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한·일 젊은 인문학자의 대화 : 데모 · 프레카리아트 · 공공지식인>이라는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좌담회를 열었습니다. 그 현장의 논의들이 경향신문에 기고되어서 소식을 알립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더 작게는 토론자 저마다의 활동과 위치속에서 오늘의 주제를 접근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계기 삼아서 일본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좀더 점진적으로 추진시킬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80년대 초반 시위는 대결과 돌파의 장이었는데… 2008년 촛불 땐 잠재력을 표현하고, 고양되는 마당”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고병권 ‘수유+너머 R’ 연구원(오른쪽부터) 등 한·일 인문학자들이 지난 30일 푸른역사아카데미 집담회에서 시위와 연대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ㆍ한·일 인문학자의 대화
“19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위는 ‘학우여’라는 외침으로 시작됐는데, ‘학’이라는 운을 떼자마자 상주하던 경찰에게 붙잡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데모는 실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려는 장’이었고 ‘대결의 장’ ‘돌파의 장’ 같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 세대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2008년 촛불시위 때 문화와 공연이 어우러지며 즐기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는 “ ‘대결과 돌파의 장’이던 시위가 촛불항쟁에 이르러 대결하려는 어떤 것과 대면해 잠재력을 표현하고, 그것이 고양되는 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 ‘쌍용차(S) 정리해고’ ‘강정(K) 해군기지’ ‘용산(Y)참사’ 같은 각각의 ‘점’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려고 한 ‘SKY 공동행동’ 같은 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데모·프레카리아트·공공지식인’을 주제로 ‘한·일 젊은 인문학자의 대화’가 열렸다.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임태훈씨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 한·일의 원전 반대 데모, 촛불항쟁과 ‘점거운동’에 잠재된 새로운 연대의 저력을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 2000년 이후의 한국 데모는
미국의 점거운동서 보였듯
삶의 양식 바꾸려는 움직임
▲ 데모 가능 사회로 변한 일본
반원전은 물론 혐한 데모도
한·일 협력과 연대 목청 고조
평화운동가 염창근씨는 제주 강정마을에서의 활동을 들려줬다. 그는 “강정에서 매일 기도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강정 투쟁에 참여하려면 춤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염씨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 이후 900여명이 연행되고 5억여원의 벌금이 부과됐다”며 “박근혜 정부의 탄압도 심하다”고 말했다.
한·일 활동가들의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무라카미 요코는 “한국 정부가 싫어할수록 강정마을과 더 연대하고, 데모를 필사적으로 즐겨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이라크 파병 미군들이 오키나와 기지에서 출발한 사실을 두고, “미국이 오키나와에서 이라크로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을 용인해 결국 죽이는 입장에 섰다”며 반성의 말을 전했다.
일본 문학평론가 요시타 유키타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데모 가능한 사회’로 변한 일본 상황을 전했다. 그는 “반원전 데모도 있지만 우익들의 인종주의적인 혐한 데모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 불안정이 장기화하면서 자위대나 경찰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일본 사회의 보수화를 경계하기도 했다.
‘수유+너머 R’의 고병권 연구원은 2000년대 데모가 대표나 제도를 바꾸지 못하는 문제를 두고 “통치자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과 확신이 1980년대처럼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고 연구원은 “1997년 정권교체 이후 한국의 대의민주제 발전의 한편에 그 대의제로부터 대중을 추방하는 시스템도 함께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점거(오큐파이)운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뉴욕에서 점거운동을 지켜본 그는 “그곳에서 본 것은 삶의 지배적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한국의 2000년대 이후 운동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삶의 잣대를 이동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토론 주제는 ‘프레카리아트화하는 연구자, 공공지식인의 역습’이었다. 임태훈씨는 “대학의 많은 지식인들이 부당한 계약조건을 감수하며 강의와 행정, 연구인력으로 소모된다”며 “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뜻의 프레카리아트는 대학 사회를 고발할 때 강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후루카와 다카코 도쿄외국어대 연구원도 “일본 대학이 법인화되면서 연구자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상사에게 복종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소규모 연구모임 ‘아프꼼’을 꾸리고 있는 문학평론가 김대성씨는 지역의 ‘소수성’ 문제에 대한 ‘공공-지식인’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김씨는 “숨은 공간으로 찾아드는 것이 삶의 저지선을 뚫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규모의 문제 때문에 부산에서) 광장은 점령하지 못했지만 숨은 소수의 아지트를 만나고 연계하며 비공식적인 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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