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무명의 생

 

 

 

소설가 金 飛 

 

 

 

 

 

 

그래서 나는, 나를 띄워보낸다.

 

  지상의 관념 위에 나를 붙들고있던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이제 나는 나를 허공으로 띄워올린다. 경계 속에 나를 속박시켰던 편견과 강박, 그리고 또 다른 감옥일 수 밖에 없었던 전환과 변신, 끈질기게 나를 붙들었던 괴물같은 인간성과,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조차 알지못했던 두려움의 끈을 벗어버리고, 나는 있는 힘을 다 해 땅을 박차 올라 허공에 나를 띄운다.
  날개도 없는 것의 날갯짓은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높이에 불과하겠지만, 자신들의 경계 속에 안온함을 누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그건 고작 투신이거나 추락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온 힘을 다 해 나 자신을 들어올린다. 아무런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 모든 정체성이 사라져버린 공간. 그 어떤 이성이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관념의 공동.
  허공에 떠올랐기에, 어떤 땅 위에 발 딛고 있지 않기에, 나는 분명 위태롭고 위험해보일 것이다. 버릇처럼 그건 또 다시 내게 불안과 두려움을 추동시키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우기 위해 언제든 기꺼이 허공 속으로 몸을 내던질 것이다. 어디론가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발버둥치거나 비명지르며, 지상의 세계 어딘가에 도착한 생존을 갈구하지 않는다. 오지 않은 미래에 짓눌려, 일각의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의 고독을 알고 있다. 손에 든 최초의 무언가 어긋나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그런 고민과 사유 속에 발을 빠트렸다. 누군가는 그것을 장애라고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잠시 잠깐의 착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장애인지 착각인지 그들의 논쟁이 시끄러워지는 동안, 작은 상자 속에서 나는 언제나 공포에 질리며 혼자서 몸을 떨어야했다. 아무도 지켜주지 못할 거라는 절박함이 나를 깨우며, 나는 어쩌면 세상이 말하는 인간의 허물을 벗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른 채, 인간이 되기 위해, 세상이 말하는 그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나는 온 힘을 다 해 경계를 넘어서며 이리저리 분주하기만 했다. 때로는 도약이었고, 때로는 추락이었으며, 어떤 시간 속에서 그건 추억이었고, 또 다른 시간 속에 그건 악몽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내가 도착하게될 허공을 빈틈없이 탐색해야했다. 설령 그것이 어리석고 모자란 것일지라도, 끝내 나는 내가 다다르게 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러한 부유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서로 다른 경계 속에서 서로 다른 땅을 디디고 있는 자들에게, 나는 분명 침입하거나 침범하는 이방인이겠지만, 섣불리 희망에 기대거나 절망에 쓰러지지 않으며, 나는 표정이 지워진 냉혹한 얼굴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말소시켜야한다.
  다른 사람들은 할 필요가 없었던 혼자만의 투쟁으로 나는 이미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을 지워버린 이기적인 삶이지만, 나는 그것 만으로도 나의 생존을 담보할 수만 있다면, 내 이 모호한 삶의 의미를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깨달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너무 오래도록 확신을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혼돈과 혼란으로 태어난 생명, 그래서 더욱 나는 내 삶에 또렷하고 분명한 무언가를 갈구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것을 정체성이라 말하지만, 그건 언제나 어긋나기만하는 엇갈림이며, 결코 들어맞지 않는 과녁일 뿐이다. 내가 나를 가리키면서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나를 말하면서 내가 아닌 세상의 명령만을 중얼거리며, 내가 나의 삶을 살면서도, 나는 언제나 살해당한 채였다. 어떤 세상의 틀 속에서도, 나는 위협당하며 살아야하는 존재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서야 나를 미지의 공간 속으로 띄워보내고자 한다. 세상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깨끗한 여백의 시간을 나에게 선물한다. 그 어떤 것으로도 훼손되거나 오염되지 않으며, 오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 분명히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받고 비난받게 될, 그러나 결코 두렵지 않은 모멸의 시간.

 

  앞으로도 나는 너무 오래도록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끝내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며, 나를 살게하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희망이나 미래가 아니라 끊임없이 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나를 파헤치는 집요함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판타지에 붙들려 온 몸을 흔들며 내달리는 질주가 아니라, 여기 이 자리에 선 나를 잊지 않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의 걸음을 시작하는 일이, 바로 내가 살아야할 나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기, 이 땅 위엔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있던 해답이란 건, 어쩌면 우리들의 발 밑에 들러붙어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날마다 그것을 뭉개고 짓밟으며, 우리는 그렇게 어리석게도 허망한 미래만을 뒤쫓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그래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야한다. 세상이 부여한 표피와 흔적들을 벗어버리고, 부유하며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게 나만의 의미와 이름을 붙이고 불러야하는 것이다. 오래 전 인디언들의 이름이어도 괜찮을 것이다. '푸른 태양의 일격'이라던가, '용감한 하늘의 심판자'여도 좋다. '초록 생명의 흙'이라던가, '검은 사유의 시간'이어도 괜찮다. '꿈'을 '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며, '사랑'을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족'을 '동지'라거나 '적'이라고 해도 좋고, '친구'를 '연인'이라고 말해도, 혹은 '이방인'이라고 말하더라도, 부유하는 우리들 곁에 다가온 누군가는 똑같은 얼굴로,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거나, 혹은 지나칠 것이다.

 

  새로운 나의 호출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며, 나의 호출에 응답하는 것들을 기쁘게 맞이함으로써, 나는 나를 부르고 세상을 부르며, 그것으로 인해 또 다시 진정한 나의 이름이 호출되는 환희를 깨닫게될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부속품이 아니라, 이 세계를 나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작고 보잘것 없겠지만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의 시간을, 나의 차원을, 나의 세계를 살아야한다.

 

  이제부터 나의 정체성은 없다. 세상에는 나의 이름을 호출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세상에 태어난 모호하고 흐릿한 하나의 인간일 뿐,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사람도, 국민도 아니다. 오직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끝까지 살아남으며, 빈 몸으로 마음껏 이 삶을 즐길 수 있는, 언제나 꿈틀거리며 다시 태어나,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향유할 준비가 되어있는, 역동적 생명이 될 것이다. 날마다 새로워지게 될, 무명(無名)의 생이다. 飛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