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밭마을 입구를 지키는 어르신들과 나무에 매어놓은 밧줄>

삶의 존엄의 값은 얼마일까

신콩떡

 

지난 토요일에는 셋이서 밀양 평밭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에 여기저기 연락은 넣어서 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얻었지만 접근하기 쉽지많은 않았습니다. 밀양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서 한참 들어가면 평밭마을 입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입구에서 다시 한참을 차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산 속에 숨어있던 그 안의 평밭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입구에도 어르신들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더위를 이겨내며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여기서 한참 들어간 129번 공사현장에서도 천막을 치고 어르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다다라서 싸들고 온 음료수를 건네드리며 인사를 드리니 한 할머니가 반기며 말씀하십니다.

"부산에서 왔다꼬? 서울에서도 오고 전국에서 우리를 모리는 사람이 읎네!"

정말 깊은 산 속에 웬 땅이 있어 '평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마을에는 올라설 '철탑'도 없고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는 목소리를 알아줄 사람도 없어서 그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8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저 자리에 앉아 지키는 것에 조금씩 손이 닿아 여기저기서 발걸음이 이어졌으니, "전국에서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밤낮으로 새벽같이 교대를 하며 자리를 지켜온 시간에 대한 한풀이이면서도 기쁨같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냥 마을가는 앞길에서 내다본 바깥세상.jpg>

마을 입구에서 한참을 다시 트럭을 타고 들어갔습니다. 정말 무릉도원처럼 숨어있는 평밭마을에서 본 바깥은 너무나 작고 멀었습니다. 전쟁이 나는 줄도 몰랐다고 할 만큼 깊은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작은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건사해온 사람들에게 갑작스런 이주는 단순히 다른 곳에 집을 구하고 이사하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만들어온 관계, 삶의 방식, 살아온 세월, 환경 속에서 몸만이 뚝 떼어내 옮겨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됩니다. 평생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건사해온 사람을 한 순간에 그저 조용히 스러져갈뿐인, 부축받는 삶으로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

밀양의 주민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70년, 80년씩 일궈왔습니다. (심지어 이 시간은 이들에게 이 땅을 나가라고 하는 국가의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입니다.) 한전에서는 '보상'을 이야기하며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곳의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평생을 이 땅에서 일궈온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리고 그 존중을 통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계약, 자본, 보상, 금전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뿐 그 존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과 삶의 방식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요? 삶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는 요구는 얼마나 돈이 있으면 보상해줄 수 있을까요? 이 곳의 주민들은 이제 자신의 삶의 존엄성뿐만이 아니라 모든 땅의 존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송전탑이 이곳에 세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니, 십년이든 언제든 기다리겠다, 지중화를 하거나 다른 대안을 이야기하자고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다시 말하고 다시 요구하고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밀양에서 부산으로 올 때에는 밀양 어르신의 아드님께서 차를 태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한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며 밀양의 여러 상황에 대한 속성강의! 를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기억나는대로 간단한 인터뷰처럼 재구성해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 힘들어하시니 많이 마음이 안좋으시겠어요..

부모님은 밀양에 계시고 저는 부산에 살면서 주말에 가서 돌봐드리고 하는데요, 지금 상황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어요. 처음에야 저희도 부모님, 이 참에 그냥 바깥으로 나와서 저희랑 사십시다, 라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요, 말릴 수가 없어요. 자식인 저도 못막습니다. 죽을 각오를 다들 하셨어요.

 

한편에서는 보상문제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더라구요.

처음에야 보상 이야기가 나오긴 했죠. 근데 보상 기준이 송전탑 30미터 안쪽만 해당이 돼요. 몇 년을 싸우니까 90미터로 늘려주긴 했는데, 그렇게 되면 보상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송전탑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암이 유발되었다는 연구도 나오고 했는데, 반경 90미터 안이 아니면 그냥 살다가 암에 걸리든 나몰라라 한다는 거예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분신을 하셨잖아요..? 그 분 땅 바로 위에 공사가 되거든요. 그 분 땅이 약 9억원쯤 하는 땅인데, 3천만원을 보상해주겠다고 했대요. 그 분이 나는 여기서 나가서 살 수 없다고 막았더니 그 땅을 밀어내버린 거예요. 평생 살아온 땅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기는데, 아무도 그 말은 안들어주고 땅을 밀어버렸으니 분이 오죽하겠어요? 그거는 말로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이제 쟁점이 보상이 아니군요?

이제는 보상이야기로는 될 수 없는 국면이에요. 장장 8년을 싸우는 와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정말 용역 직원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했거든요. 무슨 말을 해도 안듣고 들어내서 던져버리는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보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다가 마을 이웃이 그렇게 갔으니, 그걸 배신하면 안된다는 생각까지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살아온 것에 대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예요. 그런 걸 갖다가 한전에서는 지역 이기주의니 그렇게 매도를 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숨을 건다고 하는 게 절대로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 죽을 각오를 하셨어요.

 

실제로 지역이기주의라는 이야기가 많이 되나요?

이게 벌써 8년을 끌었는데, 저번에 기자분들이 같이 와주셨을 때도 한전에서 할머니들을 질질 끌어냈는데, 그게 그대로 언론을 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는 한전에서 지역 이기주의니 하는 식으로 계속 말을 했어요.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이야기하는 것이 단순히 내 집 앞이라 싫다, 이런 것이 아니예요. 지금 밀양에 못짓게 하더라도 어느 곳에는 초고압송전탑이 들어서지 않겠어요? 그러면 또 누군가가 밀양에서처럼 또 싸워야겠죠. 그러니 단순히 내 집 앞에 짓지 말라는 것보다는 핵발전의 문제나 지중화(땅 속으로 묻어서 전기를 보내는 것)같은 것들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부 했던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오래 싸우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씩 다 공부를 하신 거예요. 젊은 사람들도 전혀 모르는 것을 공부하려면 어려운 일인데, 농사만 짓던 분들이 송전탑이니, 친환경 발전이니, 지중화니, 기존 송전선 활용이니, 이런 것들을 공부하신 거죠.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시면서 아 이게 밀양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하시면서 점점 더 송전탑 건설 반대에 대한 신념을 굳히시게 된 거예요. 그런 상황인데 지금 보상금이 이야기가 되겠어요? 이제는 진짜 생각이 딱 확고해지셔서 말릴 수가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직접 공부를 하셔서 지중화 건설같은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한전 측에서는 어째서 공사를 강행하는 걸까요?

한전에서 처음에는 겨울철 전력 대란을 대비한다고 말을 했는데 실은 그것도 설득력이 없어요. 송전탑을 못세우면 겨울철 전력 대란 때문에 블랙아웃이 온다고 하지만, 송전탑을 세워도 예비전력에 턱없이 못미쳐요. 그러니까 송전탑 없이도 예비전력으로 가능하고 다른 대안들이 많다는 거죠. 그런데 얼마 전 한전 부사장이 직접 말했잖아요. 이명박정부 때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했어요. 수출하는 모델이 신고리 3호기예요. 그리고 이게 2015년 안으로 가동되는 것을 확인해야 계약이 완전히 성립이 된대요. 그래서 이 신고리 3호기의 테스트를 위해서 밀양 송전탑을 세우는 거죠. 어르신들이 지금 십년이 걸리든 괜찮다, 지중화 하자고 해도 한전에서 그렇게 안해주는 게, 2015년 안에 신고리 3호기 테스트를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까 그런 거고요.

 

그렇게 발전소를 돌려도 실제로 전기를 쓰는 것은 저 멀리 대도시의 사람들이거나 산업전기이거나 할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참 어불성설이네요.

안그래도 한전에서 발전소 돌리면 너희는 전기 안쓰나? 라고 하면서 전기를 끊어버렸어요. 어르신들이 전기 써봐야 얼마나 쓰겠습니까. 아침일찍 나와서 해지면 주무시고 저녁에 티비나 잠깐 보실까말까 한데. 어르신들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전기 들어온지도 얼마 안됐고, 여기는 보다시피 전화가 된 것도 5년쯤밖에 안됐습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이전과는 좀 다른가요?

예. 저번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용역한테 맞는 모습이 언론을 타고 난 이후로는 한전에서 외부사람들을 무서워해요. 이번 주말만 해도 희망버스랑 전국에서 사람들이 오니까 잠깐 철수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르신들도 힘이 많이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평일입니다. 평일에 와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무래도 적으니까 주말에 잠깐 빠졌다가 평일에 어르신들만 남았을 때 들이닥치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까 와서 계속 있어주시는 게 제일 힘이 되죠. 그리고 또 여러 곳으로 소식을 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그냥 여기서 보신 대로만 말해주세요. 그냥 보신 만큼만요.

 

* 5월 28일 월요일. 한전에서는 주민들을 제압하고 다시 공사를 강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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