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zzang11

 

 

 

“슨상님.....”

나를 꼭 “슨상님”이라고 부르는 신콩떡님이 야밤에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은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 낮에 도착한 일본 쪽 주관자 분들과 식사, 협의 사항 논의, 연구소 국제 심포지엄 참가 등등 뭐 연예인도 아닌데, 스케줄 꽉 차게 움직이며 밤늦게 귀가하여 한 숨 돌릴 새도 없이 앉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내일은 영화제인데,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는데, 상영작 한편의 9분이 에러가 났답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콩떡 님이 전화를 합니다.

헐헐 웃으며 “괜찮아, 기다려봐”라 하자, ‘대폭발, 피의 응징’을 받을 각오였던 콩떡님은 오히려 의아해합니다.

 

결말인즉슨, 도대체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며, ‘어둠의 경로의 여왕’, 혹은 ‘오덕계의 여신님’으로 우리가 마음대로 추정하고 있는 우리의 ‘여신**’님이 해외 공유 싸이트에서 후반 9분 필름을 입수, 일어 자막까지 넣어서 공수....영화제는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영화제에서 뒤풀이까지, 우리 팀 모두 나름 사회자로, 진행자로, 각자 자기 몫을 맡아서, 바삐 뛰고, 웃고 울며, 그렇게 해냈습니다.

 

콩떡님 전화가 오기 직전, 저는 내일 무슨 말을 하나, 생각하다가, 문득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해온 그간의 일들, 일들, 일들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울컥”이라는 단어로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우리 팀 모두 우리의 첫 일본 워크샵이 올해 2월이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며, 매번 신기해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아주 오래 전 일인 것 같습니다. 실은 저는 아직도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일본 워크샵 사진을 보는 게 괴롭습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짜증이 밀려온답니다. 그것은 피로감 때문만은 아닌, 무언가 불가해한 장면을 자꾸 대면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그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오는, 그야말로 정념의 불길에 휘말리는 순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얻었을까요? 아직도 저는 답을 알지 못합니다. 정답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 말이지요. 저는 그간 “도대체 이 일들이 당신들에겐 어떤 의미인가”를 계속 묻고, 그 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응답, 아니,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불안감, 피로감, 실망감 등등의 형태로 반복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생각도 조금 해봅니다. 그 응답은 실은 확인할 수 있거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것은, 확인이나 답변의 형식, 혹은 나누거나 돌려주는 방식이 아닌, 어떤 다른 형식, 다른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나눔이, 우리가 여러 일들을 하면서 함께 살아-낸, 살아-온 일들이 기존의 방식으로는 확인되지도, 나누어지지도, 혹은 되돌려줄 수도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아주 다른 것들을 나누고, 그 아주 다른 나눔과 응답을 전할 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해온 일들은 언제나, 다른 형식을 만들고 경험하는 것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콜로키엄에서부터, 우리는 어떤 내용을 나누거나 전달할 것인가보다는, 어떤 형식으로 이런 일들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오래 고민하고, 더 오래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도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들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전화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어왔습니다. 제가 말을 아끼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 팀원들이 각자의 몫과 평등한 참여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우리는 실험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나눔과 경험을 설명하고, 나누고, 돌려줄 적절한 말을 아직 찾지 못했을지언정, 이미, 우리는 그런 형식을 얻은 게 아닐까, 우리 몸은 이제 그 형식을 체현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화와 긴장과, 살얼음판 같은 위태로운 관계의 어려움 속에도, 우리가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를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요?

 

그러니 이제 서로가 서로의 수고와 배려와 노력과 마음들이 서로에게 가닿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 불편함, 부채감으로부터 훌쩍, 발걸음을 내딛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낸,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함께 나눌 말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요. 해서, 그 말의 부재가 우리 관계의 불안감으로 항존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를 열면서, 동아시아는커녕, 과연 우리 팀원들은 같이 살아낼 수 있을까하는 자책과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마주한 이런 상황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허나, 동시에 이제는 너무 우리의 함께 살아-냄의 문제에 대해 골몰하는 것을 넘어선, 다른 지평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팀의 헌신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시며, 신명직 선생님이 보내주신 감사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우리 모두에게, 남은 인생의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벗을 만나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물론, 저를 제외한 우리 팀 모두는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사람들이기에, 이런 표현이 부적절하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사람과,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과연 어떤 삶을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애사적 시간 차이 역시, 함께 살기의 어려움의 한 요인이기도 하지요.

 

그러하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내기 위해서는 건너야할 걸림돌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합니다. 여러분과 저 사이에, 혹은 우리 팀 모두, 각자에게 인생의 시차뿐 아니라, 너무 많은 가변성들이 놓여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측 불가능한 우연성으로 가득 찬 것이라 할 때, 실상, 오늘 세우는 내일의 계획은 그저 ‘아름다운 바람’일 뿐이기도 하지요. 그 아름다운 바람은 그저 한갓된 꿈인 것이고, 그 꿈이 꿈인 한, 그것은 그저 한갓된 것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지요. 그러니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보다, 그저 오늘 여기서 우리가 마주한 순간,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최인훈이 말했듯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비관주의자”라면, 아마 이런 생각은 아주 비관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런 비관으로 매일매일 마주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낼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의 힘겨움을 조금은 털어버리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를 개최하기 직전, 겨우 그때서야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간 우리 팀원들의 응답 없음에 대한 무기력감과 응답에 대한 갈증 속에서, 실상 우리 팀원들에게 제대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 적이 없구나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이건 뼈아픈 자각이었습니다. 영화제 내내 공식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여러분께 반복해서 감사의 말을 전하려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뼈아픈 자책을 잊지 말아야 할 터인데 말이지요.

우리가 타자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인사는

 

“당신이 있어 감사하다.”

 

이 말뿐이라는 것을, 환대를 이론으로만 배워서 그런가봅니다.^^

 

허니, 아직도 미처 전하지 못한 인사, 그리고 이후에도 혹시 잊을지 모르는 인사를

오늘, 지금 전하려 합니다.

 

“당신이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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