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기웃거리기의 힘

 

 

 

 

소설가 金 飛 

 

 

 

 






  그러나 '괴물'이 되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의 제도와 관습에 익숙해진 모두에게 폭력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스스로 지켜온 인간의 모습이, 돈과 물질과 권력에 의해서 조종되고 통제되며, 오직 그것들을 통해 의미를 가지는 타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괴물적인 '인간'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인간적인 '괴물'의 모습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는 어불성설로 들릴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필연적으로 불안이나 흔들림으로 환기될 것이며, 당연히 두려움을 동반한다. 변해야 한다는 노력들은 또다시 강박이 될 것이며, 그건 오랜 시간이 걸려 우리들을 피로하게 만들면서,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할지도 모른다. 모든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결국 그건 꿈을 이룬 자들을 위한 들러리가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건 아주 비겁하고 치졸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제 괴물적인 인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괴물이 되기로 했으니, 그 따위 손가락질 쯤 껄껄 웃어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 자신도 '괴물'같은 용기를 끌어올려 건네는 제안이다. 어차피 획일적인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만큼, 이 길고 지난한 삶의 시간 속에 '외도'라고 손가락질 받을만한 일 쯤은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기웃거리기'다. 


  모든 변화는 두근거림이다.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설렘이기도 하고, 또한 현재의 무언가를 포기해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이 말은 곧 모든 설렘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지녔으며, 모든 두려움은 반대로 반드시 설렘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새로운 것 앞에서 우린 '두렵다' 혹은 '설렌다' 말하지만, 그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선택한 감정일 뿐,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혹은 설레게 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는 두근거림이며, 또한 똑같은 심장박동이다. 

  앞에서 나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억압하는, 이 경계로 나누어진 세계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이 세계의 억압이나 불안을 절감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환경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며, 혹은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문제, 직업이나 취미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털어내는 일이다. 어떤 변화 앞에, 자신의 두근거림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그것을 설렘이라고 자신에게 강박적으로 환기할 필요는 없다. 설렘의 두근거림을 지녀야 한다는 강박 대신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먼저 조금씩 지워내는 일이 먼저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일까? 공포에 질린 누군가가, 자신이 심장박동을 제어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기웃거리기'다.  


  어떤 경계가 있다. 당신은 경계 안쪽에 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당신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계 너머의 무언가가 자꾸 당신을 끌어당긴다. 경계의 안쪽은 비인간적이며 괴물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계의 안쪽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경계로 다가가라. 


  그리고 두 발은 여전히 경계 안쪽에 단단히 디딘 채, 고개를 길게 빼서 경계 너머를 기웃거리는 것이다. 경계 너머에 있는 그들과 눈인사라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가능하다면 그들과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눌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게 무슨 짓이냐고, 누군가 손가락질을 해올 것이다. 특히 당신이 의지하고 있던 경계의 안쪽에, 그 안온함과 권위, 혹은 계급은, 불안의 손가락이든, 비난의 손가락이든, 그게 아니라면 위협의 손가락이든 당신의 눈앞에 내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 당신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이 디디고 서 있는 경계 안쪽의 두 발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비난과 위협의 손가락이 당신을 가리키게 되더라도, 당신은 자신이 디디고 있는 두 발의 단단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가겠다는 비겁함도 좋고, 너무 힘들다면 그저 경계 너머의 형편없음을 알기 위해 기웃거리는 중이다, 비겁하고 야비한 핑계도 상관없다. 기웃거리기 위해, 결코 당신은 당당하거나 떳떳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내게 성정체성 문제로 상담을 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쪽 모두의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두라고 강조한다. 가능하다면 의료적 조치 이전에 양쪽 모두의 생활을 다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시기에는 여자로 살아보고, 또 다른 기간에는 남자로 살아보는 일을 직접 시도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저 반대성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반대성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식하며, 스물네 시간 그 역할에 맞추어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여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라면, 여성으로 옷을 입고 외모를 가꾸는 것만큼,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육체적 성인 남자로서 행동하고 남자의 성 역할을 최대치로 시도해보는 것이고, 반대로 남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라면,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 함께, 여성인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이완시켜 조금은 중성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볼 것을 권한다. 그것마저도 자신과 맞지 않다면, 남자이거나 혹은 여자의 정체성을 모두 던져버리고, 어떤 때는 남자의 정체성으로, 또 다른 때는 여자의 정체성으로 이리저리 오가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나는 감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두 발이 '인간'의 정체성을 단단히 디디고 있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야비해도 괜찮다, 비겁해도 상관없다. '인간'을 잃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어떤 경계를 넘어서든 상관없는 일이다. 


  기웃거림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두 발의 단단함을 믿고 있다면 어디로든 우리는 넘어설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학생의 경계 안에 있다면, 그 경계의 끄트머리까지 달려가서 경계 너머를 기웃거리며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고, 자신이 직장인이나 가족의 경계 안에 있다면 그 경계 끄트머리까지 달려가 그 너머를 슬쩍 들여다보고, 언제든 돌아서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다. 혼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느 방향으로든 자신이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경계의 끝까지 달려가, 마음껏 그 너머를 기웃거리다가 돌아오면 되는 일이고. '인간'이라는 단단하게 디디고 있는 두 발의 의미를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첫걸음을 떼어 놓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을 길들여왔던 생각에서, 사고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분명히 강박이고 선입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생각이나 신념, 혹은 믿음도 지우지 않으며, 그 위에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업데이트'다. 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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