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3.6.7.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누가 왜 시작했을까?

  • 지난해 한 지역축제에서 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을 재현한 모습. 경찰의 경범죄 단속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1960~70년대 서구 사회에서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때, 한국에서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이 한창이었다. 80년대 민주화와 더불어 이런 억압적 단속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다 노출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경범죄처벌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풍기 문란'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취향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이런 제도는 사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식민지 시대 조선 사회와 90년대 여성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풍기 문란의 역사를 소재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학을 분석한다.

    국내에서 경범죄 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 이 법은 일제가 조선인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 처벌 규칙(1912년)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10년대 일제의 풍속 통제는 묘지에 대한 관습이나 기생에 관한 것에 그쳤으나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동성애,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미성년자 음주 단속 등으로 광범위해진다.

    이 같은 기조는 해방 후에도 이어져 1960~70년대는 가정의례 준칙, 야간 통행 금지, 장발 단속, 밀주 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 지목된 다양한 문화들이 법적인 규제를 받았다. 저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서구의 퇴폐 풍조에 물든 행태라며 단속한 70년대 경찰 활동이 1930년대 말 일제의 역사적 경험을 계승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국가에 의한 풍속 단속은 식민지, 전쟁, 독재 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 식민성, 근대성, 파시즘과 민주주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풍기 문란 연구에 대한 방법론과 역사, 의미를 소개하며 각 시대별 대표 소설을 통해 풍속의 역사를 분석하기도 한다.

    '음란'과 '혁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풍기 문란과 정념, 정동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이론적으로 아우르고 있어 읽기가 만만치 않다. 저자 스스로 책 서문에 '자료 더미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고백했듯 주장과 개념어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링크: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306/h20130607212725842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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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풍기문란 심판은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를 뜻한다. 이때 풍속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는데, <서화>는 이 풍속의 함의를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화>를 빌려 말하자면, 풍속은 세 개의 바람으로 표현될 수 있다. <서화>의 전체 구성을 토대로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서화> 초반부에서 돌쇠는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산잔등에서 쥐불이 번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풍속을 함축하는 첫 번째 바람은 바로 이 쥐불놀이로 상징되는 풍속(風俗)이다. 즉 이 마을 공동체의 오래된 삶의 방식으로서의 풍속이다. 그리고 돌쇠는 그 쥐불놀이를 보며 왠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두 번째 풍속이며 열정으로서의 ‘풍속’, 즉 정념이다. 들판의 쥐불놀이(風俗)의 붉은빛이 돌쇠의 마음 속 붉은빛으로 옮겨 붙은 것(정념)인데, 이 불을 옮겨다 놓는 것은 바람(風)이다. 이 것이 세 번째 풍속으로서의 바람이다. 이 바람은 들판과 마음 사이를, 오래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 사이를 매개한다. 해서 풍속통제는 이러한 모든 매개체, 즉 미디어, 독서, 만남, 사랑, 전위를 법 앞에 소환한다. 들판과 마음 사이를, 오래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 사이를 매개하는 모든 것은 그래서 풍기문란 재판정에 소환되었던 것이다.

    (본 책, 74쪽)

    풍기문란자들이 자연 상태나 더 나아가 전쟁 상태 또는 비국민의 상태로 규정되는 과정은 이들 자신의 말이 박탈당하고, 법과 담론 헤게모니가 이들의 말을 대신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어와 비언어적인 것의 분할선은 이러한 ‘부적절한 정념의 라인’과 상태들의 차이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로 판정된 자들은 법의 이름으로만 대신 말해진다. 판결문, 범죄기록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 그들은 담론장에서는 사회면 3단 기사나 세태 비평 등에 의해 ‘문제적 집단’으로만 등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라는 규정 아래 비언어적 상태로 위치가 배정된다. 이들의 정념 역시 자신을 규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비언어적 상태를 맴돈다. 결국 이들의 정념은 비언어적 정념의 형태를 띠게 된다.

    (본 책,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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