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공부하다'가 aff-com과 함께 하고 있는, 김만석 선생님의 글이 국제신문에 실렸습니다.
여유가 없었던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휴먼 타이즈(Human ties)', 인문의 가능성을 탐색해 내려가는 글입니다.
aff-com 세미나 때 여담과도 같이 이야기 되었던 일이라 더 반갑고, 친숙하게 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30일, 푸른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한/일 젊은 인문학자의 대화>와 연결해서도 생각해볼 지점들도 보입니다.
찰나를 포착해 써내려간 글이지만 그 속에 무수한 고민거리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기사들과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흥미로운 지점들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들이 같은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지는 않겠지만요.
무수한 뒤섞임이 공존하는 '결속'에서 괴로움, 우울함, 심각함이 아닌 다른 감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점,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인문과 연대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과 공유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yang)
[인문학 칼럼] 휴먼 타이즈 빌딩(Human ties Bldg)
지역 인문학, 이중적 어려움에도 사람들 엮고 묶으며 장소를 발굴해야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고 하늘을 볼 이유도 없었다. 다만, 키가 자꾸 자라 시야를 막는 걸 방지하고 조경을 위해 팔다리와 목을 잘라버린 목련 나무가 안타까워 고개를 잠시 들었을 뿐이었다. 드문드문 빗방울이 내리기도 해서, 어깨와 목을 움츠리는 찰라, 우연히 대학 건물에 붙어 있는 '인문대'라는 글자가 보였고 그 밑에 영문으로 표기된 'Humanities Bldg'라는 글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영문으로 붙어 있는 글자배열이 어딘가 기묘한 데가 있었다. 인문학을 뜻하는, 'Humanities'에서 'n'과 't' 사이에 붙어 있는 'i'의 윗점만 남겨두고 글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입에 몇 번 굴려서 발음을 해보다, 떨어진 글자를 붙여야 한다거나 그 낯선 문자의 배열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새로운 조어로 느껴졌다. '휴먼·타이즈 빌딩'.
대학이 기업적 지식이나 심성들을 구조화하는 하위 단위체로 전락했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고 '인문학'이 '힐링 산업'에 의해 하나의 테크닉으로 호출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문학을 뜻하는 영문 표기의 글자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은 차라리 상징적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주체)를 뜻하는 'i'가 떨어져 나감으로써, 배타적인 중심주의나 특권적인 섹터주의로는 재난과 위기로 뒤범벅이 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규범화된 '제도적 인문학'을 통해서는 가늠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마치 저 문자들의 배열이 대학 내에서의 인문학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사태라고나 할까.
하지만, 인문학이 늘 그래왔듯이, 이 위기(crisis)야말로 인문학이 수행해왔던 비판(critic)과 개입이 다시 시작되고 정초되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떨어져나간 글자 때문에, 인문관이 '제도적 인문 지식을 학습하는 건물(humanities bldg)'이 아니라 '인간 결속의 장소(human ties bldg)'라는 의미로 변주되어 읽히는 것처럼, 인문학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제도적 인문학의 바깥에서 '아지트'를 구축하는 수많은 '휴먼 타이즈 빌딩들'이 부산에만 십여 곳이 넘으며 최근에 제도적 인문학에서 모색할 수 없는 지속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보려 하거나 공동체를 꾸리는 시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 30일 서울의 '푸른역사 아카데미'가 주최했던 '한일 젊은 인문학자들의 대화'에서의 키워드가 '데모·프레카리아트·공공지식인'이었던 것도 우연일 수 없다. 불안정성(precaria)과 노동자(proletariat)의 합성어인 '프레카리아트'는 인문학(자)의 자립과 지속성을 심각하게 위기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집담회가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3·11이라는 재난 이후 삶의 지속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듯, 한국과 부산에서는 이와 유사한 실감이 없지 않았으니, '휴머니티'보다 '휴먼 타이즈'의 필요성에 대한 정서적 교류가 어찌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무엇보다 이 집담회에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프-꼼'(권명아, 송진희, 양순주)에서도 김대성(문학평론가) 선생님이 참여해 관련된 질문들을 보탰다는 사실을 부기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아프-꼼'의 김대성 선생님은 전 지구적으로 강화되는 삶의 불안정성을 '지역'과 '지역의 인문학'의 조건을 통해서 그 문제들을 곱씹고 통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여 일본의 인문학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달리 말해, 지역의 인문학이 처해 있는 이중적인 어려움(서울과 지역의 간극, 지역 내부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아프-꼼'이라는 '휴먼 타이즈 빌딩'을 함께 도모해간 경험치가 재난 이후를 살고 있는 일본의 인문학자들의 고민과 공명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러한 공통감각 속에서 인문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사람들과 접속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공통의 조건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하여, 서로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human)을 엮고 묶으면서(ties) 장소(bldg)를 발굴하는 것이 우리의 몫일 터이다.
김만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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