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꼼(aff-com)을 비평하다

 

변정희 (반성매매 활동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았다. 모두의 몫이니까. 천천히 하다보 면 잘 될 거 같다.''

- 김일두(net-a<하나의 장르, 바로 그 한 사람> 인터뷰 중에서)

 

바깥의 말을 경유하여 내부를 돌아보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내부가, 내가 돌아서기라도 하면 금방 사라질 듯 느껴질 때 더욱 그렇다. 물론 지금 우리는 누구도 단단하게 자신의 이념은 물론 정체성조차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90년대를 살아갔던 여성주의자들이 당면한 곤혹스러움이 세대 간의 격차였다면, 2010년을 넘어선 오늘날의 우리들은 20대의 혼란과 30대의 피로와 40대의 절망이 마구 뒤섞인 시대를 살고 있으며, '내부'는 그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었다.

 

연구모임 아프꼼(aff-com)은 이 내부가 가진 이름 중 하나이다. 한때 그 이름은 <연구모임 a>라고 불렸다. 나는 맨 처음 연구모임 a를 접했을 때의 혼란스러움을 지금도 기억한다. 학교 안의 모임이면서도 아니고, 학교 밖의 네트워크이면서도 아니며, 웹진 아지트, 네트-a를 비롯한 활동들이 학교의 안과 밖, 제도의 안과 밖, 국경의 안과 밖에 걸쳐져 있었다. 그러나 ''종단하고 횡단하는 너는 대체 누구냐?''라는 질문보다, 실상 그 모임의 이름을 이해하는 것이 내겐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연구모임 a'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이름 같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모임 중의 하나인 이름 같기도 했다. 혹은 그 aa를 대신할 무언가/누군가를 위하여 비워 둔 자리 같기도 했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기에 공백으로 처리된 자리 같기도 했다. 이처럼 a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aff-com'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웹진 아프꼼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프꼼을 소개한다.

 

 

''연구모임 aff-com(아프꼼)'affect''commune'의 합성어이 다. 이 이름에는 '정동''공동체'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을 문제틀로 삼아 삶 속에서 실험하고 연구로 반성하며 글쓰기로 녹여내는 이행 의 작업이 함의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작업에는 '정동''공동체' 에 대한 이론적 작업과 이 이론이 실제로 부대끼며 이루어지는 삶 의 현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aff-coma-ff-com으로 더 나누어볼 수도 있다. 개별적인 a와 정동(affect)과 공동체(commune)의 조합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a-ff-com은 개별적인 'a''com'에 이르기까지의 그 무한한 거리를 보여주기도 하는 셈이다. 그러나 commune은 결코 목표지점이 아니다. 정동연구에서 정동(affect)"목표를 설정해놓고 가는 행함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뚫고 나가는 것으로서의 행위능력"으로 보듯, 무수한 acom이 만나고 헤어지며 다른 'a''com'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acom 사이의 거리에 그어진 선은 실선이 아니라 수많은 결절이 있는 점선이다. 그것은 '만남과 어긋냄', 혹은 '함께 있음''부대낌'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연구모임 a라는 이름은 그 시작이 적절하다',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아프꼼에 관한 끊임없는 '재서술'의 일부일 뿐이다.

 

연구모임 a 혹은 아프꼼은 부산에 거점을 두고 이론적인 작업과 실천을 함께 옮겨가는 다양한 변주의 작업들을 수행해왔다. 아프꼼이 줄곧 주목해 온 영역은 하위문화(low-culture) 혹은 식민지 시대, 열전과 냉전의 밑바닥 아래에 있었던 '아직 말이 아닌 말' 혹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글'이었다. (이러한 탐색은 정동연구의 방향과 필연적으로 함께 갈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 작업의 방식은 끊임없이 경계에 서 있었다. 비평과 연구의 경계, 지역과 대학의 경계, 문학과 예술의 경계. 웹진, 서평회와 콜로키움, 영화제와 세미나 등 방사선처럼 뻗어나간 활동을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할뿐더러 그 의미도 제대로 짚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난 겨울, 연구모임 a발전적 해체(혹은 발정적 해체)를 위한 정념세미나에 참가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내가 그 모임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활동은 아프꼼이 표방하듯 '한국에서 대학, 제도, 지역의 관성적이고 타성적인 관계맺음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결속의 형식을 얻으려 노력'해왔던, 사유와 실천의 고된 흔적이기도 하였다.

 

여러 실험과 시도들은, 물론 어떤 결과를 기대하거나 예상한 것이 아닐지라도, 번번이 미끄러지곤 했으며, 제도 안도 밖도 아닌 채로 제도에 얹힌 모습으로 머물러 있기도 하였다. 외부와의 결속과 연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공동체 현장 혹은 공동체를 추구하는 현장의 실험과 자립에 귀를 기울여보아도 별 뾰족한 답이 솟아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답이 있었다 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각각의 모임이 처한 조건과 지평 속에서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것은 물적 토대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의 몸과 언어와 삶은 지겹도록 체계에 손발이 묶여 있으므로, 학교의 제도 안에서 학교 밖을 사유하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모임의 구성원들 역시 각자의 물적 조건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을 조건으로 삼는다 하여도 정작 문제는 이런 지점들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혹은 팀원 전체의 공적 담론으로 제기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지난 일정한 시기 동안 '대안적 인문공동체 운동'에 관여하면서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다르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현재의 조건과 관계 속에서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공적 담론의 장에서 논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프꼼의 자리를 평가하는 일은 실상 부산 지역의 대안 공간과 모임들의 연대가 실패해 온 지점을 비추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자생적인 제도 안팎의 여러 모임들은 각자의 생존이 늘 중요한 관건이 되어 왔기에, 또는 다른 이유들로, 아프꼼이 그려왔던/그리고자 했던 지형에 선뜻 응하지 못했다. 주변부라는 조건으로 늘 새로운 종류의 가능성을 품고 있음에도, 지역은 종종 이상한 방식으로 게토화되어 버리곤 했다. 지금의 아프꼼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어떤 실패의 기록들'이라면, 그 실패는 마땅히 연대의 실패와 더불어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본다. '비평의 자리'가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아프꼼 팀원의 팀 안에서의 자기 역할이 팀 전체의 운동성으로 외부화되지 못했다는 평가에 덧붙여 말을 좀 더 보태고 싶다. 아프꼼이 접속해 들어간 현장이 자기 삶의 영역과 무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이행의 현장이 각자의 삶에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볼 문제다. 이론이 자기 실천의 현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삶과 관계와 접속되는 지점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내다보며, 진지하게 물두하며, 부단히 싸워서 얻어내야만 한다. 정동에 관한 연구를 언어화한다는 것 자체의 어려움은 둘째 치더라도 정동이 관계와 삶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혹 자기 삶이 곧바로 작업과 연구의 현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던가?

 

위기와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타자의 자리를 돌()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자리를 삭제하고 동일화의 방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는 데 골몰하게 된다. 불확실함이 타자의 윤리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혼돈은 가능성의 시대가 아니라 역시나 위기의 시대임을 거듭 재확인하게 된다. 때문에 아프꼼이 정동과 공동체를 키워드로 연구모임 a에서 아프꼼으로, 그리고 그 다음의 무엇으로 진행되어 가는 동안, 삶과 관계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일상의 친밀함으로 내몰리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치열함을 갱신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연구모임 a의 바깥에서 서성이며 줄곧 바라본 것, 그리고 발전적 해체를 위한 (동계훈련에 가까웠던) 정념세미나에 참가한 것이 내가 아프꼼에 말을 보탤 수 있는 이력의 전부이다. 또한 모임 내부에서 이루어진 혹독하기까지 했던 자기 비평의 시간들을 알고 있기에, 말과 글을 보태는 것은 더욱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다만 아프꼼을 사유하는 일이 내 자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기에 용기를 꺾지 않기로 한다. 연구모임 a와 아프꼼이라는 이름들은, 한편으로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흔적들처럼 다가온다. 그 흔적들이 지금 당장 쓸모가 없을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몸에, 그때 그 겨울의 현장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겨울의 시기는 연구모임 a가 아프꼼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이었음을, 실패의 반복을 통해서, 오히려 지금과는 다른 몸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었음을 새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만나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깨운다. 다시 한 번 더, 그의 말이, 그의 쓰기가 외롭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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