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색을 통제해 민중을 규율하다

-1970년대 미니스커트 규제 등 일제때 조선인 통치법과 상통

2013. 06. 07

 

1975년 정부의 물놀이 퇴폐풍조 단속 풍경. 국가기록원 제공

 

이 책 표제에서 나타난 두 개 낱말의 연관성을 우선 따져본다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선뜻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라는 부제에서 내용의 일단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도 낯설다. 풍기문란에 관한 연구 결과물을 담은 음란과 혁명의 낯선 이미지가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무거운 연구 결과물이지만, 일그러진 우리 근현대사의 민낯을 특별한 주제와 연결해 보여주고 있어 끈기를 갖고 일독하면 얻을 것이 많다.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 지금 시점에 이르기까지 풍기문란 통제의 변천사를 개괄하는 즐거움도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풍기문란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재생산된 과정은 일본의 식민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하기 위해 마련한 경찰범 처벌규칙(1912년)이 현재의 경범죄처벌법의 모태가 된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이념과 법제, 제도의 틀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면서 진화 발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1920년대 후반 풍경을 살펴보면 이런 것이 나온다. 동성애, 근친 간 성행위,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복권 등의 사행적 행위나 신사·불당·묘소 등에 대한 불경 행위, 만취해서 도로를 배회하는 행위, 미성년자의 음주·끽연, 외설 문서의 유포·판매·진열, 풍속영업 등 이 시기 풍속 통제는 일상 전반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50년대 한국 사회는 취약한 주권에 관한 불안과 직결된 풍기문란이 팽배했다.

   
4월 혁명의 실패와 5·16쿠테타로 상징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관제문화와 이른바 '한국적인 것' 등이 버무려져 풍기문란의 각축장이 됐다고 한다. 냉전체제와 분단, 개발 독재가 공고해진 이때가 풍기문란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실제 이때부터 학생과 청년 세대 문화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등이 떠오른다. 반대급부로 건전가요, 건전 출판물, 우수 영화 등과 같은 관제문화 보급이 급증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후 무엇이 변했을까. 1987년 민주화 이후 풍기문란 통제와 관련한 법제와 정책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1988년에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에서 '장발자'나 '저속 의상 착용자' 등의 규정이 삭제됐다. 그러다 1994년 개정에서는 '장발이나 저속 의상, 문신 노출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가 추가됐다. 그래서 저자는 '통제의 이념과 기본 시스템이 변하지 않은 채 단속이나 통제의 내용만 변화한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 사회에서 풍기문란 통제가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측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부분은 특별히 시선이 간다. 이 책을 통해 풍기문란에 관한 연구가 정치적 주체화와 관련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여전히 이어지는 현실을 또다시 발견하는 것은 무척 아프게 다가온다.

링크: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608.2201520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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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문화-책꽂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3060800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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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1960년, 17세의 소년은 차가운 강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2년 뒤, 그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또 한 소년이 태어났다. 이 두 소년의 죽음과 삶을 이렇게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역사란, 숙명론적 굴레라든가, 또는 서로 간의 일생이 알지 못한 채 어떤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사유가 아닌 합법칙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서로가 옷깃 한 번 스친 적도 없이 죽고(아니, 살해당하고) 태어난 두 소년의 죽음과 삶이 연루되어 있다는 논의는 어떤 인연의 사슬이나 숙명의 굴레 같은 비합리적인 서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물론 그런 숙명이나 인연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4월혁명 이후 냉전체제에서 풍기문란과 관련된 여러 조직과 법제ㆍ제도가 파시즘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장정일/J의 인생과 대비해서 살펴보다 보면 장정일이 1996년 ‘음란범’이라는 이름으로 치욕스러운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은 1960년 한 소년이 살해당하던 그 시점에 이미 ‘정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일이 ‘음란범’이 되어버린 것은, 숙명인지 모른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평생에 걸쳐 장정일/J는 이 숙명을 거스르기 위해 싸워왔지만, 그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 어떤 한 개인 존재에게 삶이란 결사적으로 싸워도 결국 제한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다. 아니, 혹자는 말한다. 세상에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제 할 나름이라고. 그렇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이들에게 삶에는 선택지가 없다. 인생이라는 것, 태어나서 살아가며 걷는 인생길이 이미 태어날 때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인간 존재의 삶의 반경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정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구조이고 체계이고 이데올로기이며 통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어떤 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인생의 무대를 제공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제한된 삶의 반경만을 제공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삶은, 인생은, 그저 정해진 굴레를 맴도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숙명은 곧 사회 구조의 다른 이름이며, 누군가의 삶을 숙명으로 환원시키는 그런 구조는 바로 폭력 그 자체이다. 즉 누군가의 인생이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면, 바로 그러한 인생들을 생산하는 사회야말로 가장 강력한 폭력이 작동하는 사회이다. 내가 풍기문란이라는 문제틀을 통해서 살펴보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결사적으로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의 법칙을, 필사적으로 싸워도 제한된 삶의 반경을 넘어설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그것을 숙명이나 내 탓으로 간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본책, 307~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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