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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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짱의 정념 교실 >1회, 10월 6일 (목)
<카페, 헤세이티>에서.



<맞짱의 정념 교실> 첫 수업이 부산대 카페 헤세이티에서 진행됐다. 첫 수업에선, 권명아 선생님/연구자의 궤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날의 수업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술 심포지움 장에서, 연구자로써의 선생님과 대안 공간(담론 생성의 장)에서 권명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점일 것이다.


선생님의 연구의 큰 궤를 굳이 말하자면, 단연 역사작업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일반화된 이론 연구였다면, (비평이나 실천이 아닌)학문으로써의 젠더 연구는 구체성을 논의하는 연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체화의 역사를 통해 이론을 뚫고, 다른 세계의 역사를 볼 수 있기 떄문이다. 현재, 선생님의 '풍기문란'연구는 어떤 저항성, 포섭되지 않는 "골칫 덩어리들"을 규명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같다. 여기에서 다시 비롯된 '정념'연구는 이 "골칫 덩어리들" 즉,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들-병리적으로 간주되어온-에 대한 정체성 정치의 역사를 탐색하였다. 이 주체들의 정념은 이성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잔여물들이라 간주되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정념은 번역되어야만 한다.
'풍기문란'에 관한 자료 작업 중, 발견한 <<나나>>는 그것의 검열 문제와 유통과정, 독자층의 위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게 되셨다고 한다. 이미 1924년에 발행된 <<나나>>,에밀 졸라, 가 1941년 검열이 되었다. 명목은 1)치안방해와 2)풍속괘란/풍기문란이었다. 치안 방해는 다시 말해, '사상'에 대한 검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풍속'의 문제는 다시 '민족'의 문제와 직결된다. 1926년 부터, 풍속 경찰과 풍속 영업에 대한 단속이 강행되며, 풍기문란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심해졌다. 당대에도 이 범위에 대한 논란은 있어왔다. 그런데 이 범위즉, '풍'mentality의 범위, 검열 기준은 다시 시대적인 도덕률을 반영한다. 게다가 <<나나>>의 유통과정을 살펴보면, 지식인이 읽어야하는 서양 고전 필독서에서, 여성 대중들의 읽을 꺼리로 주체의 위치가 변하며 부적절한 정념으로 담지되었다. 이러한 유통 과정은 주체들에게 정념을 배분하고, 주체의 위치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어떤 실패의 기록들을 통해 생긴 근원적인 낙관이 있다면, "언젠가는 변한다."라는 것이다. 당대의 논리로 변화가 불가능할지라도, 이후 오지 않는 미래를 만들고 있기에 무의미 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실패를 통해서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상사나 위인전식의 패러다임이 아닌) 인격화된 연구(개별자의 삶과 목소리)를 진행하며 산자의 생애사적 역사(장정일¹, K씨²)를 다루기 시작하시면서 변화된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5.16이후, 10대 미성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며, 소년범죄에 대한 항목과 소년범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소년범'이라는 풍기문란의 규준이 생기고 이것이 개인의 삶의 위치를 어떻게 배분하여 그의 삶의 반경을 만드는가에 대하여, '살아있는 자'를 통해 해석하는 연구를 진행하시고있다.


이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의 반경, 딛고 있는 '나'라는 주체적인 위치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나의 언어가 부재하고 남은 자리엔 선생님과 선배들의 언어를 따라 채워넣고, 세계를 엿배웠다. (비약이라 할지라도) 일제 감정기 식민지 조선인들이 그들 자신의 '말'을 잃고 대역본을 통해 세계를 배우는, 그 제3의 위치에 나의 갈등적인 지점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번역의 과정 속의 어떤 주체성과 그들이 놓여있는 구조적인 맥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각주

¹ 「소년범, 작가, 음란범-J의 탄생과 종말」, 냉전체제와 검열 심포지엄 발표문

² 「제국의 판타지와 게토 사이에서 타협하며 살기」, <<황해문화>>,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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