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아름다운 길

 

 

 

 

소설가 金 飛

 

 

 

 

 

 

  '변이'란 똑같은 종에서,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서로 다른 종류와 모양, 혹은 개체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 변이는 처음부터 정상, 혹은 비정상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 혹은 또 다른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하는 것이다.

  질서와 균형을 획일성이나 통일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잘못된 습성을 지녔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는 결국 주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똑같은 자아를 가진 누군가를 존중하는 법 대신에 그들을 지배하고 그 우위에 서려는 집착을 드러내면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짓밟으려는 '괴물성'을 지녔다.

  자아의 영혼을 살찌우고 충만하게 하는 법을 채득했던 것이 아니라, 겉모습의 미추(美醜), 계급의 고저(高低)만을 보고 판단하는 습성을 지닌 현대인에겐, 처음부터 타인을 판단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떤 모습이건간에, 그들의 외모가 자신들이 판단하는 '' 혹은 '화려함'에 부합하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긍정적'으로 치환해버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나쁜 사람, 혹은 자신과는 다른 하등한 존재로 치부해버린다.

  그렇게 인간의 자아가 결여되어있는 이들은, 또한 언변이 뛰어나며 목소리 또한 크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움직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들에겐, 모두를 단번에 끌어모으는 구호나,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언변으로 자신의 권위와 지위를 유지하려 애를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논리와 이성이 따로 존재하며, 진실되게 마음을 울리는 그 어떤 경구(警句), 그들에게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권위를 뽐내기 위한 자랑거리로 전락해버린다. 그로 인해 추앙받고 존중받는 일들을 즐기면서 자신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간적인 자아를 지녔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그것에 귀를 기울여줄 군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한꺼번에 허물어지게 될, 화려하게 눈을 현혹하는 가면에 불과하다.

  자신의 삶을 나날이 새롭게 하는 창의적 방법을 모르는 그들에게는, 오로지 돈만이 유일하게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십 수백 가지의 새로운 것을 돈으로 사들이고 그리고 너무도 쉽게 그것들에 흥미를 잃고 또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사들이지만, 돈이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는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 수 없다. 또 다시 기계 속 부품 하나가 되어 거대한 무언가가 굴러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소외되고 버려진 스스로의 자아는 어딘가에서 잔뜩 쪼그라들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외향적으로나 태생적으로나, 그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너무도 쉽게 '괴물'이라고 지칭하며, 그들에게 혐오를 드러내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누군가, 혹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야만 자신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들을 향한 손가락질과 상처를 주는 말들은 더욱 무차별적이 되고 또한 무자비해진다.

 

  스스로 그토록 인간답고 이성적이라 말하면서, 자아를 잃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괴물의 꼬리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돈의, 물질의, 외향이나 계급의, 그리고 누군가가 그어놓은 경계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그들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의미를 잃어버린,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를 닮은 '괴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괴물이 된 서로가 오로지 더 높은 계급, 더 많은 물질만을 추구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괴물적으로 집착하면서, 반대로 도태나 패배를 삶의 모든 것이라 규정하며 스스로의 삶을 모두 포기해버리는 극단적인 짓까지도 서슴치않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보다, 인간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상위에 놓아야할 가치나 제도, 혹은 물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순환되어야하는 일이며,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한다. 교육이란, 인간에게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심어주고 그 위에 제도와 물질의 의미라는 가지를 자라게 하는 것이어야하며,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그 명제 하나만으로도, 모든 타인은 나만큼이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증거라는 사실을 배워야한다.

 

  나는 경계로 인한 모든 불안과 억압을 떨치고 일어나는 방법을 말하기 위해 '변이'에 대해서 말했고, 그리고 다시 '인간'에 대해 힘주어 말하고 있다. 변이와 인간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괴물'이라고 부르고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도 괴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이제 우리 모두 '아름다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를 쓰고 그 누군가가 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며 나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괴물성,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내게 주어진 세상의 경계에 대한 억압이나 불안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인식하는 참으로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괴물'이 되라고 말이다. 세상이 규정하는 보통 사람이 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하며 좌절하는 대신, 세상이 말하는 '보통'이나 '정상'과는 다른 나의 모든 것들을 오히려 더욱 소중한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 삶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만들어가는 그런 '괴물' 말이다.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적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 말하겠지만, 우리들은 이미 그런 '아름다운 괴물들'을 너무 여러번 목격해왔다. 장애나 가난, 혹은 다른 종류의 소수성이나 특수성은 획일적인 이 시대에 당연히 스스로를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근원이겠지만, 그들은 그것에 짓눌려있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딛고 일어서 세상이 말하는 인간적 삶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괴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괴물'이라는 한계를 끌어안고 태어나, 자신이 그런 '괴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 어떤 인간도 구현하지 못한 참된 인간성을 보여주며 인간됨을 증명한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매달리고 있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괴물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역설일 것이다.

 

  성전환자라는 이름의 내 안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 되고자하는 집념 따윈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불안이나 혼돈을 지우기 위해,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 오래도록 발버둥치면서, 나는 그걸 모두 다 소모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일으켜세웠던 것은, 이젠 내겐 아무런 선택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나는 경계를 넘어섰고, 경계 너머는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런 이상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나는 그것이 오히려 더욱 심각한 불안과 억압을 내게 주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또 다시 지금과 똑같은 속도로 지난하게 흘러가는 시간 뿐, 어차피 내게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한 현실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이완시켰다. 텅 빈 존재가 되고 나니, 어디로든 마음껏 흔들리며 날려가는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딘가로 나 자신을 띄워보내면서, 그제서야 나는 조금씩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나 여자 따위의 정체성이 아니라, 참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창의적이고 즐거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 대해 남자나, 혹은 여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역설하는 대신 그저 편안한 대로 판단하시라 말했더니, 아무런 강박이나 억압도 없는 가벼워진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억지로 만들고 꾸며진 내가 아니라, 진정으로 순수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남자, 혹은 여자로 나뉘어진 세상의 눈에 나는 '괴물'처럼 보이겠지만(실제로 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몇몇 사람들은 그런 악의적인 말들로 나를 지칭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제야 ''라는 하나의 인간의 정체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깨우침이었으며, 가벼워진 인간만이 얻을 수 있는, 참된 인간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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