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꼼 3차 월례 연구 발표회
나카야 이즈미, 《수탈당하는 여성표상》 발표 참관 후기
박 수 진
지난 금요일, 집-학교와 그 외–피씨방(매우 중요)–집의 패턴을 거의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제게 좋은 자리가 있으니 가자! 하고 끌고 나가준 여러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동아대에서 있었던 아프꼼 월례 연구 발표회에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발표회가 있으니 시간이 괜찮다면 가자는 권유를 받은 것은 한주 전, 그때라도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여쭸더라면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여유로울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애살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던 탓에 그날의 발표 주제가 해외 연구 소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동아대로 출발하기 한 시간 전쯤이었으며, 심지어 그 해외 연구자께서 직접 오셔서 발표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세미나실에 들어간 직후였습니다. 덕분에 그 자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름의 준비(?)를 하셨을 다른 분들과 달리 전 자리에 앉은 직후부터 아차……. 논의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는지……. 아득함과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정작 발표가 시작되자 그다지 의미 없는 걱정이 되어 사라지게 되니, 나눠 받은 요약지에 쓰여 있던 차례에 따라 충분한 설명을 곁들여주신 발표자와 곁에서 발표자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공들여 통역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신현아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논의의 시작은 ‘생활기록의 필자들’, 즉 어린이의 작문 문체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공들에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색채가 미디어를 거치면서 일어난 맥락의 삭제로 인해 성장 도중의 주체로 읽히게 되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이 글쓰기는 단순히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쓰기 공동체 내에서의 대화가 전제된 글쓰기였기에 쓰인 것 이상의 출구 모색을 위한 주체의 치열한 과정이 있었을 테지만, 이것이 미디어를 거치고 비정치적인 글이 되는 과정은 마치 그렇게 열심히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갔을 여공들이 결혼 후에는 자신이 그 이전에 해온 많은 주체적인 것들이 삭제 당한 채 가정이라는 테두리 내에 속박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의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비정치적인 것으로만 읽히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그들을 성장 도중의 주체로만 보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이 얼마나 폭압적인 것인지는 이어서 나온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발표자께서 요약자에 적어둔 대로, 말 그대로 이야기의 수탈이었습니다. 사실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했는데(최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호 스트레인 독스〉를 통해 또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믿고 일기장을 보냈던 아리아케 시즈의 이야기를 가로채 소설로 바꿔 쓰며 서술자의 이미지를 섹슈얼리티와 접속시킨 행위는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성장 과정 중의 여성을 정지시키고 그 순간을 박제하고자 하는 기이한 욕망, 즉 소녀에 대한 기분 나쁜 집착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중문화물을 적지 않게 접했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역시 이런 건 단순히 예능 사업이나 애니메이션 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또 이처럼 여성을 한 자리에, 한 시간에 붙들어 두고자 하는 시도는 일본의 문제만도 아닐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발표자께서는 아마도 ‘소녀’라는 이미지가 현대에까지 문제적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서사 장르인 애니메이션을 가져오셨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텍스트의 선택에 있어서는 조금 많은 부분을 간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일 겁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은 이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엔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시장이기는 하지만(그런데 또 알 수 없지요, 넷플릭스가 들어간다니까. 예토전생 기대해봅니다.), 그래도 한때 ‘소녀’만이 아니라 ‘소년’을 만들어내는데도 크게 일조했던 서사 장르입니다. 이데올로기가 젠더의 선을 가르는 데 있어서 첨단의 도구였던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간이 박제된 ‘소녀’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하셨던 발표자의 시도는 긍정하지만, 동시에 오타쿠 계 내에서의 반성과 거기서 비롯된 장르 내외의 대중적 효과가 일본의 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너무 단순하게 읽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발표자의 논의 중에서도 아주 국소적인 부분에 해당하지만 후기에까지 이 부분 때문에 분량을 넘긴 걸 보면 사실은, 제법 곱씹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심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발표 이후에 이어졌던 자리까지 따라간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권명아 교수님과 동아대 선생님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하셨던 다른 연구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선생님들의 문제의식과 다양한 연구 주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가자고 하니까 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제가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몸을 조금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리가 있었던 덕분에 찾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고, 덕분에 제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자리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제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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