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달인'들이 지배하는 사회

 

 

 

권명아

 

 

 

 

 

   태풍이 불면 바다 심연에 있던 것들이 기슭으로 올라온다. 태풍이 지난 후 백사장을 가득 채운 쓰레기 더미는 충격적이었다. '저 바다 깊은 곳에 이런 쓰레기가 가득했었구나.' 그 쓰레기들은 항상 바다 저 멀리 심연에 있었을 터이지만, 사람들이 사는 기슭으로 올라오기 전에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2014년 한국 사회에는 일 년 내내 태풍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매일매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무수한 쓰레기가 '한국 사회'의 기슭으로 올라온다. 이제 한국 사회가 바닥을 보인다는 말도 너무 자주 듣고 말해서 물려 버렸다.
 


심연의 유령들, 고딕 판타지의 시작
 
   그런데 이제, '심연, 바다' 같은 표현을 더는 심상하게 쓸 수 없다. 2014년 바닥을 보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연, 바다' 같은 표현조차 집단적 트라우마를 환기한다. 우리는 이미 상징이나 비유가 아닌 현실로, 생생하게 한국 사회의 바닥을 보았다. 
 
   태풍이 불지도 않았는데, 바닥을 드러낸 채 뒤집힌 세월호는 '바닥' '심연'을 상징 차원에서 현실로 불러들였다. 바닥을 드러낸 세월호가 무슨 전조이기라도 한 것처럼, 줄줄이 한국 사회의 심연에서 '유령'들이 밀려온다. 심연으로 사라진 아이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데, 사라진 줄 알았던 과거의 유령들은 죽지도 않고 되돌아온다. 파시즘이 지배했던 스페인을 고딕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 '판의 미로'에는 아이를 살아 있는 채로 잡아먹는 괴물이 나온다. 피 맛에 굶주린 이 괴물은 그 자체로 파시즘의 상징이다. 고딕 판타지 장르를 빌려 말하면, 오늘 한국 사회에는 바다의 심연에서 아이들을 살아 있는 채로 잡아먹은 유령들이 피 맛에 굶주려 배회하는 모양이다. 남미의 문학이나 영화는 고딕 판타지나 마술적 리얼리즘이 지배적인 장르로 활용된다. 폭력과 학살로 점철된 남미의 역사적 경험은 통상적인 사실주의나 리얼리즘으로 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리얼리즘이 불가능한 고딕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조짐을 보인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는 '에로-그로'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이 장르는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가 결합한 독특하고도 복합적인 성격을 지녔다. '에로'와 '그로'가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미적, 정치적 효과는 다양했다. '에로-그로' 장르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성적 표현은 성 해방에 대한 열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오히려 1930년대를 전후하여 나타나는 폭력의 기괴함과 폭력에 몸을 내맡기는 대중의 충동이 '파괴적인 죽음 충동'으로 충만한 '에로-그로'라는 장르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일본의 파시즘이 극단화되면서 '에로-그로'는 전쟁 광기를 선동하는 수단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파시즘의 역사를 참조해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펴볼 때 눈여겨볼 지점은, 파시즘의 폭력성은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장르 복합체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파시즘의 역동성과 '자발적 광기의 분출'은 이런 면모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파시즘의 폭력성과 그 전조를 단선적인 회색 톤의 억압적이고 건조한 장르로 생각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일면적이다. 파시즘의 폭력은 일방적이지만, 그 폭력의 형태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했다.


버라이어티 장르, 파시즘 

   2014년 정치 뉴스는 '19금' 경고 자막이라도 넣어야 할 만큼 어처구니없이 에로틱하다. 사회 뉴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다. 게다가 '에로'와 '그로'는 종종 몸을 바꾸고, 때론 이종 교배를 일삼는다. 이런 버라이어티 장르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지배적인 미디어와 정치 집단이다. 그러나 이런 버라이어티에 열광하는 대중 또한 파시즘이라는 복합적인 장르의 발명자들이다. 물론 대중을 이렇게만 규정할 필요는 없다. '에로-그로', 고딕 판타지, 이름 붙일 새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수한 막장 장르를 한국 대중들은 아주 오래도록 '관람'해 왔다. 한국 사회는 여러모로 막장의 달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막장 장르의 주도권이 지배 집단에 있는 듯하지만, 막상 관람자의 자리에서 채널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는 대중 역시 만만치 않은 막장의 달인들이기 때문이다. 

   지루하게 무한 반복되는 막장 드라마를 끝내고 새로운 장르를 발명할 기회는, 그러니까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2014년이 고딕 판타지로 마무리되고 있는 바로 오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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