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정체성은 없다.  

 

 

 

소설가 金 飛 

 

 

 

 

 

 

 

나는, 없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기도 하며, 나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나는 나의 존재를 깨우치기도 한다. 내가 여기에 없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는 어떤 존재가, ''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혼돈이나 혼란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이 어떤 한 가지, 혹은 몇 가지의 이름으로 거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호출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이 세계의 일방적인 호출로 인해 '여성'이라는 이름의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박탈당한다. '학생'이라는 이름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의 인간도, 획일화된 교육의 틀 속에서, 혹은 '학생'이라는 이름의 편견 속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빼앗겨버리고 만다. '가장'이라거나 '남자'의 이름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인간을 어떤 틀 속에 꼼짝없이 가두어버리며, 하물며 '여성'이라거나 '장애인'이라는 말은 더욱더 폭력적으로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강압적인 틀을 지워버린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그렇게 모든 각자의 이름을 가진 인간들이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지시에 의해 국가나 제도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데 일조해왔지만, '시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층위의 거부할 수 없는 움직임은 이 세계와 인간을 단 한 순간도 어느 한 곳에 머무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우주의 시간으로는 일각에 지나지 않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역사가 우리에게 흘렀을 뿐, 우리의 세계는 지금 어떤 모퉁이를 돌며 시간의 관성을 견디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병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비'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남성'이라는 틀 속에서 빠져나와 '여성'이라는 이름 속에 편입되면서, 그리고 그 속에서 전에 없던 평온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다른 층위의 혼란과 혼돈 앞에 서 있는 나를 목격한다. 거듭해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혼돈은 언제나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친근했고 때로는 낯설었지만, 언제나 그건 일정한 거리감 속에 존재하는 이방인이었다. 그 혼돈 앞에서 매번 얼굴이 굳어가던 것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살아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고.

나는 지금까지 무수히도 여러 번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말했지만, 이제 나는 더는 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건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 삶과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소수자들에게는 반역이나 배반처럼 들리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정체성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인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나도 혼란 속에 있으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부의 시선이나 편견 따위 이제 뻔뻔스러울 정도로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내 안에서 어긋나며 찔러오는 무언가를 나는 분명히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 혼자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의 마음속에 딱딱하게 자리한 흉터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정체성이라는 말에 붙들리면 붙들릴수록 오히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거기는 더욱 크게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기에.

 

나는 비겁한 삶을 지향한다. '지양(止揚)'이 아니다. 분명한 '지향(志向)'이다. 나는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그런 삶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당하고 떳떳하다고 논리적으로 스스로 입장을 서술하며 턱을 높이 치켜드는 그런 삶이 아니라, 얼버무리고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해 머쓱하게 웃고 마는 그런 얼굴로 세상을 마주하며 사는 것이, 결국 내 삶이 궁극적으로 도착하게 될 지점일 것이다. 타인을 생각하고, 이 사회를 고민하고, 내 나라를 걱정하고, 이 세계를 안타까워하는 대신, 나는 오롯이 나 혼자만 생각하며, 흔들리고 불안한 나를 감지하면서, 날마다 쓰러지지 않는 나 하나만을 겨우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세상이라는 인간을 생각하는 대신, 오직 나 하나의 목숨에 매달려 벌벌 떨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며 살겠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따위 비겁하고 비루한 삶이 어디 있느냐 누군가 손가락질을 해온다면, 구구절절 어려운 수사와 언어들로 나의 선택과 논리를 증명하는 대신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세상의 말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밝혀낸 반면 그만큼 너무 많은 것들을 소외시켜왔다. 쏟아져 나온 말들을 신뢰하면서, 그 속에 매달리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정체성이라는 몇 개의 기호 앞에 우리는 너무 무기력해져 버렸으며, 전혀 그럴 필요 없는 일인데 그 앞에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다.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고 희망을 찾아간 반면, 그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삶을 져버리고 목숨을 잃었다. 정체성이 또렷한 것일수록 그만큼 당당하고 화려했으며, 정체성이 없는 존재는 언제나 괴물적으로 환기되어왔다. 물론 어느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올바르게 호출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서성거리고 더듬거리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은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나 자신을 두지 않고 위태롭고 흔들리는, 부유하며 사는 삶을 날마다 꿈꾸면서. 정체성을 빼앗겨버린, 혹은 놓쳐버린 나를 닮은 인간들에게 괜찮다고 그들의 어깨를 토닥일 수 있는 그런 삶을. 비겁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내 안에서 나를 위한 삶을 놓지 않고 사는 끈질기고 지독한 생의 애착을.

 

'정체성은 없다. 정체화가 있을 뿐이다.' - 자크 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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