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 아프꼼 제2회 월례 연구/발표회

  <회로들 속에서: 미디어, 세대, 정체성>



이번 월례 연구/발표회는 과학기술중점대학교 페미니즘 연합모임인 <페미회로>의 강미량님과 테크놀로지-인문학 연구자인 임태훈님의 발표를 듣고자 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연결 가능한 “개방-회로” 위에서 서로 경합하고 발산하며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연합-회로와 일방향적 회로에 찍거나 찍히며 폐쇄 회로를 맴도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과 포착되지 않는 만남을 발신할 수 있을까요?

연구와 만남이 있는 월례/발표회에 오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시: 2017. 08. 18. 금. 오후 2시
장소: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국제관 B5-0409

 

 

연구모임 아프꼼 제 2회 월례 연구발표회

   회로들 속에서: 미디어, 세대, 정체성

 

2017. 08. 18. PM 2:00~5:00

동아대 부민캠 국제관 B5-0409

14:00~15:20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페미회로

15:20~15:40

휴식

 

15:40~17:00

<폐쇄회로 TV 키즈>

임태훈

 

 

<‘로컬-대안-연구장’을 위한 구상>에서 발표될 네번째 글 소개입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문화적 재현: 해방 이후부터 50년대를 중심으로>

(<문학3>, 2017년 2호 게재)


 

장수희

 

 

 

 

 


 

작년 대구의 희움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은 1주년 기념으로 문옥주 20주기 추모전 <옥주씨,>라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부대행사로는 문옥주 여사의 일대기를 쓴 모리카와 마치코 씨의 강연과, 키리타니 나츠코 씨의 낭독극이 있었다. 모리카와 씨도 문옥주 여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왔던 대구에서 문옥주 여사와의 만남과 증언들, 그리고 그 증언을 기록하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고인을 생각하며 눈물이 고였습니다. 연기자인 키리타니 나츠코 씨는 문옥주 여사의 증언을 낭독극으로 공연했지요. 키리타니 씨도 낭독을 하며 그 공간에 ‘옥주상’이 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눈물을 잠깐 흘립니다.
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문옥주 여사의 삶이 일본어로 담담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벅찼습니다. 문옥주 여사의 경험이 일본어로 전해지고, 일본어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고, 그 한국어가 돌고 돌아 나에게 도착합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은 각기 다른 삶의 결과 서사와 말과 문장으로 우리에게 도달해왔습니다. 소설은 그 한 방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의 삶이 재현된 작품의 ‘세계’와 나에게 그녀들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도착한 ‘세계’는 간단하게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요? 1990년대의 증언과, 해방 직후 소설의 세계,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발표되는 일본군‘위안부’를 재현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의 세계. 이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변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우리에게 발견되고, 또 발견되지 않았는지는 아마도 일본군‘위안부’ 재현의 계보가 완성되었을 때 다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부감을 가진 일본군‘위안부’들의 삶을 더듬는 것-그것이 이 계보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그 시작을 이 발표에서 해보고자 합니다.

<‘로컬-대안-연구장’을 위한 구상>에서 발표될 글의 두 번째 소개입니다. 


 

 

 


<스피커는 광장에서 촛불이 꺼지고 나서 들려온다>

(<문학3>, 2017년 2호 게재)

 


신현아



 

 

 

 

 

 

 

 

 

 

 

 

성숙한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이뤄낸 광장의 이야기는 언제나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얼마나 창의적인 집회 문화를 창조했는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런 광장의 서사가 반복될 때 기입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고, 설명이 되지 않는 현장이 있습니다. 어쩌면 광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이야기와 현장은 착취당한 것이 아닐까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가덕도의 투쟁의 역사는 왜 어리석게 속아서 미안한 이야기로만 재생산 되어야만 하는지, 왜 광화문 광장이 막을 내리고 누군가는 광화문 광고탑의 고공으로 올라가야만 했는지, 이를 지역에 축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대의와 성명서로 증명되어야만 하는 중앙의 연대가 아닌, 우리 동네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투쟁 이웃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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