을 교묘하게 분만하였던 것이다./ 그는 월광의 파편 위에 쓰러졌다.(3: 158)

 

폭발해서 찢어질듯 쑤시고 욱신거리는 몸. 이상에게 자신의 그런 몸은 어떤 전조(前兆)’로 인지된다. 그 기미 혹은 징후는 파국과 끝을 표현할 때 인유되던 과 그 빛들을 그러모으는 광부의 이미지에 이어진 것이다. 세계의 끝 속에서 지식과 법률에 의해 관리되고 구조화된 의미의 질서는 그 문을 닫는다. 법의 암전, 의미의 폐절. 이상이 말하는 전조가 그와 같다. 별과 달의 빛들에 실려 있는 빛나는 몸, ‘-섬광’(낭시)이 바로 그 전조를 실현한다. 당대의 전시상황을 지시하는 다음과 같은 한 구절, “이군웅할거를보라/ 이전쟁을보라/ 그들의알력의발열(發熱)의한복판”(1: 44)에서 이상은 비밀심문실에 구속된 채로 경찰의 취조를 받고 있는 피의자였다. 그 경찰은 이상에게 말한다. “「물론너는광부이니라/ 참고 남자의근육의단면은흑요석과같이광채나고있었다한다.”(1: 75) 전시의 체제로 도래중인 파국, 임박한 훼멸의 시간들을 캐고 수집하고 있는 광부의 몸은 빛으로 되어있다. 몸의 세세한 모든 곳으로 광선이 통과하고 있는 광부. 그는 빛의 인간이며, 그런 한에서 선에관한각서에 나오는 광속의 인간이다. 그가 지금 분만하고 있는 것, 그것이 보석이다. 분만된 그 보석은 어떤 의미의 계열체를 이루고 있는가. 이 마지막 질문을 위한 또 하나의 분만. “창부가 분만한 사아(死兒)의 피부전면에 문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암호를 해제(解題)하였다. 그 사아의 선조는 옛날에 기관차를 치어서 그 기관차로 하여금 혈액임리, 도망치게 한 당대의 호걸이었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었다.(1: 191) 무슨 말인가.

 

6) 세리(稅吏)와 창녀. 그들이 가장 먼저 천상으로 들어가리라고 했던 이는마태복음의 그리스도 예수였다. 이상에게 창녀는 때때로 마리아와 결합됨으로써 성창녀(聖娼女)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그녀는 성스러움과 속악함을 분리하는 척도적 기준을 작동 정지시키는 비식별역으로서의 경계 영역을 개시하고 구성하는 자다. 창녀가 분만한 아이는 분리와 분류의 무화 속에서 신성을 갖는다. 정전 바깥의 복음 중 한 대목은 이렇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는 자는 창녀의 아들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도마복음105) 창녀와 창녀의 아이는 표준적이므로 지배적인 분류표 속에서 고아, 과부, 병자, 이방인만큼이나 핍박받고 내몰리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진정한 생명을 봉헌하는 이들을 두고 창녀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말씀(logos)은 분류의 기준과 구획의 척도를 전복시킴으로써 분류표의 바깥을, 좌표 바깥을, 다시 말해 분류불가능한 경계의 장소를, 새로운 법과 생명이 정초되는 대지를 설립한다. 창녀의 아들은 그들척도를 들이미는 자들의 눈과 기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는 새로운 생명기준을 인식한 것이다.”[주원규, 창녀의 아들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http://blog.daum./innovator-bay(2013. 8. 16) 도마복음에 대한 주원규의 강해를 통해 그의 소설들을 예감하게 된다.]

 

7) 이상의 창녀가 분만한 아이는 죽은 아이로 드러나되, 피부 전면에 문신이 새겨진 아이로, 몸 전체가 암호인 아이로 드러난다. 그 암호와 그 암호를 해독하는 는 벨사살의 연회장 뒷벽에 적혀있던 신의 암호 같은 문자와 그걸 해독하는 다니엘에 겹쳐진다. 몸피에 새겨진 그 암호라는 것이 핍박받았던 선조들이 기관차와 싸워 승리했던 자들임을 고지하는 내용이었던 한, 그 암호는 벨사살을 저울에 달고 그 왕국을 쪼갰던 신의 문자와 상관적이다. 무슨 말인가. 선조들과 기관차의 충돌이 문제이다. 알려진 한 대목.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 356쪽]이상이 말하는 선조들은 혁명이라는 기관차가 견인하는 발전의 역사, 그 직선적 레일을 절단한다. 선조들은 그 기관차의 승객이지만,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겨 그 기관차의 엔진을 끔으로써 그 기관차의 속도를 거스른다. 비상 브레이크로 제동을 거는 그들 억압받던 선조들. 이는 삶의 진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주의적인 입장과 파시즘의 공모 및 묵계를 기각하는 맥락에서 제출된 키워드들이다. 날개의 다음 한 문장은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의 혼미와 혼동과 퇴락을 지적하는 것일 수 있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2: 286) 더불어 이상은 3인터내슈날당원들한테서 몰매를 맞는 상황 속에서 지구의 재정이면을 엄밀자세히 검산하는 기회를 얻었다.”(1: 190)고 쓴다. 혁명의 기관차 속에서 이상과 이상의 창녀가 분만한 아이와 그 아이의 선조는 진정한 비상사태의 도래로서 함께 발생하는 중이다. 그들의 한 손은 혁명의 기관차가 주재하는 직선적 발전의 체제, 그 돌벽에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쓰면서,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직선의 레짐을 통째로 세고 재고 쪼개는 최후적 저울을 들었다. 저울 든 그들은 매번 매회 창녀의 아이로서 분만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폭력적 질서에 의해 내팽개쳐진 분란과 불화의 , 그리스도의 그 칼을 다시 집어 드는 자들이며, 화평과 조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신의 혀로 발화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그 작은 칼(小刀)이 거듭 다른 칼들을, 다른 그리스도들을 분만한다. “내동댕이쳐진 小刀는 다시 小刀를 낳고 그 小刀가 또 小刀를 낳고 그 小刀가 또 小刀를 낳고 그 小刀가 또 小刀를 분만하고 그 小刀가 또……”(1: 155) 칼이 칼을 분만한다. 심판이 심판을, 최후가 최후를 분만한다. 그 항구적인 의 분만들 속에서 누리고 구가하는 새로운 생명이 거듭 탄생한다. 이상이 말하는 분만된 보석의 뜻과 의지가 그와 같다.

 

 

 

..............................................................................................................

 

 

윤인로문학평론가하나의 체제가 스스로를 신성한 것으로 고양시키는 과정에 대해그리고 그 과정과 동시적으로 구성되는 주체들의 또 다른 신성한 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계간<오늘의문예비평>, 격월간 <말과활>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