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3.6.7.

북리뷰 [문화]

법·정치 가로지르는 ‘色’… ‘풍기문란’ 단속의 역사·정치학

 


  한때 히피였던 스티브 잡스는 창조력의 화신이 됐다. 히피들의 공유 정신은 정보기술(IT)의 개방성과 일맥상통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히피들이 자유를 외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이 한창이었다. 머리가 긴 것으로 적발되면 구류에 회부되는 한국의 전근대 문화와 다양한 ‘카운트컬처(대항문화)’까지 거침없이 누렸던 미국 문화를 빗대보면 동시(同時)적인 것의 비동시적 현존이었던 셈이다.

  책은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인 ‘풍기 문란’ 단속을 다루면서 역사와 정치학 시각에서도 예민한 촉수를 내민다.

  국내에서 경범죄 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이었다. 이것은 다시 일제가 식민지 백성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 처벌규칙(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일제는 대로변에서 유통되는 문화뿐 아니라 뒷골목 문화를 규제하는 데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시동원체제에서는 사회의 말단 세포까지 국가의 통제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0년대 일제의 풍속 통제는 묘지에 대한 관습이나 기생, 갈보 등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동성애,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미성년자의 음주·끽연, 외설문서의 유포·판매·진열, 만취상태에서 도로를 배회하는 행위 등으로 광범위해졌다. 일상 전반을 그물망처럼 옥죄었던 통제의 시대였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지며 오히려 속으로 더 곪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퇴폐 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 단속, 밀주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 지목된 다양한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이 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규제를 받아왔다. 저자는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이 대중문화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는 경찰권력의 개입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이는 불량·문란한 행위가 서구의 퇴폐풍조에 물든 행태라고 비판했던 1930년대 말의 역사적 경험이 계승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3월에도 국무회의에서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는데 국가 통치가 시민들의 일상과 풍속을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은 풍기 문란 통제의 기본틀과 기원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인의 공통된 정념에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는 풍기 문란 연구와 ‘자신에 의해 표현되고 타인에 의해 관찰되는 감정’을 뜻하는 정동(affect·情動)이론을 접속하는 지점을 살펴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월북 소설가 이기영의 소설 ‘서화’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색(色)과 정치의 연계는 단지 사상과 풍속 사이만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치, 법과 생명 사이를 가로지르며 작동한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야간통행금지 제도라는 깜깜한 밤의 시대가 시작됐다. 일제 때 있던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사창화가 우려됐다. 미군 관련 범죄 등으로 인종적 공포도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풍기 문란이 사회의 지배담론 중 하나가 됐다. 1961년도 분기점이다. 저자는 “4월 혁명의 실패와 5·16 쿠데타로 상징되는 1961년은 냉전체제와 분단, 개발 독재가 공고해진 때이기도 하지만 학생과 청년 세대 문화에 대한 집중적 단속이 강화된 시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마산에서 김주열이라는 소년이 살해당하는 시점과 1962년 대구에서 한 소년이 탄생하는 시점을 대비시킨다. 이 소년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그의 소설이 판매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저자 장정일이다. 저자는 “이 두 소년의 삶과 죽음의 교차를 통해 (소년들이) 어떻게 국가 폭력에 회수되는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냉전 시대에 들어선 뒤 소년들은 “죄 많은 아이”라는 위치를 강요받게 되며, 문제아의 심정이 돼 버린 열정은 사회적 규율체제, 소년보호나 경찰권력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지적한다.

  ‘음란’과 ‘혁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풍기 문란과 정념, 정동이라는 3개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아우르는 이 책은 읽기가 만만치 않다. 일제 강점기 풍속 통제의 상황과 검열의 실상을 추적하면서 전시동원체제에서 비(非)국민을 심문하는 구조를 심층 탐구하는 식이다.


 

예진수 기자

(원문링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60701032530025005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서화>의 배경이 되는 기미년 전후 식민지 조선에서 농민의 혼/정념을 둘러싼 풍기문란 법정에서 돌쇠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덕분에 농민의 혼/정념은 사회주의를 '법정 대리인'으로 '얻게' 되었다. <서화>에 대한 1930년대 사회주의 문학론자들의 논쟁에서도 <서화>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의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농민의 혼/정념과 사회주의 사이의 이러한 '피고인'과 '법정 대리인'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서화>를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농민의 혼/정념에 대해 사회주의자가 '법정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이 촉구되었다. 나아가 이 문학사적·역사적 귀결점으로서 이기영의 <<고향>>은 높이 평가받았다. <서화>와 <<고향>>을 비교해볼 때 <<고향>>이 사회주의자 김원준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농민의 혼/정념이 '법정 대리인' 없이는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것은 1930년대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행에 대한 정동 이론의 문제틀이 '맹아적인 것' 그 자체를 사유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권명아,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 7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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