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 아프꼼 월례 연구/발표회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 젠더/계급/아이덴티티


 

이번 연구/발표회는 일본의 문학연구자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의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를 중심으로 열리게 됩니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주변부의 존재들은 매번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어 왔습니다. 그 중 '민중'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중요한 의미가 쌓여 있는 역사적인 이름입니다.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는 1930년대부터 1950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가 구축되는 시기 속에서 '민중'이라는 이름이 호명될 때 발생하는 권력과 정체성의 역학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 저작에서 주목하고 있는 1950년대 일본 노동자들의 서클운동을 1970-1980년대 한국노동자의 활동과  겹쳐 읽어보고 매번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지만 그 이름 바깥으로 나아가려던 주체들, 다스려지지 않는 존재들의 역사적인 역능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9월 아프꼼 월례 연구 발표회에서는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의 <여자공장노동자의 글짓기(女子工場労働者の綴方 이영재 역)>와 <'소녀'들의 이야기의 행방(少女たちの語りのゆくえ 신현아 역)>을 다룹니다. (riss에 접근이 어려우신 경우 메일 주소를 댓글오 달아주시면 보내드릴게요~)

<논문 pdf 다운 링크>

여자공장노동자의 글짓기: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f721230d30ec11bec85d2949c297615a

소녀들의 이야기의 행방: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6ae4efbb207f47efd18150b21a227875

 

일시: 2017년 9월 28일 오후 6시 30분
장소: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A705

 

 

 

<테크네-인문/테크 프로그램 개발> 연구팀, 동아대 링크 플러스 사업단, 학부생 프로그램 참여 피드백 노트연구모임 아프콤(off-com) 월례발표(2) 회로들 속에서 : 미디어, 세대, 정체성




'원래 그러함'의 그렇지 않음에 대하여




박채린






1. 페미회로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확정되지 않는 다양성의 정체성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근대의 나혜석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여성 예술가들은 이상한 여자취급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페미니즘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시간이 지나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일상화 된 혐오발화의 세상에서, 물 밑에 잠겨있던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소위 말하는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을 통해 그간 문제시 되지 않았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페미니즘적 문제상황들이 폭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에 예술계, 문단계의 성폭행을 고발하는 해시태그운동이 일어나면서 원래 그쪽은 그래원래 그러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책이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놓이고, 여러 페미니스트 단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적은 수이지만 여성학과 페미니즘을 다루는 수업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편한 방법으로 페미니스트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취약점이 있다면, 상황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과 지나친 정보의 중앙집중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KAIST, UNIST, DGIST, POSTECH, GIST로 이루어진 이공계 특성화 대학은 그 위치가 지방, 그 속에서도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 학교 간의 교류가 힘들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터넷밖에 없으며, 남녀 성비가 약 3:1이라는 이공계라는 학문적 특성 때문에 여성학 관련된 수업이 거의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페미니즘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는 학문의 영역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진입하기도, 그 속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이 부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 속에서 페미회로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공계의 실력중심주의에 가려진, 그리고 개별의 문제로 환원되어버리는 수많은 젠더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또 다른 원래 그러함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 연합의 페미회로는 인터뷰 프로젝트, 북 큐레이션,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면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한 개의 확정된 흐름이 아닌 여러 개의 흐름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확정되지 않은 다양성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직면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과제는 많지만, 그들이 스스로 취약점을 분석하여 찾아내고 그것을 보안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어서, 쉽게 생기고 사라져버렸던 여타 다른 페미니즘 단체들과의 차이점으로 둘 수 있다.

 

2. 폐쇠회로 Tv키즈 CCTV공시족- 죽어버린 공부의 거대화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개개인의 삶을 보안이라는 명목하의 더욱 세밀하고 정확한 감시 속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 또한 충족시키기 위해서 엄격한 출입보안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는 현재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들이 대거 집중되어있는 공무원 시험 시스템 속에 파고들어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업종의 기업이 이윤을 취하는 기이한 시스템을 형성시켰다. 아무리 좋은 명문대를 나와도 결국에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길로 들어서는 청년, 점점 낮아지는 퇴직의 나이에 제 2의 안정적인 직장을 준비하려는 중장년층 등 공무원 시장은 포화상태를 넘어서 이미 폭발의 상태에 도달해있다. 이러한 상황은 개개인의 합격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더욱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고자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생활을 감시체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장난을 가장한 합격자 쳐내기가 만발하는 흐름 속에서 공시생들은 닭장 같은 한 칸의 책상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사각형의 전자화면, 사각형의 책만 보면서 지내는 것이다.

커질대로 커져버린 공무원 시장의 악순환은 묶여있는 청년들의 엄청난 기회비용만을 보고서 한 번에 끊어내기도, 어떠한 방안을 내세우기도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불안정해지는 사회에서 안정적인 것을 찾고자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과포화의 상태는 대체할 길을 만들어 낼 새도 없이 폭발해버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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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딱딱한 분위기에서 발표를 하는 형식인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시작을 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는 분위기여서 놀람 반, 안심 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루는 주제들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이어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직면해 있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한번 더, 그리고 또 한번 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약 학교 수업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다룬다면 현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현실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나아갈 길을 약간이나마 같이 모색해 나가는 방향으로 흐름을 정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미래는 주체적으로 찾아가야 함이 맞지만, 희미한 가이드 라인 조차 없는 여백의 상태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공계열의 페미니즘 수업은 그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그러함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있는만큼, 그것이 왜 원래 그런것이 아닌가 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즐겁고 신선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번 만남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연구모임 아프콤(off-com) 월례발표(2) 

회로들 속에서 : 미디어, 세대, 정체성

2017년 8월 18일_부산





페미니즘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분야를 막론하고 페미니즘이 붐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미회로>는 과학기술계 내의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는 모임이다. 결성 초기엔 페미니즘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과학을 한다는 것의 정체성이 너무 강한 공간’이어서 대개 ‘실력으로 인정 받으면 된다’는 논리가 절대적으로 발휘되는 탓에 젠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공계 내의 성차별 사례들을 모으지 않으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전달하고 증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기에 연합을 통해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구조가 내부적으로 워낙 조밀하게 나뉘어져 있고(실험실, 분반, 동아리 등) 소문이 너무 빨리 퍼지며(‘쟤 매갈이라던데?’) 페미니스트로 오인 받지 않게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연대가 무척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과학기술계의 상황과 잘 어울리지 않은 형편과 넷페미의 논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는 조직적인 조건 또한 있었던 터라 <페미회로>의 활동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쯤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슈파이팅이나 이슈메이킹보다 시급한 이공계 내의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주류 페미니즘 진영의 중요 이슈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발표 현장에서 현재 페미니즘 운동의 특징과 문제들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무척 많은 의견들을 이끌어내었다.


지역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여성학 관련 수업 및 세미나를 접하기 어려운 형편과 불균형한 성비. KAIST 마고, POSTECH 포스텍 페미니즘, UNUST 오프코르셋 등 지역의 과학특성화대학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조직적 움직임과 연대를 모색하게 된 것은 2015~2016년에 불거진 SNS 상의 페미니즘 담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디에서 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각각의 지역이 달랐던 탓에 연락을 취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페미회로>의 회의 및 기획이 주로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지역 간 거리 차이와 구성원 절반이 대학원생이어서 실험 일정 때문에 오프라인이 주가 되면 오히려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악한 여건 속에서 활동을 하는동안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주요 활동 무대와 형식이 온라인이긴 해도 SNS 상의 광역 연결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고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은 온라인 운동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회로>의 지리적 특성상 지역에 거점을 두고 할 수 있는 활동과 지역 이공계 중점 대학의 삶(들쑥날쑥한 실험실 스케쥴, 주변 대학과의 교류 미비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약적 조건’이 외려 모든 활동은 유연해야 한다는 내부 원칙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페미회로>의 주요활동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삶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여성과학기술인 배제문제와 성차별적 과학지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젠더서밋 스토리펀딩’, ‘매달 두 권식 SF, 페미니스트 STS, 혹은 과학과 젠더 관련 책을 읽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북큐레이션’, 이공계 대학 내에서 겪는 성차별을 기록하는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이슈를 정해놓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나간다고 한다. ‘성평등을 코딩하라’ 상영회나 여성과학기술인 배제 문제를 거론한 ‘March for Science’와 같은 활동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비교적 짧은 이력에 비해 아주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은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활동이 다 다르기 때문인데 조직적인 운동의 경험이나 학습이 없었던 이유로 매번 달라지는 활동이 외려 혼란스럽게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스스로의 활동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정체성 찾기 회의’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었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자의 입장을 공유했던 그 시간이 무척 흥미 있게 들렸다. 페미니즘 운동이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강해 국지적이고 개별적인 이슈를 귀담아 듣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페미회로> 내부의 회의들 속에서 구체적인 이력을 듣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페미회로>의 활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학술대안운동의 형식과는 다른 운동체이자 연대체의 사례로 읽혔다. 기존의 코뮨운동이 대의를 모임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개별적인 관심사와 욕망을 인정하면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페미회로>가 자유주의자들의 느슨한 연대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공계 대학 내의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조리돌림과 폭력, 조직 내에서의 왕따라는 직접적인 폭력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코뮨적 이력이 전혀 없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페미회로>의 활동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평가하는 비평 또한 이들의 정체성을 전공과 일치시켜버리거나 환원해버리는 측면 또한 있다. 1시간동안 ‘막힘없이, 꾸밈없이, 체계적으로’ 이어졌던 <페미회로>의 발표는 기왕의 것과는 조금 다른 연대체이자 운동체의 중요한 사례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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