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기념 소비 촉진

 

 

권명아

 

 

 

 

 

 

 

 

   오키나와 작가인 마타요시 에이키의 <긴네무 집>은 식민지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소설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기간의 파괴 흔적을 위장하기 위해 오키나와 전역에 긴네무 종자를 살포했다. ‘종전’이 되었지만, 오키나와 주민에게 남은 건 콜라병과 긴네무뿐이다. 콜라병과 긴네무는 식민자가 남긴 것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잔재’이다. 이에 반해 조선인 ‘그’가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간 ‘돈 봉투’는 그야말로 “식민지 유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씁쓸하게 곱씹게 한다.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2015년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기념된다. 기념이란 그 자체가 국가나 지역의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절차이기에 그저 공허한 잔치이거나 무의미한 말의 향연으로 넘쳐나곤 한다. 기념은 역사적 기억이나 집단적 기억과는 다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연구자들은 역사 기념 방법을 그 국가나 사회의 국가적 정체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한다. 중국과 일본은 ‘70주년’을 어떤 식으로든 세계사의 질서를 다시 구상하는 계기로 기념하고 있다. 정부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국민 사기 진작’과 ‘침체한 소비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광복 70주년 기념’과 ‘국민 사기 진작’ 혹은 ‘침체한 소비 심리 회복’은 과연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식민화의 기억과 소비 심리 회복이 이렇게 연결되는 맥락에는 참으로 씁쓸한 역사적 무의식이 작동한다. 소설 <긴네무 집>은 역사의 기억과 책임이 ‘대가 지불하기’라는 방식으로 전도되는 기묘한 역사적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쟁에 동원되었던 식민지인들에게 그 기억은 갈기갈기 찢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연인의 눈동자를, 목이 잘린 채 “아버지 아파요”를 외치는 아들을 매일 악몽 속에서 만나는 일과 같다. 해방되지 못한 식민지인들에게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은 피해의식이나 망상, 혹은 반복되는 악몽의 형식을 맴돈다. 해방되지 못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식민지 지배자들은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 ‘야스쿠니 합사’(일본)나 ‘돈과 지위’(미국)를 제안했다.

 

 

   성폭력의 책임을 물으러 온 오키나와 주민들이 ‘가해자’로 몰아붙이던 조선인으로부터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은 그런 점에서 으스스한 전율을 일으킨다. 전쟁에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연인을 찾아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던 조선인은 그렇게 ‘폭력의 대가’를 유산으로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선인 ‘그’는 헤어진 ‘연인’이라고 추정되는 그녀를 “매춘소”에서 돈을 내고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의 가해자도 아닌 그가 모든 재산을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자살한 것은 ‘대가 지불하기’라는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폭력에 대한 책임 대신 ‘대가 지불하기’라는 형식으로, 해방 대신 냉전을 식민지에 ‘유산’으로 남긴 것이 바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였다.

 

 

   성폭력을 당한 요시코의 ‘위로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네무 집>의 한바탕 소동은 무섭도록 슬프게 역사적이다. 한쪽 발이 잘린 채 쩔뚝이며 손녀딸의 위로금으로 시내를 돌며 진탕 돈을 써댄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뒷소문이 무성한 오키나와의 한동네 이야기가 ‘광복 70주년’의 한국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놀랍다. ‘광복 70주년’이다. 해방 같은 이야기는 꿈같은 소리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의 세계 질서를 고민하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저 연휴를 맞아 한바탕 소비를 촉진하는 일만이 한국 사회가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또 익숙한 기념일이 돌아왔다.

 

 

 

 

 

 

독점과 모욕의 자리

 

 

권명아

 

 

 

 

 

   한국 사회에서는 제도 비판이 불가능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도 비판을 인격화해서 개인적 모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를 비판하는 걸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여 보복하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같이 한탄하지만, 자신이 속한 제도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서는 모욕당했다고 펄펄 뛴다. 한국문학 제도 비판도 이런 악순환을 고스란히 반복해왔다. 역설적으로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의 제도가 추상적이고 공적인 형식이 아니라 인격화된 사적 형식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문학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도 비판을 사적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한국문학이 자기비판의 계기를 놓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후 한국문학 제도는 인격화된 사적 형식의 면모를 더욱 심화해왔다. 논란이 되는 신경숙의 표절과 ‘문단 권력’에 대한 논의가 제도 비판의 계기가 되려면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한다. 게다가 이른바 ‘문단 권력’의 안쪽에서는 문학 제도 비판을 ‘낙오자들의 원한’ 정도로 치부해온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격화된 사적 형식으로 경도된 한국문학 제도가 출판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한국문학 제도에서 창비와 문학동네는 독점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경제적 생산의 차원뿐 아니라 상징자본과 문화자본 또한 독점하고 있다. 문학적인 것과 한국문학의 정통성을 수호한다는 “문학적인 이념”이 바로 창비나 문학동네가 독점자본이 될 수 있는 기반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창비나 문학동네는 제도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위기에 처한 한국문학의 수호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거듭 천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입장에서 한국문학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수호자로서 자신들의 위치 또한 항상 소수자나 약자의 입장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제도 비판을 위기에 처한, 소수자에 불과한 한국문학을 죽이는 적대적 행위로 여기게 된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논쟁이 필요하다. 주식회사 창비나 문학동네를 비롯한 여타 대형 출판기업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문학 제도에서 출판 산업의 독과점 방지를 위한 감시와 견제, 또는 제재가 필요하다. 대형 출판 주식회사의 상징적이고 실제적인 주주 자리에 있는 이들이 비평가나 편집위원을 겸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사적이고 독점적으로 비평가를 재생산하는 방식도 공개적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대형 출판사 관계자들이 한국문학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과 독점자본의 지위를 모순 없이 겸해왔던 이중성에 대해 근원적인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한국문학의 수호자라는 ‘신성한 자리’를 이후로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독점자본과의 실질적 분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가 과연 가능한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형식적 변화조차 불가능하다면, 한국문학 제도는 파산해버려도 아깝지 않은 한국문학 주식회사에 불과하다.

 

 

   한국문학 제도의 모순은 그야말로 중층적이어서, 반성과 성찰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사실 한국문학 제도가 이러한 사적 제도화와 독점화로 기울어지면서 이로부터 이탈하는 여러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독점화된 제도의 힘은 이로부터 이탈하는 힘들이 자리할 토양을 사실상 황폐화했다. 1990년대 중반 나타났던 다양한 문학 집단들은 “본격문학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신문 문화면과 선인세와 ‘밀어내기 출판’으로 무장한 대형 자본과의 전투에서 그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이탈의 힘과 역사를 되찾고 자리매김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무능과 정치적 주체화

 

 

권명아

 

 

 

 

   무능이 지배하는 시대다. 무능이란 능력이 없는 상태니, 무능이 ‘지배하다’의 주어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판과 한탄이 넘쳐날 만한 상황이 분명하지만, 이를 넘어선 무능의 ‘정치화’가 더욱 필요하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새삼 확인되듯이 국가는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능은 단지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1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좀 더 능력 있는 지배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계의 대응을 마치 대선 전초전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갈등도 대선 예측으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은 능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이런 문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넘쳐나는 ‘무능론’은 ‘지도자 대망론’의 변주에 그칠 수 있다. 이런 논리에서 지배의 능력은 지배자의 것이거나, 국가기구의 몫일 뿐, 누구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지도자만 바뀔 뿐 삶은 변하지 못한다.

 

 

   재난 상황에서 무능한 국가(기구)를 대신해서 무수한 사람이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는 국가 부재의 한탄스러운 상황이기도 하지만, 무능의 빈자리에서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지는 역동적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형성된 주체는 더는 지배능력을 ‘국가’에 내맡긴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다. 지배능력은 이제 국가의 몫이 아닌, 다스려지던 사람들의 몫으로 되돌려진다. 이렇게 되돌려지는 과정이야말로 무능이 ‘정치화’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메르스 사태 이전에도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한 예로,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며 공공 의료 체계와 지역의 의료 주권을 요구하던 경남도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를 통해, 음압병실의 필요성을 포함하여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많은 사람이 이제야, 겨우 실감하고 있다.

 

 

   “정치가 싸움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심은숙) “정치가 생활이다. 이전에는 의원이 갑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박소연) ‘양산 무상급식 지키기 집중행동 밴드’ 모임 좌담 자료는 이런 정치화의 경험을 잘 담고 있다.(오마이뉴스, 6월8일) 회원들의 이야기는 “이전에는”, “처음에는”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누구도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움직이는”(허문화) 일을 했다고 해석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뤼크 낭시는 사회를 머리와 배, 꼬리로 구성된 유기체로 상상하는 방식이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논했다. 그래서 이 위계를 벗어나려면 바로 그 ‘수미일관한 몸’이라는 관성적 담론을 넘어서야 한다.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움직인다”는 양산 학부모들의 발상은 그런 점에서 이미 몸통과 꼬리의 관계를 깨뜨렸다. 이제 지배는 몸통이 아닌 꼬리의 몫이 된다. 그들이 “이전에는”,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무능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능한 머리를 대체할 능력 있는 머리가 아니다. “꼬리로 몸통을 움직이는” 방식이야말로 무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무능의 정치화 방법이다. 이는 머리와 꼬리라는 분할로 이루어진 사회상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회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꼬리로 몸통을 움직이자. 무능을, 더욱 정치화하자.

 

 

 

 

 

 

사랑과 환멸의 대중탕

 

 

권명아

 

 

 

 

 

   한국 사회의 미래와 대중 정치에 대한 환멸이 담론 공간을 강하게 채우고 있다. 1960년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 담긴 다소 영웅적인 어조는 환멸에 대한 단절의 태도이기도 했다. 2015년 “껍데기는 가라”는 ‘이놈도 저놈도 마찬가지’인 세상에 대한 환멸이 되었다.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앎을 절대화하는 지적 오만이다.

 

 

   환멸(disillusion)은 말 그대로 이전에 가졌던 환상이 깨지면서 촉발된다. 환멸은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세계를 보는 거울이 깨진 데서 비롯된다. 거울이 깨지자 세상도 깨져버린다. 환멸 속에서 ‘나’에게 세계는 끝장난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끝장은 ‘나’와 ‘나’를 지탱하던 거울의 끝장이다. 그래서 환멸이야말로, 끝장난 ‘나’와 단호하게 이별하고,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알림 신호이다. 그러나 막상 오늘날 환멸은 ‘나’가 아닌 ‘끝장난 대중’에게로 향한다. ‘나’는 환멸 속에서 더욱 고매하게 빛난다.

 

 

   에스엔에스가 진보 정치를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이 환멸로 이어진 것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대중이나 대중 미디어에 대한 환멸은 실상 지금까지 대중의 흐름을 파악해온 방법론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근대적인 학문 방법론이 ‘대중’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은 많은 학자가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경우 대중의 흐름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이른바 대중 네트워크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은 어느 사회보다도 사회 기저에 강력한 네트워크 힘이 흐르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대중 네트워크를 전체로 조망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가장 오래된 상호부조 형식이라 할 ‘계’의 경우도 식민통치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대중 동원의 도구가 되거나, ‘퇴폐풍조’로 전락했다. 한국의 특이한 대중 네트워크의 하나는 대중목욕탕인데, 이는 가장 고전적인 ‘풀뿌리’ 네트워크라 할 만하다. 풀뿌리 네트워크라는 의미는 ‘민중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지배적인 흐름이 변해도 한국 사회의 기저를 단단하게 동여매고 있는 흐름이라는 뜻에 가깝다. 대중목욕탕은 모든 정보가 모였다가 나가는 중계점이고, 모든 담화와 정보는 ‘생활적’이다. 드라마 선택에서 투표 후보자 선택까지 다양한 판단 지점에 이러한 생활적인 정보와 담화는 주요한 변수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대중목욕탕은 상품 정보에서 인물평까지 다양한 평판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뒷말’ 공간이다.

 

 

   대중목욕탕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독특한 내적 친밀성을 기반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모두가 잘 아는 공간이지만, 실상 논리적 파악이 힘들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막상 그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이 네트워크는 최근 들어 에스엔에스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친구와 동료들만의 단체 방의 형태로도 변형되었다. 그런 점에서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 대중목욕탕은 에스엔에스와 비교하면 접근도 어렵고 내밀한 관계 형성을 통한 정보 수집에도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이런 식의 풀뿌리 네트워크가 강해서 흐름의 변화는 여기서 비롯된다. 풀뿌리 네트워크 자체가 본래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보수나 진보의 이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잠재성을 가졌다. 대중 네트워크의 흐름을 연구하는 건 이제 시작 단계이다. 대중목욕탕 네트워크 하나만 연구하고 조사하려 해도 누군가의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할 정도의 시간과 애정이 필요하다. 환멸은 그런 시간과 사랑을 소모하고 잠재성을 잠식해버린다. 환멸에 머무는 한 기저를 관통하는 흐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이 맞서다

 

 

권명아

 

 

 

 

   결국, 그것을 봤다고 친구가 말한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끝까지 볼 용기가 났다고 한다. 나는 사실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마지막 남긴 동영상 기록이다. 그 죽음을, 비참을, 슬픔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촉발한다. 인류가 존재한 시초부터 상징과 제의를 통해 그냥 그대로의 슬픔에 직면하는 고통을 완화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상징도 제의도 없이 슬픔을 그냥 마주하는 일은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와서 피켓만 들고 있다구요. 그냥 이것만 한다구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 은화의 엄마는 그냥 그러고 있다고 내내 말한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엄마를, 슬픔을 그냥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유족들이 그냥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거저먹으려 든다’고 매도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그냥 준다고 할 때는 도둑이거나 ‘종북’으로 모욕 주기에만 바쁜 실정이다. ‘그냥’은 이유를 따지고 도구적 계산을 앞세우는 입장에서 볼 때 텅 빈 무엇처럼 보인다. 그 텅 빔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무시무시함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1년, 한국 사회는 서로 상반된 맥락에서, ‘그냥’을 마주하는 섬뜩함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어에서 그냥은 공짜나 ‘거저’와 같은 뜻이 아니다.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냥은 단지 부사로서만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담화 표지의 기능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냥’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공짜라는 뜻으로 왜곡·축소되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 목적이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그냥 인간이나 세상을 이해할 능력을 상실했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의 모양을 이해하고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슬픔과 밥이 ‘그냥’의 쓰임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밥과 슬픔을 계산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게 당연했던 삶의 흔적이 언어의 쓰임에 남아 있다. 공짜가 아닌 그냥 나누는 밥, 계산될 수 없는 슬픔, 이는 인간 사회의 근원적인 영역이자 어떤 이유나 조건도 없이 모두에게 허용된 ‘공통의 것’이다. 그러니 그냥은 없고 공짜만 있는 사회란 공통된 것은 없고, 차별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근본은 없고 계산만 남은 사회이다. 결국 이 계산은 ‘목숨 값’이라는 무시무시한 조어를 낳는다.

 

 

   ‘그냥’의 세계를 매도하고, ‘그냥’을 나누려는 모든 움직임을 공짜나 거저 혹은 얼마인가의 맥락으로 환원해버리는 일은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심각한 상징적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적 폭력에 맞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의 세계를 살려내고 있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무수한 이들이 그림, 사진, 플래시몹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슬픔과 분노를 나누었다. 상징도 제의도 박탈당한 채, 거꾸로 상징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나누며 그렇게 사람들은 예술을 만들어왔다. 예술이 ‘무사심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 ‘공짜인가 아닌가?’만 묻는 상징 폭력에 맞서 ‘그냥 그렇게’ 하기를 계속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세월호 이후 우리 앞에 도래한 ‘예술’의 세계이다. 함께 슬퍼하기를 거부하는 정치공동체(국가)와, 공짜냐 아니냐만 묻는 경제 집단을 넘어, 오늘 우리는 모두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문득 출현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권명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2월27일, 도쿄의 ‘이레귤러 리듬 어사일럼’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몇번이나 찾아갔던 길이지만, 여전히 또 길을 헤매었다. 그날 좌담회에서는 “인문 장치를 발명하자”라는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고민과 모색을 함께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야기 도중 문득 누군가 한탄 조로 조용하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되묻던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3월15일에는 오사카의 ‘시어터 세븐’에서 <구럼비, 바람이 분다>(조성봉 감독) 상영회가 열렸다. 헤노코와 요나구니 섬과 강정을 서로 연결하여 논의하는 토론 시간이 흥미로웠다. 한 청중은 헤노코와 강정을 논하며, “엄청난 공권력의 힘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맨몸으로 싸우는 일이 때론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며 “과연 이런 싸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도쿄와 오사카의 자그마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든, 평화를 위해서든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을 나누었다. 유명 초청 인사도 거창한 기자회견도 없이, 작은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의 만남은 이른바 ‘한-일 관계’라는 외교적 수사의 맥락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른다. 또 만남과 대화와 연구를 해나가도 도무지 변할 것 같지 않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이런 자리는 그저 무의미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계속 시도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 무엇을 해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다시 떨어져 버리는 악순환에 대한 공포는 불안한 미래 앞에 선 모든 이들이 껴안고 있는 정동이다. 그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지만, 적어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만나서 함께 걸어 나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첨단기술의 지도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장소들을 찾아 며칠, 몇년을 헤매던 시간 속에서 문득 길 찾기에 대한 오랜 비유를 떠올리곤 했다.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아가는 일이라는 오래된 비유법 말이다. 누구도 길의 끝을 보지 못했지만, 먼저 걸어간 자취가 있어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나간다. 인류라는 이름은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온 발걸음의 총합으로 얻어진 이름이다.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하는 건 이런 뜻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은 앞서 걸어 나아간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물려받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일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몰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이 몰역사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투쟁이란 그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내몰리지 않게 만들기 위한, 존재를 내건 싸움이다. 역사 투쟁이 분과학문의 몫이나 과거사 논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가령 <구럼비, 바람이 분다>에서 구럼비에 부는 바람은 자연사의 순환이나 인간의 역사로 환원되지 않는 그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온몸으로 맞서도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저 거대한 힘들도 언젠가 저 바람에 무너지고,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 세계를 내가 살아 만나지 못할지라도 지금, 여기에 부는 바람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감지한다. 그렇게 구럼비에도 도쿄와 오사카의 지도로도 찾을 수 없던 그 자리들에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2015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방’ 혹은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들이 떠들썩하다. 몰역사적인 기념식장의 야단법석은 내버려두고, 죽은 시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국도 일본도 말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한번 가보면 어떨까.

 

 

 

 

 

 

영혼을 탈환하라!

 

 

권명아

 

 

 

 

   일제 시기 ‘국민학교’를 다녔던 작가 박완서는 이 시절의 기억을 여러 작품에 남겨두었다. 주소나 생활 기록 같은 신상에 대해 선생님이 질문할 때 제대로 답을 못할까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은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신상 기록을 달달 외우며 ‘심문’에 대비했다는 이 소략한 에피소드의 이면에서 우리는 일제 시기 ‘국민학교’ 교육의 흥미로운 특성을 포착할 수 있다. 1931년생인 박완서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38~39년께는 일제가 이른바 ‘국민정신총동원령’을 내리고 국민의 ‘정신’을 통제하는 데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국민정신총동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은 선전전과 심리전을 전쟁의 전방만이 아니라 후방의 모든 일상 영역에까지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시절 언론 자료에서는 ‘국민학생’이 수상한 자를 ‘스파이’로 의심된다며 신고해서 포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들이 조선어를 쓰지는 않는지, 수상한 자가 동네에 출몰하지는 않는지 항상 감시하고 학교에 보고하도록 ‘교육’받았다. 초등학교에까지 시행되었던 국민정신총동원은 인간의 영혼을 통제하고 조작하고 실험하는 대상으로 장악하려 했던 파시즘 정치의 전형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교육을 기술 및 실용 위주의 실업교육 중심으로 강제로 재편했다. 식민지 ‘국민’을 기술 중심의 도구적 인력으로 한정하는 대신, 영혼을 관리하는 역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담당할 수 있도록 통제한 것이다. 즉 국민정신총동원이란 인간의 영혼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서 통제 관리하며 이를 위해 영혼을 다루는 기술을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통치술이었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고도로 발전시킨 이러한 영혼 통제의 기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거듭 변신하며 출현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 ‘선전전’, ‘인문교육 폐지, 기술교육으로 전환’과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교육부의 ‘인문학 폐지’라는 전혀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파시즘의 오래되고도 새로운 기술의 연장에서 사유해야만 한다. 탈냉전과 함께 폐쇄적인 국민국가의 장벽이 무너지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면서 파시즘 체제가 만든 고전적인 영혼 통제는 이제 불가능하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감정 조작 실험 사례가 보여주듯이 네트워크 사회에서 영혼에 대한 통제는 과거와는 다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 체제가 ‘유물’로 살아 있는 사회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영혼 통제 기술들은 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유물과 네트워크 사회의 신기술이 접목된 사상 초유의 변종인 셈이다.

 

 

   그러므로 영혼 통제 기술과 관련된 이토록 희귀한 역사의 유물들이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나타나는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영혼을 둘러싼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터다. 아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영혼은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버렸다. ‘댓글 조작’과 ‘인문학 폐지’라는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려는 일련의 공통된 전략이라는 점에서 사유하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이는 국민을 선전전의 대상으로만 보면서, 영혼 통제의 전문적 기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독점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으로 만들었던 고전적인 통제 기술의 연장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영혼을 탈환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중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영혼을 탈환하라! 인문을 탈환하라!

 

 

 

 

 

 

 

노인과 진보

 

 

권명아

 

 

 

 

 

   팔십이 넘은 할머니가 일흔 어름의 할머니에게 “한창 좋은 때다”라고 말하는 풍경이 참 먹먹했던 적이 있다. 늙음과 젊음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몇 백 년을 살았는지 가늠하는 게 헛된 고목 아래 앉아 나이듦에 대해 묻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곱씹어본다. 유용하고 무용한 세상의 지식을 많이도 들춰보았지만, 나이 들며 마주하는 낯설고 두려운 질문에 대해 그 지식의 서재에서 답을 찾기는 참으로 어렵다. 세상을 향해 서슬 퍼런 목소리를 내고 조언과 진단을 서슴지 않는 지식인에게도 나이 들며 부딪치는 질문은 그저 홀로 침잠해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물론 건강에서 재테크까지 나이 들면서 챙겨야 하는 일들을 조언해주는 정보는 넘쳐난다. 그러나 나이듦과 정치라는 두 항을 이어주는 지식이나 담론은 거의 부재하다.

 

 

   다만 세대 논쟁만이 뜨겁다. 세대 논쟁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와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진보, 혁명, 변화.’ 이런 단어에서 우리는 암암리에 젊음, 청춘을 연상한다. 보수가 ‘늙음’, 오래됨과 자연스레 연결되듯이 진보는 언제나 ‘젊음의 것’이었다. 이는 근대 주체가 형성되어온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보수=늙음’, ‘진보=젊음’이라는 식의 의미 연결을 넘어서지 않는 한 우리는 정치적 주체에 대해 진부한 세대 논쟁을 넘는 새로운 담론 지형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앞으로 나아간다’(progress)는 의미를 지녔기에, ‘젊음’의 시간성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이론적 입장에 따라 진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래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생태주의나 근대적 개념이 인간 모두를 자유롭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굳이 ‘진보’라는 개념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 있다. ‘진보’라는 개념은 품을 수 있는 주체가 한정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한계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수구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사유는 때로, 아니 언제나 현실에 뒤진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원래 살던 대로 살 권리’를 요구하는 밀양 할매들의 십년이 넘는 투쟁은 ‘청년 진보’라는 표상을 뒤흔들었다. 또 혐오를 무기로 삼는 청년 우익의 등장은 보수가 더 이상 오래된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뼈아프게 환기시켰다. 그러나 ‘밀양’을 ‘진보정치’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진보정치’의 맥락에서 나이듦을 사유하는 것은 아직은 시작 단계다.

 

 

   나이듦을 단지 숫자로 환원되는 ‘나아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나이듦은 육체의 나아감을 측량하고 관리하는 기술과 학문의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나아감에 속한다. 그러나 나이듦이란 신체적 상태의 변화와 생각, 정서, 관계 맺음, 삶과 사회에 대한 태도의 변화 역시 함축한다. 이는 단지 노화에 국한되지 않는 존재론적 나아감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나아감이야말로 정치적 사유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근원적 차원이다.

 

 

   젊은 세대의 호감을 얻기 위해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청년 문화에 동참하는 진보정치의 노력은 가상하다. 그러나 이런 ‘청춘의 코스프레’는 어쩌면 나이듦에 대한 진보정치의 불안의 표상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이듦이라는 차원을 이론과 실천 속에서 감당하지 못한다면 진보정치는 그 자체의 나아감에도 근원적인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바지를 벗고,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종편의 괴성으로 상쇄시키고 있는 저 ‘고집불통의 노친네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민중 속으로’ 나아가는 진보정치의 길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깃발이 드높다

 

 

 

권명아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것’이다.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논의는 그가 동성애자라거나 위장한 동성애자라는 소문으로도 이어졌다. 히틀러는 동성애자를 유대인만큼이나 혐오했다. 동성애에 대한 히틀러의 강박적 혐오 때문에 히틀러의 ‘그것’에 대한 뜬소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논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반파시즘 진영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여 나치를 희화화하는 방식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과 반파시즘은 동성애를 ‘절멸의 대상’이나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한겨레>가 동성애 혐오 발화를 전면 광고로 게재하여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일자 한겨레 쪽이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가진 의견 또한 정보”라고 해명했다. 이는 혐오 발화의 폭력성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혐오 발화는 ‘의견’이 아니고, 표현의 자유로 보장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 발화를 하나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혐오 발화의 폭력성을 사유하고 대처해 나가는 데 무지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파시즘은 증오 정치를 동력으로 진행된다. 파시즘은 낙인찍기, 혐오 발화, 증오 행동을 거쳐 대량 학살로 향했다. 혐오 발화가 하나의 ‘의견’이나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학살의 예고편이라는 것은 무수한 사례가 보여준다. 그 사례들에 따르면, 혐오에는 이유가 없다. 혐오란 이유가 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들러붙는 신체적 힘들의 결집체이다. 파시즘이 여성, 성적 소수자, 인종적 타자를 혐오하며 절멸시킨 데에는 어떤 논리적 이유도 없다. 물론 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이들 집단이 당대 주요하게 부상한 ‘새로운 세력’이라는 점과도 관련된다. 대표적인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는 파시즘이란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주장했다. 즉 파시즘의 혐오는 논리적 근거가 아닌, ‘안티’의 역학을 따라 촉발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혐오 세력이 특별한 공통점이 없는 집단들을 향해 혐오 발화와 증오 행동을 수행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그때마다 ‘쟁점이 되는’ 집단을 찾아다니며 혐오 발화나 방해 시위를 자행하고 있다. 혐오가 특별한 이유가 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들러붙는 신체적 힘들의 결집체라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 혐오가 대상에게 부정적으로 들러붙는 속성을 지닌다면, 그 강도가 높을수록 혐오의 주체는 대상에 들러붙어 휘감겨버린다. 히틀러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것’에 대한 추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최근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혐오의 강도는 이에 맞서는 저항의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물론 혐오 덕분에 저항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혐오에 맞선 사랑은 추상적으로 논의된 사랑의 정치성에 구체적인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 일은 ‘나른한’ 진보 이론의 대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혐오에 맞서 행동한 수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2014년 한국 사회는 혐오에 맞서는 새로운 ‘사랑의 깃발’과 그 사랑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만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혐오의 공허한 열광을 마주하며, 우리는 단지 파시즘의 도래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는 현장을 보고 있다. 2014년, ‘진보’라는 말로 다 포함할 수 없는, 혐오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의 정치가, 사랑이 일어나고 있다.

 

 

 

 

 

 

 

무상급식과 유턴 정치

 

 

 

권명아

 

 

 

 

 

   지방대 교수들끼리는 매사 너무 지나치게 열심인 동료를 두고 “그 사람 요즘 편입 준비하나 보다”라며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기회만 되면 서울로 ‘유턴’하는 지방대 교수들의 풍토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이다. 지방을 서울로 유턴하기 위한 반환점 정도로 생각하는 대표적 집단이 교수와 정치인이다. 이들에게 지방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업적을 쌓는 거점일 뿐, 돌보고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 아니다. 이들이 쌓는 업적도 결국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목적에 부응하는 일일 뿐 지방을 돌보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들을 ‘유턴족’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교수나 정치인이나 ‘유턴족’들이 지방에 와서 하는 일은 주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유턴 정치뿐이다.

 

 

   현재 과격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무상급식 폐지 선언은 그 본질에 있어서 정치인들의 유턴 정치의 무책임한 결과이다. 무상급식 폐지 논란이 왜 경남에서 선정적일 정도로 선동되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남에서는 무상급식을 ‘경남의 자부심’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란에서 막상 경남 지역은 사라져버렸다. 홍준표 지사는 이 논란 덕택에 대선 주자로서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얻는 ‘결실’을 얻었다고 한다. 도지사가 ‘아이들 밥그릇’으로 유턴 정치에 열심인 사이, 도민들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홍준표 도지사가 내동댕이친 ‘아이들 밥그릇’은 실은 김두관 전 도지사의 ‘작품’이기도 했다. 야권 불모지 경남에서 53.5%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김두관 전 도지사가 ‘대권’을 위해 유턴해버렸고 경남도민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홍준표 도지사의 당선은 그런 점에서 김두관 전 도지사의 유턴 정치에 대한 도민들의 강력한 심판 의지의 결과였다. 유턴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당선된 도지사가 다시 유턴 정치를 위해 경남도민의 ‘밥그릇’을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왜 경남도민들은 일어나서 분노하지 않느냐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 결국 보수정당 텃밭인 경남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문제라는 비판도 들린다. 자주 듣는 진단이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하는 이른바 지식인들도 결국 선거 때 말고는 지방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의 지방 비판은 지방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선거 결과만으로 고질적 지역주의 운운하는 사람들이나, 지방을 표밭으로만 보는 정치인들은, 지방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가꾸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도지사들이 차례로 밥상 뒤엎는 모양을 내내 지켜보아야 했던 경남도민들은 분노하기보다 냉랭하다. 이 냉랭함이 정치 무관심과 같은 것일까? 내동댕이쳐진 밥상으로 더렵혀진 방구석을 치우는 이들은 화를 내기보다, 냉정하게 이를 앙다문 채 뒤치다꺼리를 할 수밖에 없다.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야말로, 살림을 꾸리는 이들이 맡아야 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건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떠나면 그만인 ‘유턴족’들과 멀리서 불구경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유턴 정치는 모두 서울 중심주의의 결과이지만, 교수의 유턴이 학벌 사회와 관련된다면 정치인의 유턴은 지역 자치가 불가능한 정치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선거는 결국 지방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선거는 근본에서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지방의 맥락에서 선거는 지방을 중앙의 식민지로 만드는 노예화의 도구에 불과하다. 분탕질 뒤끝의 심판도 살림도 결국 지방 사람들의 몫이다. 그 뒤끝이 선거 결과만으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뒤끝의 매서운 맛을 볼 날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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