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그 곳에서 나온 말 1. 만남의 낌새를 느끼다>




1.


 신미나토마을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매일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과의 인사와 대화 속에서 아마 트리엔날레에 참가하는 누구보다 그들의 마을 구축 리듬을 내내 잘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pre open day)은, 진행과정을 계속 보고 왔었지만 각 부스 별로 아티스트가 모여 그들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분명 어제와는 달랐다. 아직도 채 완성되지 않았기에, 각 공간 마다 팀들은 그들의 공간을 위해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페인트칠을 하고 목재 건물을 보수하면서도 외부 초대인을 통제하지 않고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지금 이 마을은 이미 들어와 있는 모두의 공동 결과물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해서 잊고 있었던 하나의 명제가 떠올랐다.


 

 

 

 

 

 

 

 

 

 

 

 

 

 

 


 

 신미나토마을에 방문하기 위해선, 경계를 넘어야한다. 비행기 표와 여권의 형식을 착용하여 만든 신미나토마을 안내 자료는 재미있는 하나의 형식일지도 모르지만, 신미나토마을을 넘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아이콘이기도 하다. 


 

 

 

 

 

 

 

 


 신미나토마을은 관객이 없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작업들이 많다. 500엔을 넣어주면 검은 상자 안에서 그림을 그려 다시 되돌려주는 작품, 컨셉은 간단한 헤어숍일지 몰라도 <become works!!>의 작업은, 손님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미리 그려주고 컷트가 끝난 뒤엔 이 미용실의 몇 번째 워커(worker)가 되는 프로그램 진행 등, 신미나토마을에선 정적인 전시와 (관객과)만나야 하는 작품이 적절히 공존한다.

 

 


2. <익숙한 공통감각>




 창조적인 마을을 만들어 내려는 그들을 보는 내내, 나 또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작업에 대한 익숙한 리듬감을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큰 하나는, 부산에 거점을 두고 창조적인 패션 문화 복합공간으로 발돋움 하려했던 129.35atelier에서의 경험치 혹은 기억이다. 매월 다른 컨셉을 가지고 12명 디자이너들의 옷을 며칠 동안 패션문화(패션쇼/패션 사진/패션 강연/패션 영상/음악)로 준비해, 온갖 프로그램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보여 줘야했다. 그 규모는 다를지 몰라도, 사람이 모여 어떤 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 자리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어쩌면 NET-A in Yokohama의 여태까지의 동선 또한 당장의 결과를 내려는 것 보단, 각자 다른 곳(부산과 요코하마)에서 작업해오던 리듬감을 서로 감지하기 위해 '어쨌든' 신미나토마을에 가는 것이었다. 비록 아직 공간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했지만, (함께 준비해야하는)그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고 다른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고 동선을 파악하여 다시 우리의 동선을 함께 놓고 보는 것이 자리/마을을 만드는 공동작업에 대한 큰 기조가 아닌가.


3. <요코하마의 역사를 더듬다.>

 아직 우리는 길눈이 어둡다. 숙소 앞 5분 거리 하나, BankART1929근처 두세 가지 거리만 기억하며 더듬더듬 그날의 목적지를 찾아 가고 있다. 오늘은 요코하마의 트리엔날레를 준비해온 사람들의 행사가 연이어 준비된 날이다. 오후1시부터는 요코하마 시립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미리 볼 수 있다. 그리고 6시부터 파시픽 요코하마(요코하마의 국제 컨벤션센터)에서 초대 아티스트/프레스 등이 모여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시작 전, 교류/비지니스의 장이 준비되어 있고 8시부터는 (다시)신미나토마을에서 프리오픈(pre-open)진행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저녁을 먹기 전까지의 동선을 생각해야 하는데, 막상 요코하마에 온 뒤론 애초에 생각했던 '가야할 곳'들이 뒤죽박죽 얽혀버린 상황에, 동선에 갈피를 잡지 못한 5일째였다. 때마침 장수희 선생님이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행사 중, 개항기념관에서 열리는 <요코하마 노스탤지어>사진 전시를 보러가자는 제안을 주셨다. 우리들이 뱅크아트에서 항상 점거하고 있는 회의실에 하나 둘 씩 각종 인포메이션 자료들이 놓여 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그 전시였다. 우리의 요구사항만을 전하기 위한 동선이 아니었기에, 그 곳에서 죽치고 있으면서 얻게 된 또 다른 장소로의 이동은 뱅크아트 요코하마에 보낸 첫 기획안-마을에서 마을로, 혹은 장소에서 장소로-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낳았다. 

 

 

 

 

 <요코하마 노스탤지어>는 개항 당시의 장면들로 기획된 전시이다. 기념관엔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비록 일본어를 알아듣진 못했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옛 시절의 회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가, 개항 이후 새로운 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이는 요코하마에 대한 자부심일까, 혹은 그리움의 정서로 설명하기 부족한, 다른 공간으로의 넘어감일까.

 
4. <OUR MAGIC HOUR>


 5개월 전 동북지방의 지진 이후, 일본 전 열도는 홀로 감당하지 못할 고통 부담에 네트워크(혹은 미디어)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있다. 요코하마에 있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외국인, 여행객 즉 이방인이지만, 내가 과연 요코하마가 일컫는 "국제적인 네트워킹"의 대상일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과연 완전한 타자와 "네트워킹"할 수 있는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신미나토마을-는 무엇/누구 인가?
 나는 패션이라는 기치아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말하는, "예술"을 통해, 나는 과연 그들과 접속할 수 있을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our magic hour의 타이틀은 예술을 통해, 끝나지 않는 불안과 언제 입 열지 모르는 자연의 침묵 속에서 "우리들의 상상력"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1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서사는 다음 문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OUR MAGIC HOUR; how much of the world can we know?> 그리고 <look, nurture and connect>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누군가들'과 소통, 네트워킹을 선두에서 외치고 있다. 그렇다, 질기디 질긴 생존과 한 순간의 폐허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그들은 타인을 부르고 있다. 함께 "우리의" 고통을 견뎌줄 타인. 3개월 동안의 트리엔날레 혹은 환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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