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 '음란과 혁명'

2013-06-16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하기 위해 마련한 경찰범처벌규칙(1912)이 현재의 경범죄처벌법의 모태다.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이념과 법제 및 제도의 틀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며 진화 발전해왔다. 식민지 조선의 풍속 통제에 관한 법적 규정은 일본에서 메이지 초기에 만들어진 법적 기준을 토대로 했다.

포괄적 법령이나 상위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새로운 규제 지침이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임의적이고 누적적인 통제 방식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풍속 통제는 식민 지배의 전형적인 잔재라 할 수 있다.

권명아 교수(48·동아대 국어국문학)가 펴낸 ‘음란과 혁명’은 식민지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서 ‘풍기문란’의 역사와 정치학을 탐색한다. 식민성, 근대성, 혹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등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결부해서 본다.

이를 바탕으로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이라는 기준이 문화 생산과 주체성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광복과 종전에도 불구하고 식민성이 온존하고 냉전체제가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국민, 선량한 존재’로 포섭되지 못하고 ‘비국민, 반사회적 존재’로 부유해야 했던 ‘풍기문란한 자’들이 어떻게 국가와 사회의 통제를 뚫고 자신들만의 장치로 역사에 균열을 일으켜왔는지, 또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를 추적하고 성찰한다.

권 교수는 “풍기문란 연구는 통속적으로 이해되듯이 음란물이나 성적 문화 생산물에 대한 통제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이재훈 기자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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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증오 앞에 멈춰서버리고, 사랑의 시간은 황홀경의 순간 속에 봉인된다. 그렇게 사랑의 순간은 덧없는 배신 앞에 속절없이 지난 일로 흘러가고, 생애라는 시간은 자기 분열을 거듭함에도 흘러간다. 이러한 생애의 감각은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추억이 없으며,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생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것은 사랑의 열정과 배신에 대한 증오만이 아니라, 죽은 자의 시간, 죽음 그 자체는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혁명이라는 '역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켜켜이 쌓인 살아남은 자의 생애사의 잔여물을 뚫고 그 밑에 멈춰서버린 죽은 몸의 시간 속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를 《구운몽》에서는 발굴과 고고학, 또는 사면장(死面匠)의 작업이라 일컫는다.

 

 하여 죽음의 발굴을 소명으로 하는 사면장의 일이란, 그 지층 속에서 살아남자의 생애사적인 잔여물들의 더께를 뚫고 들어가, 죽은 몸의 시간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러한 발굴을 통해 죽은 몸속에 멈춰버린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의 지평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죽은 자의 시간이 현재 앞으로 부상한다. 마치 심해에 가라앉은 죽은 자의 몸이 산 자들의 삶의 기슭으로 헤엄쳐 올라오듯이. 삶의 기슭으로 떠오른 죽은 몸, 그 몸은 삶의 기슭에 놓인 생애사적 시간으로 불현듯 출현한 '미지'의 시간이고, 그 '미지의 시간'속에 혁명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혁명의 진실은 삶의 기슭에 놓인 생애사적 시간을 깨뜨리고 심해에서 불쑥 솟아오른 그 죽은 자의 몸속에 있다. 그래서 《구운몽》의 첫머리와 마지막은 삶의 기슭으로 불쑥 솟아오른 죽은 소년의 몸과, 빙하기에서 발굴된 죽은 몸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본책, 245~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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