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향한 발걸음들,

        기쁨만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길들

 

ㅡ<정념과 어소시에이션> 웹진 1호를 발간하며

 

권명아 (aff-com)

 

 

 

 

 

 

1.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연구모임 a, 아프꼼(aff-com),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aa-ff-com이 된다고 해서,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견고한 제도의 벽이 흔들리지도 않으며, 관성적인 일상적 삶의 패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것으로 기이한 쾌락을 얻는 동종 집단의 폐쇄적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그 안에 단 하나의 타인(타자가 아닌)의 존재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형님-동생들은 여전히 자기들 외의 모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뒤얽혀 하나가 되고, 인문학은 일주일의 속된 삶을 '속죄'하는 주일의 교회가 된지 오래다. 웹진 하나가 이 세상에 더 추가된다고 해도, 이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프꼼은 대단한 이념을 표방하는 반제도권 조직도 아니고, 학문적 이상을 높이 내걸고 쇠락한 인문학계를 구원하려는 야망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는 것일까? 아마 그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지 않을까? 혹자는 내게 강박적으로 이 일에 매달린다고 하고, 혹자는 끝없이 아프꼼의 정체를 심문한다. ''너희는 무엇이냐''라고. 아프꼼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무엇을 행하는 것, 그것이 아프꼼일 뿐. 그렇다.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 집요하게,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매달리는 것. 이러한 매달림, 끈질김이야말로,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모든 것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불안한 이 시대에 우리가 취할 수밖에 없는 실천의 방식은 아닐까?

 

아프꼼은 이미 만들어진 이념형을 현실에서 실험하는 형태로 움직여오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선생'의 공부를 따라 암송하는 구조 역시 지양하고자 한 것이 노력의 지점 중 하나이다. 이념과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한 코뮨의 모델들이 그 나름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점에 낙착했는지를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프꼼이 무이념적으로 움직이는 무규정적 덩어리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대안적 이념이던, 희망이던, 미리 만들어진 길을 따라 가는 것보다, 걸어감으로써, 실패의 반복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려는 것이 아프꼼의 이념이자 실천의 방식이다. 그리하여, 아프꼼은 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출발점으로부터는 아주 멀리 걸어왔다. 그러나 대학이나, 학문장, 지역 엘리트 재생산 구조, 익숙함으로 구조화된 '공동체'의 질서는 견고하기에, 걸음을 멈추면, 다시 그 질서에 손쉽게 안착하게 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여 누군가에게는 강박증으로, 혹은 누군가에게는 일중독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지만, 아프꼼은 그런 긴장감으로, 긴박함으로 이 길에 매달려 있다. 그러니, 그 길은 게릴라전에 가까운 몸의 움직임을 우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하나의 발명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그런 긴박감이 없이 가능할까? 그런 길이 있다면, 그 또한 아프꼼의 또 다른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속세를 초월한 재야에 안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장악하고 유린하고, 포획해버리는 자본과 제도와 익숙한 공동체의 '자연스런 폭력'이 횡행하는 세속을 우리 현장으로 삼아, 바로 그 속에서 온 몸으로 다른 것이 되기를 꿈꾼다. 하여, 매달릴 수밖에. 그것이 아프꼼이다.

 

2. 돌봄, 혹은 돌아봄: 실패로부터

 

그러나 6년 전 연구모임을 시작할 때, 애초부터 지금 같은 게릴라전을 예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 꾸었던 꿈은 이 연구모임이 '후배들'에게 어떤 자매애적인 공동체, 혹은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나름의 터전 같은 것이 되기를 꿈꾸었다. 아프꼼은 진지전을 통해 서로를 돌보는, 돌봄의 공동체를 구축한다는 나름의 희망이 있었지만, 양자는 불협화음과 모순 속에서 공회전을 거듭해왔다.

 

오거나이저로서 연구모임 a를 꾸릴 때도, 아프꼼으로 이행할 때도,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삶의 기반이 소진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래도 이 모임이 작으나마 '돌봄'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연구모임 a의 활동이 '아지트'라는 화두를 내걸고 진행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돌봄의 공동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자매애적 친밀성의 나눔은 페미니즘 운동체들이 공통으로 기반하고 있는 이상이기도 하지만, 삶의 모든 안정적 기반을 약탈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이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지역 엘리트로 살아남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지역의 인문예술 종사자들에게 금세라도 무너져버릴 수 있는 취약한 삶의 기반을 서로 돌아보고, 나누는 돌봄의 관계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소회를 밝히자면, 오랜 세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이 '생명'을 어디까지 위태롭게 하는가를 경험하고, 목도하고, 그리고 '살아남은 자'로서 '후배'들에게는 이러한 위태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같잖은 '소명의식'도 갖고 있었다 할 것이다.

 

대학에 얹혀있는 집단으로서 이러한 고민 혹은 딜레마는 더욱 가중된다. 돌봄에 대한 소명의식은 손쉽게 전유되거나 소비되고, 혹은 제도에서 익숙하게 습득한 인정투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프꼼은 이 부분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누군가는 이러한 돌봄의 관계가 오히려 공동체를 망치는 일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 조언의 함의를 모르지 않지만, 배움을 주는 것 혹은 인문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의 방기가 아닐까 하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관성적이고 권력적인 대학/문화 제도에 내재한 엘리트 양성과 '후학양성'의 관행과 권력관계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선생 세대들과 전혀 다른 존재론적 위기감에 직면해 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삶/연구/존재의 지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 이 길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아마 오거나이저로서 나의 역량의 문제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오거나이저로서,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나는 얼마간, 아니 많은 부분 실패했다고 생각된다. 창간의 포부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념이지만, 웹진의 창간은 실은 이 실패로부터 오로지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3. 다른 삶을 향한 발걸음들, 기쁨만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길들

 

하여 그간의 다양한 코뮨 및 아지트들과의 어소시에이션의 한 결실로 웹진 창간호를 꾸려보았다. 또 그간 만나왔던 다양한 a들에게 그들의 코뮨의 경험과 ''을 전해 듣기를 청하였다. 이를 통해 아프꼼의 작업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나누는 것이 웹진 창간호의 주요한 목적이다. 웹진 창간을 통해 아프꼼은 약간의 행로의 변화를 갖게 될 예정이다. 물론 이러한 행로의 변화는 연구모임 a가 아프꼼이 되는 이행의 과정, 그리고 무수한 이행의 과정들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구모임 a의 활동의 근저에 놓인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실은 <지역에서, 함께-있음>에 연구모임 a를 기입하는 것, 혹은 <지역에서의 함께-있음의 구조>에 새로운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변정희의 아프꼼(aff-com)을 비평하다에서도 논의되듯이 ''지금의 아프꼼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어떤 실패의 기록들'이라면, 그 실패는 마땅히 연대의 실패와 더불어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본다. '비평의 자리'가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이 웹진의 창간은 한편으로는 그간 <지역에서의 함께-있음>에 대한 시도의 실패를 딛고, 그 실패를 다른 연대의 에너지로 삼고자 하는 또 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도는 자연스럽게 지역을 넘어서,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함께-있음에 대한 시도로의 행로의 변환을 함축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웹진의 창간을 이끈 추동력으로서의 국경을 넘는 워크숍의 시도이기도 하였다. 김대성의 폐허의 자리에서, 한계의 자리에서 말을 태우다에서 전하듯이, ''분리되어 있는 간격을 극복하려는 의지들의 결집, 그것이 바로 매체다.'' ''누군가를 부르는 (조난) 신호와 그 요청에 응답하려는 의지의 결집으로 매체가 구성될 수 있을 때, 그 자리는 (존재)미학의 장소가 된다.''

 

그런 점에서 바로 코뮨과 연대의 쾌락, 다른 삶을 향한 열정은 이 실패로부터 차이를 향해, 코뮨의 포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프꼼은, 매달리는 것이다. 신지영의 글 코뮨의 병에서 시작되는 연대의 쾌락에서 비평을 얻었듯이, 코뮨의 실패에서 비롯된 코뮨을 부정하는 ''그 마음 속에는 코뮨을 만든다는 사람들에 대한 의심과 질투, 그리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자신에 대한 변명을 '차이'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코뮨 속에서 경험한 수많은 감정들과 겹쳐진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그러한 의심과 질투와 변명 속에는 실은 코뮨-함께 함-에 대한 욕망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감정들을 코뮨의 연대로 이행시킬 수 있을까?'' 해서, 아프꼼은 실패로부터, 다시 코뮨에 매달리는 길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패로부터 다시 매달림으로라는 기조에는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임태훈의 핑크빛 공동체에서 배우는 인문학 운동의 미래에서 논의되듯이, ''의심과 착오, 실망의 순간조차 운동의 과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원초적인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은 철부지들의 핑크빛 공동체가 그러하듯, 갑갑한 생활에 억눌려 있더라도 좀처럼 기죽지 않고 더 재밌는 일에 작당하는 발랄한 마음과 몸에서 구할 수 있다. 놀이의 흥분과 웃음이야말로 인문학 운동의 미래를 예감하는 전조다.'' 그런 점에서 아프꼼은 슬픔의 정념과 실패의 에너지를 놀이의 흥분과 웃음의 에너지로 이행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아프꼼의 실패이자 어떤 지역적 차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임태훈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아프꼼이 터하고 있는 지역은 '' '', '', ''의 삼각 교양 편대''의 과잉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과소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 차이를 넘어서는 지평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지평은 역설적으로 지역의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 걸음에서 우리는 너무나 좁디좁은 우리의 닫힌 지평의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신현아의 워크숍, 국경을 걸어서 넘다, 양순주의 불투명한 나의 목소리로부터는 이 발걸음 속에서 부대낀 정동의 기록이다. 연구모임 a에서부터 우리는 무수하게 다른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고, 복잡한 도시의 한 모퉁이를 분주히 방문하였다. 오랜 세월 길을 나섰지만, 응답은 오지 않았고, 만남은 실패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지역을 넘어선 만남에서의 응답은 우리가 그 실패를 넘을 수 있는 동력이 되곤 했다. 해서 신현아의 글이 전하듯이 매번 우리는 당신들을 만날 때마다, ''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의 걸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만났던 벽을 당신들은 어떻게 넘어갔는지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보폭을 견주어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걷는 길이 '반경'의 테두리를 맴돌 때, 이 만남의 힘으로 다시 넘어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다.

 

양순주의 불투명한 나의 목소리로부터에서도 논의되지만 우리가 어소시에이션이라는 화두를 연구모임의 출발점에서부터 부여잡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된다. 연구모임 a라는 이름일 때도, 아프꼼의 경우도 ''제도의 안과 밖에 걸쳐있는 다소 기이한 포즈는 어떤 이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여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워크숍에서 만난 니시야마 유지 선생과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시사점을 주기도 하였다. 자크 데리다가 창립한 국제철학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철학에의 권리>와 니시야마 유지 선생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규모나 역사는 다르지만, 국제철학학교와 이에 대한 반응들을 아프꼼의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었다. 양순주의 글에서도 지적되듯이 ''국제철학학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제도이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제도화되었다. 그 특별한 방식이란 대학도, 공공연구기관도 아닌 '어소시에이션'으로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준제도로서의 취약함'에서부터 콜레주가 시작되었다는 배경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도 강조된다.''

 

제도의 사이, 구멍에 있는 아프꼼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송진희의 그곳에 '있음'으로 남아있는 것들: 외로움의 출처와 출구에서 날카롭게 지적되듯이 ''그 값은 실천을 동반했을 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지 않고, 하지 않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인문'이 그리고 '공부''쓰기'만 해서는 '하기'의 말의 중요성을 영영 모를 일이다. 그 흘러넘침의 '', '하기'의 말들을 올해 일본에서 열린 워크숍의 기간 동안 만났던 이들의 실천 속에서 엿보며 그 중요성을 배우고 깨달았다.'' 그래서 웹진에 실린 글들은 ''어쩌면 '현장'의 이들은 단번에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속삭임에 가까운'' 말들이다.

 

앞서 아프꼼이 아직은 실패와 슬픔의 정념을 웃음과 기쁨의 에너지로 이행시켜나가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말했다. 그러나 코뮨의 ''을 앓고 있는, 혹은 연대의 쾌락이 단지 기쁨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실천과 현장 속에서 경험한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이것이 아프꼼만의 일은 아니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함께-있음을, 코뮨을 단지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간수하고, 해나가고, 건사해본 사람이라면 함께-있음이라는 것이 이를 건사하기 위한 고달픈 노동과 돌봄의 살림살이의 '소모전'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건사하는 노동과 돌봄의 살림살이야말로 코뮨의 실천의 밑바닥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과 살림살이를 해나가는 사람만이 진정 '바닥'에 내려앉는 것이다. 신지영의 글에서도 지적되듯이 코뮨에서 ''폴리스(비오스)의 권력관계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오이코스(조에)의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꼼의 삶은 고될 수밖에 없다. 송진희가 전하듯이 이렇게 고된 삶은 우리를 외롭게 하기도 한다. ''공동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부대끼는 선분과 접촉면들에 닿을수록 몸과 마음도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야 동료들과 선생님들의 '외로움'이 들리기 시작하고 외로움의 무게는 그 공동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깊숙이 자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된 삶과 외로움을 통해, 생색나지 않는 돌봄의 살림살이를 통해서만 비로소 코뮨은 우리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송진희의 말을 빌자면 ''현장을 갖는다는 것은 기꺼이 현장이 되려는 자, 현장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이 뛰어들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현장을 꿈꾸기 전에, 현장을 가지게 되었고, 현장의 치열함을 매순간 맛보며 나가떨어지거나 발목 잡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프꼼의 고된 삶이, 외로운 처지가, 꼭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길에서 만난 당신들에게서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들에 <다른 삶을 향한 열정>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 열정은 ''아직은 닿지 못한 그 세계에 대한 열정''이고, ''그 열정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현실적인 장벽도 없다. 그 세계를 끊임없이 꿈꿀 수 있는 동력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그 열정을 꽃 피우는 순간은 서로 반대편의 고속열차가 스쳐지나가는 순간처럼 아주 짧다는 것'', 그것이 아프꼼의 삶이자, 당신들이 전해준 코뮨의 길, 연대의 쾌락이기도 하다.

 

그 작은 순간의 기록을 우리는 반짝임, 그 순간의 무늬라는 이름으로도 남겨보았다. 또 앞서 논했던 신지영, 니시야마 유지와의 인터뷰로, 희미한 불빛의 연대기라는 이름의 기록을 얻었다.

 

실패와 고된 노동과 돌봄의 살림살이의 기진맥진과 외로움 끝에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우리의 고단했던 길에 응답해주었던 모든 a들에게 또다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가 만난(association) 그 모든 a(agit이자 anyone)들에게, 실패와 슬픔과 환희와 웃음과 엇갈린 길,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혹은 함께 걸어가는 길의 모든 a들에게 안녕을!

 

우리는 당신들과의 실패와 슬픔과 순간의 환희를 통해 비로소 a-ff-com, 모든, 누구나인 a들이 걸어가는 코뮨(com), 그 연대의 쾌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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