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a

 

 

 

조회 수 : 592
2011.09.25 (00:39:20)

 

 

 

 

 

 

 

 윰윰

 

 

"그래, 네가 자기 추전 해서 이번에 일본 간다며?"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지만, 제 의도와는 많이 다른, 제가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는 단어인, '자기추전'을 통해 통번역 팀의 일원으로 이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권명아 선생님께 얘기를 듣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든 생각은 "어,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데..?.."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진담 반 섞인 "공항 화장실에서 안 나올지 몰라요"란 무책임한 말을 할 정도로 긴장도 되고 걱정도 했습니다. 전문적인 통역을 해본적도 없었고, 제 스스로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특히나 학술 용어에 있어서는 전혀 무지했기에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내가 해도 되는걸까?",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도착과 동시에 의미 없이 나왔던 "웃음"은 아마 이제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고, 막상 현실에 된 상황에 극한 긴장감과 걱정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월경"의 기대감에 나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도착하여 들은 강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뭐지? 뭐지? 뭐지?"란 단어의 연속입니다. 그때부터 온몸의 긴장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낯가림이 있는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통번역 팀원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언어를 중개 해줘야 하기 때문에 낯가림을 없애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 하나의 "월경"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 와코 대학의 교수님과의 대화중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란 말을 했을 때, "그렇게 안보인다"라는 대답을 들었으니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통역에 있어 책임감을 갖고 나간 자리는 요코하마 팀의 발표였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이 아닌 팀원의 소중함을 뼛속깊이 느꼈습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저의 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저를 패닉상태로 만든 사건이 터졌죠. 그렇게 수희쌤께 애드립은 안된다고 했는데 제가 애드립 아닌 애드립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수 이후 스스로에게 실망을 해선지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습니다. 통번역에 있어 큰 실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만 가득했던 일정은 아닙니다. 이번 워크숍은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을 하고 돌아온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뒷풀이 자리에서 잠시 말을 꺼낸 적이 있지만, 앞선 실수들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생각은 "이러한 자리에 지금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고, 또 그런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또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던 우리 전체 팀원들과 조금 더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어서 좋다"라는 것입니다. 작게는 저희 통역팀원들부터 전체 연구팀원,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어서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 일본 측 선생님들과 학생들. 이들과의 만남이 함께 한 일정 속에서 나눈 대화들이 곧 월경이며,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생이 큰 것이 아니며 일본 일정 속, 그 현실자체가 공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가 막힐 때는 저희 팀원의 누군가가 혹은 일본 측의 누군가가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그 현장 자체가 공생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일본 측의 발표를 통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알게 되어 더욱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명직교수님과 현아씨, 그리고 와코대학의 김근태씨 이 세사람이 서로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처럼 저도 다른 의미의 "동지"를 만난 자리였기에 즐거웠습니다. ^^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을 하고 돌아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저는 집에 도착과 동시에 약 15시간을 내리 잤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추석 당일이었으며 저는 바로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제가 앞으로 할 일에 있어 받침돌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저의 미래는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것이다"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한국이 될지, 다른 나라보다는 조금 더 익숙한 일본이 될지 그리고 완전히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나라가 될지...하지만 이번의 "부딪힘"이 어느 상황 속에서도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어보다 한국어에 더 익숙한 일상이 계속 되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죽기전에 4개국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일본어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려 합니다. 상황이 다르지만, 김근태씨가 자유롭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대화하던 모습이 저에겐 좋은 자극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3박4일동안 기록을 위해 수고하신 진희씨와 뒷풀이를 가는 뒷모습들입니다!

 

 

 

 

 

 

 

 ajaㅋ

 

추석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추석을 즐기고만 있으려니 일본을 갔다 온 느낌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 후기를 빨리 씁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신현아씨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어 프로젝트 팀의 통역을 맡아서 갔다 왔습니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나와야겠다 할 정도로 긴장되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가서도 패닉상태를 겪기도 했고요.ㅜㅜ) 하지만 갔다 온 지금은 매우 기분이 행복합니다.

 

 우리 프로젝트의 연구 주제인 ‘정념’을 아마 들을 때 마다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님들의 글을 번역하면서 보았던 ‘월경’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갔다온 지금은 ‘정념’의 개념도 외웠고(확실한 이해는 못했지만..), ‘월경’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이 커다란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더 구분하면 와코우 대학의 사회학과, 쿠마모토 학원 대학의 동아시아 학과, 동아 대학교의 국문학과. 서로 다른언어, 또 상관이 없다면 없을 수 있는 이 세 분야가 모여 서로의 생각을 두 나라의 언어로 교환하고 이해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저의 역할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저 개인적으로 기쁜 것은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한 것입니다. 저는 방학이 시작되어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의 얘기를 많이 해서 죄송한 것도 있지만 몇몇 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 저는 즐거웠습니다. 또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 학생들과 노래방을 간 것도 엄청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만난 지 이틀 밖에 안 된 사람들과 노래방을 가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는데 가보니 재밌는 상황을 겪은 것이 즐거웠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사람도 있었고, 두 명이서 죽이 맞아 오키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신선했고, 또 태어나 처음 듣는 걱정의 대사(?)를 듣기도 해서 웃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은 노래방을 나와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늦은 새벽에 길을 잃었는데 하나도 무섭지가 않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이때가 일본에 가서 두 번째 밤이었습니다. 겨우 이틀 지낸 일본이 내 집처럼 느껴지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 옆에는 신현아씨, 김선우씨 같이 있었고 저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우리는 어떻게든 호텔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택시를 탈 돈도 있었고 전화를 해서 물어볼 장혜리씨가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볼 일본어도 있었고 방법은 많았습니다. 이 때 제가 느낀 지금까지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미래를 살아 나가야할까 내가 뭘 할 줄 알까. 뭐가 하고 싶을까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누가 ‘너 뭐할꺼야’ 라고 묻는 것 자체가 싫었고 저 스스로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꿈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을 잃어보니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경험을 해보니까 그런 꿈이라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부모님의 꿈이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저는 이도 저도 아니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지만 급하게 찾아보지 않고 일본어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해보면서 찾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해 진 것은 어정쩡한 상태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제대로 통역도 못하고 이렇게 제 고민만 덜고 돌아온 것 같아서 죄송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 날 술자리에서 울었던건,,, 제가 생각할 때 제가 제대로 통역을 잘 못하고 통역팀의 분담이 체계적으로 안된 것 같아서 일본어로 이야기 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이야기가 몇몇 분께 제대로 전달이 안된 미안함에 주책을 ...... 그래서 통역할 일이 있다면 미리 저 스스로의 실력을 업 시켜놓고 통역 팀이 더 체계적으로 구성 되어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많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워크숍이 net-a의 전환점인 동시에 저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수고 하셨고 추석 푹 쉬시고 곧 만나요 ~^^ 다음 번엔 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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