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 시대, 소년·소녀담

 

 

 

 

권명아

 

 

 

 

 

   2012년 한국 사회는 ‘영애’가 성장해서 ‘여왕’이 되는 정치 드라마에 열광했다(51.6%). 이 특별한 ‘성장 드라마’ 시대에 다종다양한 소년·소녀담이 이어졌다. <겨울왕국>(1029만), 엘사와 ‘영애’가 닮은꼴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소년이 온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36만), ‘엄마’가 지배하는 제왕적 가부장 사회의 소년·소녀담 <차이나타운>(147만), <응답하라 1988>(21.7%), <시그널>(12.54%), 영화 <귀향>(314만) 등이다.

 

 

   이 소년·소녀담은 세 유형으로 나뉜다. 1 유형, ‘영애’가 ‘여왕’이 되는 ‘특별한’ 성장 서사. 2 유형, 천진난만한 소년·소녀가 ‘어엿한’ 어른이 되는 성장 서사로, <응답하라 1988>이 대표적이다. ‘복권’, ‘재개발’, ‘주식투자’로 상징되는 경제적 성장 서사를 동반하고, 과거는 비루한 현재를 밝히는 그리움의 원천이다. ‘엄마’가 살해한 소년을 대신해 ‘엄마’를 죽이고, 그렇게 ‘엄마’가 되는 <차이나타운>도 2번 유형이다. 두 작품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부친/모친 살해는 성장 서사의 무의식이다. 아비/왕이 어미/여왕으로 대체되었다. 3 유형은 <소년이 온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시그널>, <눈길>, <귀향>, <로봇, 소리> 등으로 이어지는 ‘유령’의 계열이다. 이 서사는 유령으로 귀환하는 소년·소녀의 이야기이다. 유령 계열은 아비/어미 부정이나 복수의 서사와는 다르다. 각 작품의 관객 동원은 앞의 두 계열보다 저조하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이 계열 전체를 합하면 앞서 두 계열의 관객 동원과 거의 맞먹는다.

 

 

   1 유형은 ‘아버지/왕’의 환영을 매번 소환하면서, 가부장/왕을 불러들인다. 2 유형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장이 시민/법적 주체 구성의 서사가 되는 근대 ‘가부장/법’의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3 유형에서 ‘억울하게 죽어’ 유령으로 반복해서 귀환하는 소년·소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고, 아비/어미라는 시민/법적 주체가 되지 않는다. 소년·소녀담을 뭉뚱그려 ‘가부장적’ 서사 계열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게으른 비평적 관성이다. 3 유형은 1, 2 유형의 성장 서사적 전형성과 시간성을 어그러뜨린다. 1938, 1980, 2003, 2014, 2016의 시간이 연대기적 시간을 깨고 출몰하는 소년·소녀 유령들에 의해 한꺼번에 우리 앞에 도착한다. 성장 서사를 중단시키고, 연대기적 시간을 깨면서 소년·소녀가 유령들로 우리 앞에 출몰하고 있다.

 

 

   과거 언젠가 소년·소녀는 억울하게 ‘미래’를 빼앗겼다. 빼앗긴 미래에 사로잡힌 과거의 ‘몸’이 유령들로 도착한다, 매번. 소년·소녀 유령은 현재에 도착한, 과거인 미래이다. 아이-어른, 과거-현재의 성장 서사는 중단되고, 아비/어미가 되지 않는 소년·소녀 유령은 시민/법의 시간을 두서없게 만든다. 대신 과거에 중단되고 잠재된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이 유령들이 걸친 과거의 ‘의장’은 민족지적, 생애사적 ‘과거’의 반영이 아니다.

 

 

   1, 2 유형의 성장 서사가 관객 동원 1, 2위를 다투는 동안, 이 성장 서사를 중단시키고 어깃장을 놓는, 과거형의 미래가 유령으로 여기, 도착한다. 개별 작품의 관객 동원은 미미했으나, 이들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여럿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문화적 재현에서 발생한 일이 정치적 대표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은 이미 도착했고, 성장의 시간/서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미래는 그렇게 과거의 의장을 입고 매번, 도착한다.

 

 

 

 

식민주의, 파시즘, 법

 

 

 

권명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분출하고 있다. ‘위안부’ 동원이라는 전시 성노예 동원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게 아니다. 또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 가부장 국가의 ‘보편적’ 차원의 연장도 아니다. 관련한 실명 비판도 필요하지만, 전략적 소모전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소모전의 덫에서 벗어나, ‘위안부’ 동원을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 젠더 연구의 차원에서 더욱 심화시켜야 할 때이다.

 

 

   ‘위안부’ 동원은 성에 대한 일본의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의 체제적 운영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성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풍속 통제라는 더욱 넓은 법적 구조에서 이뤄졌다. ‘위안부’ 동원에 관한 연구가 모두 풍속 통제 연구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 체제로 이어지고 여기서 법이 작용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이른바 ‘자발성’과 강제에 대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풍속 통제는 ‘선량한 풍속’과 이를 침해하는 ‘풍기 문란함’이라는 무규정적 규정을 통해 식민지 주민들을 끝없이 분류하고 위계화하고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벌 받고 모욕당해 마땅한 ‘문란한 여성’과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여성’이라는 분류 체계는 이런 식민지 풍속 통제의 ‘법적 이념’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되었다. 풍속 통제의 법제는 이와 관련된 세부적 법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관련된 모든 법 조항을 무작위로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법의 자의적 적용은 필연적이었고, 법을 집행하는 ‘말단’ 집행자의 자의성은 극대화되었다. 1926년 전후 독일법의 사례를 들며 조르조 아감벤은 풍속, 안녕질서, 문란, 선량함과 같이 법적 규정이 아닌 무규정적 규정이 법의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을 근대적 생명정치가 죽음의 정치(파시즘)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분석했다. 법이 스스로 초법적이 되는 과정을 연구자들은 파시즘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적 맥락에서 선량함이나 풍속과 같은 영역은 도덕이나 규율, 감정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풍속 통제는 이런 영역을 법적 통제의 영역에 두었다. 선량한 시민이 되는 일은 ‘상식적’으로는 ‘자발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법적 강제로 수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피식민자 내부를 분할하고 분류하고 적대적으로 대립시켜서 통치하는 방식은 풍속 통제에서 시작되어, 전시 동원 체제의 비국민에 대한 절멸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전시 동원 시기 조선인과 대만인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지만, 결코 그냥 일본인은 될 수 없었다. 대신 조선인과 대만인은 ‘좋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다. ‘좋은 일본인’이 되는 방법은 추상적이었지만, 대신 그 반대편에 있는 비국민의 분류는 무한하게 증식했다. 황민화 정책은 초법적인 법적 강제를 개인의 수행성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를 황민화 정책의 존재론적 전도라고 한다. 윤리나 ‘자발성’이라는 인간 내적 차원까지를 강제적 통제에 포섭했고 이게 ‘국민 정신총동원’의 뜻이다.

 

 

   일본의 경우 패전 직후 미 군정하에서 풍속 통제법은 대표적인 파시즘 법제로 폐지되었고, 성에 대한 관리에 한정해 축소되었다. 이 과정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풍속 통제법은 한국 사회에 일제강점기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분단 이후 독재정권은 풍속 통제법을 통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한국에서 식민주의 비판이 파시즘 비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역사 때문이다. ‘위안부’ 동원에 대한 비판이 ‘민족주의 프레임’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의 일환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의 힘

 

 

 

 

권명아

 

 

 

 

   최근 ‘위안부’와 관련한 논의는 외교적 차원이나, 담론 차원에서 기존의 국제적 연대와 연구, 실천의 역사를 모두 파괴하고 있다.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전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 외교적이든, 담론 차원이든 이런 전쟁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무엇보다 지난 발자취를 기억하고 보듬고 살피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1990년대 학계에서는 학살과 전쟁의 기억을 기념하는 작업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국가주의적 우상화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과 항쟁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과 공론화가 가능했다. 이런 역사에 비춰 보면 현재 기념과 기억의 문제에서는 국가와 민간 영역이 역전된 상황이다. 평화비(소녀상)는 민간 영역에서 설립한 것이다. 국가 기념물이 만들어지고 대중화되어 ‘특권화’되는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0여년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겨우 가능했다. 게다가 이런 국제적 연대를 통해 만들어진 기념물은 단지 ‘소녀상’으로 특권화되어 있지 않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좀 떨어진 도카시키나 미야코 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아리랑비’가 있다. 미야코의 아리랑비는 어린 시절 ‘위안부’ 여성을 만났던 기억을 간직한 요나하 히로토시의 개인적 추도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전후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녀들의 생사가 궁금했던 소년 요나하는 그녀들을 만났던 기억의 터에 돌을 놓아 추도했다. 개인적인 추도는 한·일 양국 연구자들의 공동 조사로 이어졌고, 2008년 미야코 지역의 위안소 지도와 지역 주민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가 발간되고, 기림비 제막도 함께 진행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아시아 여성을 기리기 위해 11개 언어로 만들어진 비문은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추도하는 의미로 베트남어가 추가되어 12개가 되었다. 이 작업에는 미야코 평화운동가와 여성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함께 참여했다. 이 작업에 참가한 시미즈 하야코와 우에사토 기요미는 지금도 미야코에서 평화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성노예화를 비판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과 기념물을 만드는 일은 이런 시민들의 국제적 연대를 매개로 한 평화운동의 힘으로 이뤄졌다. 일본이나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오히려 시민운동과 평화운동이 지속해온 기억과 추도 작업을 무력화하기에 급급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일은 무책임한 국가에 대항하여 싸워온 아시아 시민들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한-일 외무장관 회담과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아시아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를 무력화하는 총체적 위기로서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기억을 이어나가는 것과 함께 아시아의 평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일 역시 절실한 상황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빼앗지만, 기억은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 힘이다.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누구의 동의 없이도 삶을 박탈하는 전쟁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전쟁 논리를 고스란히 닮았다. ‘소녀상’이 가부장적 순수성의 이념을 특권화할 위험성이 있다면, 더 다양한 기림비와 평화비를 만들자. 파괴가 전쟁 국가의 몫이라면, 생성과 일굼은 전쟁논리에 저항하기 위한 인간 존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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