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사이에

 

 

 

 

 

래인커머 차가영

 

 

 

 

 

 

 

 

 

1. 시작

텔레비전에 두 남성이 한 이불을 덮은 채 서로를 간질이며, 꼭 붙어 장난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를 보고 있던 엄마는 뭘 저래 붙어 있노. 남자들도 저렇게 장난을 치나?”며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치지.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 남자들 보고 좀 놀란다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드라마를 보는 부모님의 대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다음의 말에서는 조금 놀란다. 아빠는 말을 이으며 그래서 외국인들이 뭐라고 한다더라, 그래, 그 레즈비언이라 한다던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순간 말을 잃고, 고민을 하게 된다. ‘남성 동성애자를 뭐라고 지칭하고 있는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레즈비언이 아니라 게이라고 쓰는데.’ 목 끝까지 말이 차오르지만, 고민하는 동안 텔레비전 속 장면은 넘어가버리고 나는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20151114, 부산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열렸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201312월에 카페 개설을 통해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임이다.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신앙과의 갈등에 대해, 자녀의 미래에 대해, 부모 자신의 걱정 등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별표현에 따른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희망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소수자와 가족, 친구, 지지자가 함께 행동하고, 성소수자와 가족, 친구, 지지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여 성소수자의 온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법제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 목적을 가지고 있다.(성소수자 부모모임 홈페이지 http://www.pflagkorea.org/ 참조)

이날의 모임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성소수자 부모모임이었다. 모임의 첫 대화 주제는 커밍아웃, 어떻게 하면 좋을까?”로 진행되었다. 이 주제로 나눈 대화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하게 할 수 있을까?”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입부에서 잠깐 예를 보인 것처럼 부모들은 성소수자, 퀴어, LGBT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커밍아웃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어떻게 부모님께 나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장 크게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모임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대개 부모가 자녀의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성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경우, 자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 그 중 TV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들 매체에는 검색 한번으로 LGBT/퀴어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분법적 성구분과 이성애가 인식의 중심이 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정보를 처음 접하는 부모들은 현재 사회 상황에 따라 정보를 찾아보게 되어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나의 자녀가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혐오의 말에 의하여 배제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자녀에게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고 한다.

 

 

2. 응원하는 마음

부모모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부모가 자녀의 지향성 혹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자녀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했던 부모님들은 자녀가 바뀌겠지” “이상한 애가 아닐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부모모임에 모인 부모님들은 생각을 바꾸었고, 현재는 자녀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녀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LGBT/퀴어 자녀를 둔 엄마/아빠로 자신을 소개하고, 자녀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지 궁금했다.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정보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 마음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무엇이 부모님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부모님을 처음 움직인 것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는 부모님들이 처음 부모모임에 오게 된 계기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자녀의 행동을 막든지 지지를 하든지의 여부를 떠나 내 아이를 구성하는 성소수자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욕구가 부모님들에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자녀의 지향성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병원에 가보기도 했다고 한다. 자녀의 대화를 할 방법 중의 하나가 부모모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또 부모님들을 움직인 것은 나와 같은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 병원에 가서 자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상담을 하는 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성소수자 자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자녀의 마음 상태, 자녀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는 앞의 두 가지 방법으로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부모인 나 자신은 어떤 마음인지는 사실 인터넷이나 상담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성소수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의 동질집단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부모님들의 이야기 속에 동질집단을 형성하여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모임을 통해 부모님들은 자녀의 지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정보들도 나누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공유하지만 자기 자신이 부모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식을 알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 자식을 대하는 나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부모님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부모모임에서 모이고,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마음들이 오가면서 부모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재밌는 것은 자녀에 대해서 알고자 모인 부모모임이 부모님 자신도 변화시켰고, 이것이 결국 긍정적인 운동의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모임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이날 부모모임에서 부모님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자녀가 사회의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것이듯이 부모도 자신의 부모 경험은 모두 처음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자녀가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부모 본인이 자녀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도 부모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고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처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한 부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을 부모님도 자녀의 정체성과 함께 경험하고 있었고, 이것이 부모님들 자신까지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부모모임은 이 변화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이 변화들이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부모님을 이끌고 있었다. 긍정적인 운동의 방향은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자신을 인정하게 했고, 이것이 부모님 스스로가 자신을 LGBT/퀴어 자녀를 둔 엄마/아빠로 소개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3. 아직은 풀어나갈 숙제가 많은 관계

부모님들은 부모모임을 통해서 자녀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방안들을 고민하고, 이를 다른 부모님들과 나누는 방법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자녀와도 함께 행동하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20차례가 넘는 만남을 통해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모임이라는 동질집단을 통해 자신의 부모로서의 위치와 경험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나누고 있었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부모님의 말을 듣는 자녀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부모님들의 고민 속에 강력한 지지를 드러내는 말들이 나타나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말들을 통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오가는 속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것을 느낀 것은 부모와 자녀 간의 수직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이 발화될 때였다. 부모님들은 모임을 통해 자녀와 이전까지의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부모모임은 한국사회의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처럼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 관계를 바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화에서 드러났다. 자녀를 부모가 서로 만나 만든 작품이라고 하거나, “우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아라와 같은 말이 모임에서 나왔다. 이런 말들 속에서 부모님들이 아직은 가족 관계를 동등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상하 수직 관계 속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모임에서 우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아라는 말도 나왔는데, 이는 성소수자와 비 당사자 사이를 많은 말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말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숨기더라도 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자신을 인정해줄 날이 온다는 말이었고, 따라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후 커밍아웃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라는 말이 성소수자에게는 폭력적인 말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는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을 숨기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불가능하게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도 있게 하는 말이었다. 이 말속에서 나는 부모님은 아직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취향과 같이 생각하고, 성소수자 자신이 노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간에 성소수자 당사자에 대한 말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성소수자의 가시성을 더 고민하게 되었고, 당사자의 말이 계속해서 말해지고, 퍼져나가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가족 형태 즉 이성애 가족, 정상가족을 벗어난 가족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픈 부모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통해 드러났다. 부모님이 아파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을 경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을지,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부모모임에 참석한 부모님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부모님이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 커밍아웃으로 인해 질병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만큼 성소수자 외에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많이 있고, 이를 없애기 위한 논의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는 논의였다.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밍아웃이 당연히 아픈 부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단편적인 결론은 성소수자인 자녀가 자신의 가족관계에 대해 할 수 있는 고민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말을 한 부모님들은 당사자의 부모님이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병이 차도를 보이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는 부모의 질병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자녀가 이 가족관계를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형태를 상상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단편적 시선과 질병의 여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사회 속의 다양한 가족 관계가 인정받고 사회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여 부모와 자녀 간의 다양한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을 막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바꾸는 것과 이를 통한 가족 관계의 변화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가족 관계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한다면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이슈를 통해 모이고, 이 이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모인 대안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만남을 통해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행하는 것에 있어 모임 안에서 논의되지 않은 문제들, 그리고 의견들이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 지역과 성소수자 부모모임

   이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가하며 들었던 생각 중 또 한 가지는 부모모임이 여러 지역에서 많이 생겨 서울의 부모모임과 연대하면서 부모모임 내에서 방향성을 잡고,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와 그 부모는 서로를 지지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같지만 성소수자와 부모라는 다른 위치 때문에 속할 수 있는 집단은 다양할 수가 있다.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지역에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과 단체가 생겨나고 이 단체의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듯 이를 지지하는 집단도 다양한 형태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성소수자 내외의 집단과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것처럼 부모님들에게도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고민을 나눌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 이슈를 논의하는 커뮤니티의 형태가 여기저기 뻗어가고, 생겨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에는 성소수자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따라서 이번 부모모임은 앞으로 지역의 성소수자 운동에서 부모모임과 같은 커뮤니티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직은 이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부정하는 말들이 점차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커뮤니티, 인프라가 성소수자 운동에서 더 많이 생겨날 것이고, 지역에서도 이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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