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Passion for another life

희미한

불빛의

연대기

 

 

 

아프꼼(aff-com)의 이름과 언어에는 언제나 '만남'이 스며있다. 아프꼼의 안에서의 만남, 바깥에서의 만남, 아프꼼과의 만남, 만남, 만남. '만남'으로 하여, 나도, 당신도, 아프꼼도, 즉 우리는 언제나 다른 것으로 변화되었다. 그 변화의 모습들은 너무나 미미한 그리하여 또 희미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만남'의 연대기(年代記/連帶記)를 남겨보고자 한다.

 

<인터뷰: 희미한 불빛의 연대기>는 아프꼼에서 기획 중인 다큐멘터리 <Passion for another life>를 촬영하며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의 시작을, 그간 해 온 <인터뷰a>의 형식에서 그 이행의 흐름을 더듬어본다. association 속의, 또는 agit 속의 하나 또는 한 명인 'a'를 찾아서. 그리고 세속의 물결 속에서 떠내려 갈 듯한 진지-agit를 말없이 지키는 a에게서 말을 캐내어, a들을 agit, agit들을 다시 association으로 이어내려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aagit가 홀로 빛나다 사라지지 않도록 그 사이-사이 연대의 선을 긋는 지도를 만들어, 그것으로 세속의 물결을 함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다시 되짚었을 때 'a-agit-association'으로의 직관적인 이어짐은 한편으로 어떠한 '낙관'을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코뮨' 또는 '공동체', 즉 체제의 물결 속에서 다른 삶의 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모임의 안에서 '낙관''기쁨'은 늘 수많은 실패와 상처, 슬픔에 뒤이어서야 겨우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낙관''기쁨'은 늘 수많은 미래의 언어를 갖지만, 수많은 실패와 상처, 슬픔은 늘 과거의 언어로만 남아 애써 잊혀지거나 지워질 따름이다.

 

그러니 실은 우리가 그 a-들에게서 찾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a-agit-association' 의 사이를 위태롭게 잇고 있는 한 가닥의 '이음'이 갖는 낙차에 대한 것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우리의 질문은 이제 '슬픔'으로 이행되어 간다.

 

그러나 '슬픔'의 안에는 언제나 한 가닥의 기쁨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긴 어둠 속에서 하나의 희미한 불빛이 잠시 빛나 간신히 다른 불빛에 닿는 순간, 그 희미한 불빛들의 만남은 막막한 어둠과 함께 조우의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을 물으며, 비탄과 자조의 후일담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말을 길어내고자 한다.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마음과, 막다른 곳에 도달했던 마음, '함께-있음'을 갈망했던 마음이 있었던 자리들이 폐허로 남지 않기를. 그리하여 실패와 상처, 슬픔이 더 이상 후일담으로 소비되지 않고, 그 다음의 더 나은 실패를 향해 다시 나아가는 힘이 되기를. 그리고 그 순간의 빛남과 어둠이 과거의 말로 잊혀지지 않기를. 우리의 기록이 그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이유이다. 빛나는 그 순간만큼은 꼭 기쁨이 아니더라도, 찬란할 것이다. 그러므로 희미한 불빛의 연대기는 끝내는 종결되지 않을 '이행'의 선상에서, 그 슬픔과 상처, 미래의 언어를 길어내기 위한 시도이자 기록이 될 것이다.

 

 

 

 

 

코뮨: 어둠의 말, 반짝임의 연대

 

신지영 인터뷰

 

 

인터뷰어/aff-com

2012.8.12/ 도쿄 신주쿠의 사회과학서점 모색사(模索舍) 앞 까페

 

 

 

 

aff-com

신지영 선생님에게도 연구자로서나 개인의 생애사로서나 일반적인 경로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과 일찍 어린시기에 만나온 경험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러한 궤적과 경험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에 있어서는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신지영

저는 꽤 개인적인 사람이었는데도, 늘 집단에 있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집단'에 대한 첫 경험은 인하대 걸개그림동아리 '터갈이'라는 곳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과학을 책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걸개그림을 그리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배웠어요. 처음엔 데모에 가자고 하면 안 나가겠다고 하거나, 그런 선배들과 싸우기 위해 맑스주의 서적을 보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때 동아리에서 겪었던 공통의 경험들이 너무나 가슴 뛰었습니다. 저희는 커다란 걸개 그림을 옥상이나 강당에 펼쳐놓고 함께 그리곤 했는데 수업을 듣다 나오면 그림이 바뀌어있고,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가고,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고, 그 때의 바람과 하늘, 그 공간의 기억이 원형으로 남아있습니다. , 저는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도 잡일을 주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잡일을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일하면 낯을 가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게 공동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괴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빛나는 순간을 기억해 보면, 우리가 모두 반짝반짝했던 것 같아요.

 

aff-com

선생님이 갖고 있는 원형의 기억이나 관계와 일에 대한 말들이 집단이라는 '현장' 속에서 함께 몸으로 움직였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러한 경험들이 신지영 선생님의 연구주제로도 이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지영

'수유+너머'에 가서는, '수유+너머'가 근대성과 자료읽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자료 읽는 연습을 참 많이 하면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석사와 박사논문 주제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연설하고 좌담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고 논의하는 장소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원래는 더 뜨거운 공간을 보고 싶었습니다. 공식적인 담론장이 아닌 비공식적인 담론장을 다루고 싶어서, '소문'같은 공간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렇게 말과 언어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연설, 토론에 대해서 쓸 때도 사람들의 몸에 대해서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더 생생한 것들, 그러니까 코뮨, 공동체 등에서 느꼈던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주제를 꼭 다루고 싶었습니다. 제 공부는 근대성, 자료읽기, 한국문학과 같은 것과, 사회학, 철학, 운동사나 활동과 같은 것이 늘 함께 가는데, 그러면서도 그 둘이 분리되어 있었어요. 현재 일본에서 하고 있는 '1950년대 서클 마을'이라는 주제는 2008년에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제 문제로 느껴졌고 늘 분리되어 있던 두 가지가 합쳐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못했지, 나는 그때 왜 이 말을 하지 못했지, 이건 우리가 더 잘했는데!' 이렇게 모든 것이 내 문제로 바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다니가와 간(谷川雁)을 번역하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 공부를 하면서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나 이치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 그리고 <무명통신> 만났어요. 1950년대 서클 운동도 여러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초기적 형태의 서클들도 있고요. 그 중에서도 큐슈 지방의 <서클 마을(サークル>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활동이 기존의 서클 마을에 대한 비판을 함께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나, 코뮨 안에서의 문제들, 어둠 속에서 생기는 어둠 같은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훨씬 깊고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공부하면서 비자도 장기간으로 받고, 또 내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제도를 찾았는데, 박사과정만한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글을 쓸 것이라면 박사논문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사상사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마을들을 연결시켜서, 내가 고민했었고, 수유+너머가 고민했었고, 대추리 지킴이들이 고민했었고, 홈리스 운동들이 고민했던 것들, 고민하고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 역사 속에서 만나는 말들을 통해서 그런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전히 코뮨이나 운동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게라도 그런 것들을 꼭 해야지 라고 늘 생각하고 지금도 조촐하게나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명이건 여섯 명이건, 세 명이건, , 셋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둘은 서로 시선이 분산이 안 되니까 안 되고, 셋만 되면 일단은 된다고 생각해요.

 

aff-com

그렇지요. ''이라는 건 사실 작은 힘이죠. 선생님과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런 작은 힘에 대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큰 사회 전체를 환기시키고 역사의 기획으로 남아서 이 시대의 대표로 남는 것만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지 않고 사람들은 몰라도, 나름대로 자기 바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처럼 말이지요.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자기 '바닥'을 변화시키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런 의미로 이 '바닥들'에서 남들은 잘 모르지만,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신지영 선생님에게 그 바닥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듣고 싶기도 합니다.

 

신지영

다니가와 간의 글 중에 인상 깊었던 말 중에, ''연대의 쾌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모여서 심포지엄을 하고 책을 내는 것도 연대의 쾌락이에요. 그런데 그런 것과는 다르게, 이 모임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었고, 저기도 저런 문제가 있었고, 그리고 그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면 그건 인류 사상 단 한 번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해보려고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밖으로 나가서 집회를 하는 것과 안에서 바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중요한 운동이냐는 것처럼. 길 위에서 써야 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내 안의 내밀한 문제들을 더 깊이 고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내 안으로 침잠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늘 부딪힙니다. 그 문제들은 인류사상 한 번도 해결되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거리에서 무엇인가 공론장이 벌어지고 만들어지면 그냥 그 자체로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리에서도 밥 짓는 사람이 있어요. 또 청소하는 사람도 있지요. 또 밥 짓는 사람들 속에도 집회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또한 사람들은 왜 둘만 모이면 권력관계가 발생하는가, 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 버릴까, 정말 가난한 사람들끼리는 더욱 연대하기가 어려운가, 단지 우리의 선입견일까? 권력이라고 다 나쁜 것인가,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연대의 쾌락인 거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이런 고민을 나누는 것, 코뮨의 고민을 나누는 것, 이게 연대의 쾌락이 아닐까요.

 

aff-com

우리가 부대낌을 에너지로 바꾸는 발명을 하겠다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아프꼼은 우리가 하고자하는 작업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체가 그 안에 하나의 관계의 축으로, ''라는 대표성을 갖는 게 아니라 이 멤버들이 모두 대표성을 갖고 그 안에 기입되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 기쁨의 정념도 있고 부정적인 정념도 생겨나는데, 신지영 선생님이 서클운동 속에서 부정적인 정념을 보고 싶다는 것처럼, 희망으로서 이후의 기쁨에 대한 에너지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 중요해도 막상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의 무게들이 아닌가, 합니다. 당위로서의 기쁨, 도래할 미래에 대한 말은 너무나 많지만 현실이 받아 안고 있는 무게, 부대낌이 주는 힘겨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그 말은 금기시되었고 코뮨 내에서도 코뮨을 해치는 것으로 취급되거나, 청산에 대한 말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도 지금도 이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말을 갖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지영

거대한 슬픔과 거대한 기쁨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기왕에 <무명통신>을 봤었던 것은, 실질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삶의 중력을 피하지 않고서 공유감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기뻤던 순간에도 늘 슬픔이 함께 했었고, 아주 슬픈 순간에도 들여다보면 어둠 깊숙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기쁨이 있었고, 그 무게감과 슬픔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코뮨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무명통신>이나 여자들의 탄광에서 보려는 거예요. 물론 그곳에는 모리사키 카즈에라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그 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무명(無名)의 여성 탄광부들과의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리사키 카즈에''이에요. 무명입니다. 무명. 그런데 사실 무명은 정말 슬픈 것이지요. 숨막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슬프지만, 이름이 없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요. 근데 이 슬픔에는 어떤 계기들이 있어요. 그런 상태로 돌아가서 그 여자들은 말을 만들어냅니다.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이지요. 그게 곧 자신들의 말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걸 표현한 거 같습니다. 그 슬픔과 자신들이 갖고 있는 원한과 슬픔과 부정적인 정념의 거대한 에너지들. 그 속에서 태어나는 말들그리고 <무명통신>이나 여자들의 말이나, 서클 마을을 통해서 그런 말들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식으로 말하면 원한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니체가 매우 비판한 낙타의 감성이 갖고 있는 그 에너지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반짝임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쌈짓돈이라고 했었던 건, 쌈짓돈을 꺼낼 땐 늘 한숨과 함께 꺼냅니다. 한숨이 왜 나냐면 없는 살림에 꼭 필요하면 쓰려고 혹은 보물처럼 모아 두었던 것인데, 결국 꺼낼 때에는 남을 위해서 꺼내게 되는 것이거든요. 가족이나 자식이나......내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를 위해서, 즉 공유를 위해서 꺼내는 돈이지요. 따라서 쌈짓돈을 갖는다는 건 소유가 아니라 점유입니다. 공유를 위해 꺼낼 돈을 점유하는 방식이에요.

 

사실 공동체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건 소유가 아니라 점유입니다. 소유는 원래 없기 때문에, 공유되어 있는 것들을 누가 얼마나 센 힘으로 점유하느냐가 중요하지요. 따라서 점유가 소유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소유의 형태를 띤 점유가 아닌 방식의 공유가 가능한가라는 걸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쌈짓돈에는 바로 이것들이 다 같이 뭉쳐있는 것 같아요. 쌈짓돈을 모을 때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슬픈 정서와 애달픔을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쌈짓돈에는 그런 체취들이 배어들지요. 꺼낼 때도 내가 꺼내지만 그 순간 소비하는 개인이 있는 게 아닙니다. ''라고 할 때에도 다른 여러 ''들이 함께 있고, '나의 쌈짓돈'을 꺼낼 때에는 나처럼 갖지 못한 사람들 가족들 갖지 못했던 세월들이 한숨이라는 정동이 되어서 섞이지요. 이 쌈짓돈을 '꺼내는' 이런 지점을 말로 끄집어내면요, 이처럼 쌈짓돈 '꺼낼 때'가 바로 슬픔의 정동이 또 다른 정동으로 이행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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