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소리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 음란과 혁명

2013-06-13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다. 개정령안에는 과다노출, 구걸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그러자 경찰은 “과다 노출 처벌은 원래 있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의 통치가 시민들의 일상과 풍속을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경범죄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이다. 이는 다시 일제가 식민지 백성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처벌규칙(1912)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시기 이후 퇴폐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 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 단속, 밀주 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모호한 법적 규정 아래 다양한 행위와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이 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규제를 받아왔다.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서 식민성, 근대성, 혹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등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결부된 ‘풍기문란’의 역사와 정치학을 탐색하는 책 ‘음란과 혁명’이 출간됐다.

이 책은 풍기문란 제도가 만들어진 일제 강점 초기부터 해방 후 냉전과 탈냉전기에 이르는 방대한 시기를 대상으로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와 이와 연관된 검열, 문화 생산물에 대한 제재 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변화되어왔는지 살핀다. 그리고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이라는 기준이 문화 생산과 주체성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은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면서 오늘날 다시 부활하고 있는 풍기문란 통제의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시민의 일상과 사생활에까지 개입하는 국가와 사회의 통치 구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풍기문란 연구에 대한 방법론과 문제의식을 밝히고, 2~3부는 풍기문란 통제가 시작된 일제시기와 냉전체제에서의 지속과 변화를 다루며, 4부는 일제시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풍기문란 통제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http://www.vop.co.kr/A00000644371.html

 

 


 

함께 보면 좋은 구절

 

  "풍속을 해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풍속 통제의 범위는 시기마다 변화한다. 물론 일제시기 풍속에 대한 통제는 제국 일본과 총독부의 법제에의해 그 영향력을 얻게 된다. 풍속경찰의 작용은 이러한 법의 실행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풍속 통제는 단지 '법'의 작용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 교양이나 적절함 등 이데올로기적인 층위를 통해서도 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풍속 통제의 역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풍속경찰과 관련된 경찰력의 영향과 이와 관련된 법제, 통제 이념의 층위뿐 아니라 이러한 '법'의 통제 이념과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공명하게 되는 조선의 지식인 엘리트층의 풍속 교화 이념 등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본책,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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