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닥치고, 밀양

 

2013. 05. 25.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에서의 기록

 

양순주

 

  대치 상황.

 

  밀양으로 가기 전날과 가던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페북을 통해 여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침에 매체에 뜬 속보는 공사 중단을 알렸다고 했지만, 현장에 있던 몇몇 인부들과 어르신들의 사소한 다툼 또한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체는 중단을 공시(公示)하면서 현장의 목소리 정도는 사소한 것으로 가볍게, 묵살(默殺)해 버린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밀양 곳곳으로 찾아들어왔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은 침묵한다. 중단을 선언하며.

 

  다시 시작된 공사 첫째날 어떤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사진은 그들(한전/정부)이 가까스로 막아놓았던 사실을 폭로(暴露)하고 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여론은 밀양을 조금씩, 그러나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내 눈 앞의 현실이 아니니까, 또 깊은 산 속 마을의 일이니까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한전/정부)과 공모(共謀)하고 있다.

 

  그들(한전/정부)은 각지에서 출발한 탈핵희망버스의 밀양행을, 그렇게 구성되는 다중의 역능이라는 두려움을, 공사 중단이라는 이쁜 말로 포장해 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좋아요>라는 루트를 통해 그 사실을 전파한다. 그리고 또 밀양으로 간다. 그렇기에 그들과 우리는 여전히 대치하고 있다. 그 대립은 우리의 시작에의 선언이다.

 

 

              

 

 

  마을 비석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나무들 사이사이에 둘러쳐진 밧줄이 얽혀있다. 그 뒤 산길가 바닥에, 돗자리 위에, 의자에 평밭마을 어르신들이 누워있다. 길 위, 노상(路上)에서 생활한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고 잇달은 경운기들. 일손(사람/경운기)은 멈춰있다. 삶의 중지. 그들(밀양 어르신)에게는 집안일을 돌볼 여력이 없다. 꽃나무에 물을 줄 시간조차도.

 

 

  765kV out!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와 같이 면적이 넓은 나라에서 장거리로 발생하는 전기손실률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765kV의 초고압 송전탑이 대한민국의 어느 마을에 꼭 필요한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345kV인 고압 송전탑이 건설되어 있으나 이번 경우엔 765kV에 달하는 초고압 송전탑이며, 이것이 산을, 들판 한가운데를, 주민들의 생활권을 관통하려 한다.  

 

  애초에는 보상을 위한 협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가 9억원이 넘는 논에 공시지가라는 명목으로 3000만원이라는 금액을 염치없이 내밀며, 그들(한전/정부)은 보상(補償)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리고 그 날밤 할아버지의 죽음(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74) 분신). 어르신의 삶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은 그들(한전/정부)은 이제, 무엇으로 다시 보상해 줄 것인가. 아니 보상이라는 말따위를 어떻게 뻔뻔스레 들이밀 수 있을까.

 

  보상이라는 하잘것 없는 미끼에 속아줄 이들은 이제 없다. 그들(밀양 어르신)은 죽어도 좋다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한전이 말하는 보상 범위는 현행 송전선로 좌우 34M에서 94M로 확대된 것뿐이다. 765kV인 초고압 송전탑은 높이만해도 140M라고 한다. 그런 초고압 송전탑과 그 선로에 100M도 되지 않는 반경 안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가능하겠는가. 8년이라는 시간을 싸워오며 얻은 것이 고작 60M가 늘어난 보상 범위라고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대학/원을 다닌 시간과 맞먹는 기나긴 시간동안 그들(밀양 어르신)이 싸워서 지키고자 한 것을 60M로 보상해 준다고 하는 그들(한전/정부)의 말은 어디로부터 튀어나오는 것인가. 

 

  8년을 시간을 날림으로 날조(捏造)한 그들의 말을 이젠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그러니, 지식경제부가 제출한 소요 재원(2013년부터 12년간 1조 3639억원을 345kV 이상 송전선로 지역과 발전소 인근지역에 쓰겠다)이 진정 실효성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거짓된 주장에 맞서, 그 돈을 차라리 인근지역 주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해 주는 지중화(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방식)로 하자고 밀양 어르신들은 주장한다. 이것은 왜, 무엇이 잘못된 주장인가. 공권력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대화로, 이렇게 타당한 대안까지도 제시해 주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생각해보라. 이 하찮은 핸드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니 어쩌니를 운운하면서, 765kV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렇기에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달라는 그들의 요구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상상이나 해 보았는가. 45층 건물 규모의 거대한 철탑이 내뿜는 발열량, 소음, 전자파. 이 모든 것들 곁에서 당신의 삶은 안녕(安寧)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너무나 당당하다. 애초에는 용역을 데려와 밀양 어르신들을 끌어내고, 이제는 경찰을 대동하여 보호(保護)라는 명목하에 폭력을 행사한다. 경찰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인가. 한전은 경찰과 함께 밀양 어르신들을 막아 세우고 그들(밀양 어르신)의 터전으로 침투하여 서서히 그러나 재빠르게 공사를 진행한다. 그들(한전/정부)의 다급함은 결국 발설(發說)되었다. 자신들의 입에서. 한전 부사장의 말을 통해 "UAE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참고모델이 됐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한다", "2015년까지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패널티를 물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는 진짜 이유가 밝혀졌다. 자신들이 작성한 한 장의 종이를 위해 사람들의 삶과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그들(한전/정부)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자들인가. 

 

 

 

 

     

  밀양 어르신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마을입구를 봉쇄(封鎖)해 두었다. 모든 걸 내어놓고/내려놓고 가로막기 시작한 싸움. 그러나 그들(한전/정부)은 그 선을 무력(武力)으로 침입해 어르신들을 봉쇄시켜놓고 공사를 강행한다. 잘 포장해 묻어둔 것이 터져버린 것을 막기 위해 그들(한전/정부) 역시 싸움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또 다시, 계속해서 터져나올 것이다. 자신들 스스로의 입을 통해, 그리고 그 사실을 본 무수한 이들을 통해, 또 밀양을 묵묵히 지키며 끝없이 싸우는 어르신들을 통해. 그렇기에 봉쇄는 이미 해제되고 있다. 그 곳에 우리의 시작이 가로놓여 있다. 

 

 

  다시 월요일. 사람들의 일상은 시작된다. 휴일을 맞아 쉼의 시간을 가지고 우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지금, 밀양의 그들에겐 지난한 싸움의 시간이 곧 그들의 일상이다. 일상이라는 어의(語義)의 괴리(乖離). 그 엄청난 격차 앞에서 나는 한없이 죄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밀양이 아니라 여기, 일상에서, 나의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역설적이지만) 우리 모두 닥치고,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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