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등등인

 

 

10월 29일 일본어 세미나에서는 나카무라 유지로의 <현대정념론> 의 젤 뒷부분에 있는 <해설>부분을 읽었습니다.

세미나 한 내용과, 그날 다 다루지 못한 내용을 한꺼번에 정리해서 올립니다.

 

 

(401)

해설

 

쿠메 히로시(토호우가쿠엔대학 교수)

 

1.

 

이 학술문고에 수록된 나카무라 유지로씨의 저작으로서, 우선 본서가 선택된 것은, 필시, 본서가 씨가 세상에 질문었던 최초의 본격적인 저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30년에 걸쳐서 나카무라씨의 왕성한 저작활동에는 당목(주목)해야하는 것이 있다. 1993년에는, 그것이 대집성되어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즉, 테마별로 집성된 10권의 『나카무라 유지로 저작집』(이와나미 서점)과, 에세이만을 묶은 『나카무라 유지로 에세이 집성』전6권(청토사)이다. 그 다산하는 태도도 그와 같으면서, 그 내용의 복잡다단함, 다채로움에는, 누구라도 깜짝놀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씨의 저작의 스타일을 반영해서인가, 그 책을 만드는 기획작업에는, 그야말로 철학서인듯한 딱딱함이 없고, 손에 잡고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지게 하는 친숙함이 있다.

 

물론, 저작집간행의 완결이 나카무라씨의 철학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하나의 단락에 지나지 않는 것은, 그 후의 씨의 작업모양에도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반상(바둑판)위에 항상 말을 전진시켜간다고 하는 분위기이다. 거기서 이 책의 내용에 관해서 거론하기전에,(402)나는 우선 나카무라 유지로씨의 철학하는 태도, 방법이, 현대일본의 사상계에 있어서, 얼마만큼 독자성을 가지고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해 보고싶다.

 

1994년 1월에 행해진 「일본의 철학의 아포리아와 나의 행보」라는 제목의 강연 서두에서 나카무라씨는, <일본에서 철학이 가능한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저작집 간행 직후의 저자의 것으로서는, 정말로 무거운 문제이다. 역으로, 그것은 어떤 도달점에 도달했던 자라서 가능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메이지 이래, 일본의 철학연구자는, 고대 그리스로부터의 서양철학,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거대한 지적 유산을 수용하고, 소화하려고 다대한 노력을 지불해 왔다. 소화불량을 일으키면서도, 철학사적 연구의 면에서는, 일본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연구와 참으로 철학하는 것이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본서의 논문 「철학의 일본적 착각과 환상」으로 지적되고 있는 1960년경의 우리나라의 철학계의 상황과 90년대의 현상황이란, 아쉽게도 그다지 변해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철학의 학설을 단지 받드는 것은 아니고, 「의심하면서 스스로 재발견해야한다」고 하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나카무라 유지로씨야말로, 현대일본의 몇 안되는 「철학자」인 한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무라씨가 중기 이후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철학에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일본에서 철학이 가능할까>라고 하는 문제의식을 니시다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카무라씨는 언제나 논단 저널리즘의 제일선에서 일을 계속해 왔다. 그것은 (403)나카무라씨가 일부 철학 전문가가 아닌, 폭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해서 집필을 계속해 온 것을 의미한다. 즉 은어(jargon)처럼 보이는 철학용어를 보통 사용하지 않는 독자를 향해 말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난해하고 난삽한 것이 되기 쉬운 서양철학의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여, 얼마나 알기 쉽고 명료하게, 뜻이 잘 통하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나카무라씨의 문체는 그러한 노력의 끝에 얻게 된 것이다. 『감성의 각성』을 집필할 때에는, 「처음으로, 말소리를 내어 귀로 듣고 알 수 있도록 구어체로 쓰고, 그런 후에 문장으로서 어미를 정리한다.」라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의 표현에 대한 고심과 생각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대의 독자를 향해서 말을 건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철학사적으로 해명하고 끝낸다고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17세기 서구의 데카르트의 사상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또 그것이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서」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항상 질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예를들면, 2천년 전에 쓰여진 「성서」의 텍스트가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서」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고 하는 시점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설교자와 닮아있다. 그 점에서도 이 「현대정념론」이라고 하는 책 제목에 있는 「현대」의 의의는 깊은 것이다.

 

나카무라씨의 철학방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몇개의 주제를 평행시키고, 끈기 있게 추구해 가는 태도, 또, 하나의 주제가 다음의 주제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그것은 마치, 몇개인가의 주제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 나가는 동안에, 갈라지고, 다시금 가지와 가지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예를 들면, 『현대정념론』의 정념의 주제는, 『감성의 각성』에서 더욱더 (404)폭넓게 고찰되고, 그곳으로부터 「공통감각」의 주제가 발견되고, 다음으로 『공통감각론』에서는 「장소」의 주제가 탄생하고, 얼마 안있어 그것이 니시다 철학과 결부된다, 고 했던 형태이다. 주제별로 편집된 앞의 『저작집』은, 「정념론」「제도론」「언어론」에서「파토스론」에 이르기까지, 열개의 주제로 나눌 수 있는 광범위함과 함께,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것과 에세이를 포함한다면, 나카무라씨가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은, 놀랄만한 범위와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박식(博識)을 위한 박식(博識)은 아니고, 오히려 모든 것을 사색을 위해 유용하게 쓰려 한다고 말한다면, 실용주의적인 의도가 거기에 관철되고 있는것처럼 생각된다. 토리와케씨는, 구제고교(旧制高校)의 이과에 입학했던 경력에서도 수긍될 수 있듯이, 프랙탈(fractal) 이론, 카오스 이론, 리듬 진동론 등의 과학이론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 좋은 예는 『형상의 오딧세이』(1991)일 것이다.

 

나카무라 철학의 또 하나의 특색은, 독일 관념론적 철학이 여전히 일본 철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에 있어, 데카르트, 파스칼, 알랭(アラン,Emile-Auguste Chartier), 그리고 푸코라는 프랑스 철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카무라씨가 로고스보다도 파토스를, 관념보다도 정념을 철학적 주제로 취하는 것도, 그것과 관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개념화」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주제이다. 「내적관찰의 존중」「과학적 방법과의 밀접한 관계」「인간에의 모럴리스트적 관심」이라는 프랑스 철학의 특색을, 우리들은 나카무라씨의 (405)저작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뿐 아니라, 『니시다철학의 탈구축』(1987)에서는, 저자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라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반철학적」시점을 받아들여 대상의 본질을 비추어 내는 것에 노력하여, 그 결과, 종래의 교토학파적 이해의 맹점에 대하여, 니시다 철학의 새로운 발견이 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2.

 

자, 『현대정념론』으로 되돌아가자.

본서의 제2편, 제3편의 논문이 집필된 것은, 1960년 전후의 시기이고, 그것은 흔히 말하는 60년안보개정을 둘러싸고 국내가 시끄럽다고 하고있던 즈음이다. 17세 소년에 의한 천소사회당위원장 척살사건(浅沼社会党委員長刺殺事件), 후쿠자와 시치로우(深沢七郎)의 『풍류몽담(風流夢譚)』사건등은, 「이미 전후가 아니다」(もはや戦後ではない)라고 말해지며, 사람들이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모색하고 있던 전환기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본서의 각 논문은, 그러한 시대의 움직임에 참가하면서 생산된 것이다. 전후 얼마되지 않는 즈음의 「진보적 문화인」이나, 좌익 이데올로기의 계몽적 합리주의적 논조로는 법칙 할 수 없고, 일본적 심정의 비합리적인 것, 파토스적인 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전통에의 회귀라고하는 형태를 가지고 현재화해 오고 있었다. 저자는 그러한 동향을 「정념」이라고 하는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랑가(ランガ―)의 말하자면 「창조적 개념」으로 완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제1편의 「사회화된 정념」은, 새롭게 다시 쓴 것이고, 데카르트의 (406)고전적 정념론을, 알랭, 사르트르, 프로이트들에게 연결하고, 그것을 사회화, 현대화를 도모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제 1편부터, 말하자면 연역적으로, 제 2편 이하로 읽어나가는 것 보다도, 제2편 이하부터, 귀납적으로 제 1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하나의 읽는 방법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정념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볼 때, 누구든지 「우리의 중심인 천황제」로 생각해 도달할 것이고, 그것을 빼내고는, 내셔널리즘도, 전통도 논할 수 없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제도」의 문제이고 동시에 「감성」의 문제이며, 그 국민적 감성에는 표리(앞/뒤, 안팎)가 있고, 그 「내면의 감성」이란, 구체적으로는 「나라야마적, 순례가적인, 무정하고 으스스한 것」이라는 지적은 핵심에 닿고 있다. 그리고 전전의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郞),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전후의 후쿠다 츠네아리(福田恆存), 다카야마 미치오(竹山道雄)들이 전쟁직후의 일본문화의 전면부정(全称否定)에 대항해서, 일본문화의 자주성의 거점을 일본인의 「미의식」으로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심정적 천황제」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전통론을, 타니가와 간(谷川雁)의 이론을 따르면서 「마이너스의 생산성」이라고 단정하였다. 마이너스 전통론의 극복은 「논리와 감성, 의식과 잠재의식……」등의 강렬한 변증법(Dialektik)의 실천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미의식」의 문제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에 의해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미」와 「정치」의 대립으로 집약된다. 이 책의 원본의 부제가 「미와 정치의 사이」로 된 이유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상상력의 활동은 대상을 공무화(空無化)하는 것이고, 미는 「공무한(공허한?)」가상에 관계되기 때문에, 미는 「상상계」에 속하고, 거기에 있어서, 「현실계」에 속하는 정치와는 대립하는 것(407)이 된다. 그러한 사르트르의 입장에서 한다면, 「심미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현실계와 상상계를 끊임없이 혼동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일본인의 미의식은 상상계와 현실계의 두 개의 차원에 동시에 자신을 두고, 일상생활에도 용이하게 미를 찾아낸다. 그 반면, 정치는 미와는 관계가 없고, 다른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서, 미와 대치된다. 가토 슈이치(加藤周一)를 만나서 조차, 미와 정치는 「싸늘하게 갈라져 구별된다(?)」. 그러나 미와 정치의 공통의 기반을 구하는 것이, 미를 은둔자의 미학에서 끌어낼 뿐 아니라, 정치이론에도 심리적 근거를 주는 것이 된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절충주의는 아니다.

 

제3편이나 제4편의 절반을 차지하는 체호프(Chekhov, Anton Pavlovich)론에는 「체호프 극의 매력에 사로잡힌」저자의 투철한 체호프 이해가 넘치고, 그것은 결국 「연극적 지」에 대한 고찰로 발전해 간다. 「러시아 혁명의 반세계」에 있어서의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론은, 현재 잡지 『헤르메스』에 연재중인 「악의 철학 노트」에 결부된다. 이와 같이 『현대정념론』에는 그 후에 전개된 주제의 예형으로 가득찬 것이지만, 유일한 예외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이다. 이 책에서는 아직 부정적인 취급 밖에 받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전술한 것과 같이, 니시다 철학은 나카무라씨의 큰 주제로 성장해 간다. 저자에 있어서도 의외인 이 결과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연의 결과라고 납득되어 온다. 나카무라씨가 발굴해 온 니시다 철학의 현실성(actuality)을, 우리들은 기대하고 있다

 

 

 

 

1) 1960년 안보투쟁은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해 일어난 시민 주도의 대규모 평화운동이다.

2) 1960년 10월 12일 도쿄에서 있었던 「삼당수 입회 연설회」에서 浅沼稲次郎 사회당 위원장(61세)의 연설 도중 학생복의 소년이 가지고 있던 단도로 사회당 위원장을 척살한 사건. 소년은 山口二矢(17세)로 원대일본애국당이었다.

3) 1960년 후쿠자와 시치로우가 『중앙공론』12월호에 개재한 소설「풍류몽담」에 대해 일어난 우익 테러 사건

4) 1956년 영문학자, 비평가인 나카노 요시오(中野好夫,1903~1985)가 『문예춘추』에 발표한 평론의 제목. 일본 정부는 『경제백서』에서 일본의 부흥을 선언하는 의미로 ‘이미 전후가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나, 나카노 요시오는 ‘전후’를 꺼내기만 하면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방면으로 편리한 이유가 되었다면서 일본인이 ‘전후’에 응석부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요지의 평론을 썼다.

 

 

 

 

*참고 사이트*

60년 안보투쟁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B%B3%B4%ED%88%AC%EC%9F%81

浅沼社会党委員長刺殺事件

http://yabusaka.moo.jp/asanuma.htm

風流夢譚事件

http://100.yahoo.co.jp/detail/%E3%80%8E%E9%A2%A8%E6%B5%81%E5%A4%A2%E8%AD%9A%E3%80%8F%E4%BA%8B%E4%BB%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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