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어펙트 연구소에서 콜로키움 <대항서사(counter narrative)로서의 지역과 젠더>를 개최합니다.



연구모임 아프꼼이 '젠더 어펙트 연구소'라는 새로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자리를 함께 공부하는 것으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기존의 서사를 새로이 대항적인 것으로 발굴하는 연구를 통해 앞으로 저희가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권영빈 선생님께서는 박완서의 <미망> 분석을 통해 '여성을 소유한 개인'이 성적 계약을 통해 가족 자본을 구축하고, 그것이 '개성'이라는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과정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유승환 선생님께서는 <1920년대 토론회의 문화사>를 통해서 당대에 공유되었던 '앎'의 지반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함께 연구를 깊이 하며, 더욱 단단하게 되어가려 합니다. 


소중한 자리에 여러 연구자 선생님들께서 꼭 오셔서 공부한 바를 나누어 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 편집의 말 :

<공간힘>이라는 대안공간을 이끌어오면서 오랜시간동안 부산 문화예술 지평을 넓히는 데 애를 써오고 있는 미술평론가 김만석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10월 26일 저녁 <공간힘>에서 있었던 오용석 작가의 강좌와 10월 27일 저녁 <아프콤 월례발표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던 예술적 표현과 발언의 정치적 의미와 두 모임 사이에 공명하고 있는 교류의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좌측 : 박수지 발표자 / 우측: 양창아 토론자

 

 

한국미술사에서 퀴어의 위치는 여전히 주변적 경향성이다. 예술에 있어서 퀴어의 범주나 개념 역시 역사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고 있고 이들의 역사와 실천이 탐구되거나 논의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에서 퀴어 문제는 미술적 지형에서 새로운 흐름이며 도전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주제는 논쟁적이고 아직 구성되지 않은 것으로서 펼쳐져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0 26일 목요일 저녁 7<공간힘>에서 오용석 작가의 강좌가 진행되었다. 강좌의 제목은 젠더를 넘어서’. 27일 금요일 저녁 7<아프콤 월례 발표회>(부산컨텐츠코리아랩)에서는 박수지의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퀴어-정치가 발표되었다. 이틀 간 밤마다 퀴어에 관한 이야기 혹은 퀴어로 예술하기와 살기 그리고 연구하기가 이루어졌다. 참여자들은 스무 명 내외. 이 작고 소소한 자리야 말로 퀴어를 둘러싸고 앉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귀하고 귀하다. 두 번의 밤과 두 번의 공연. 퀴어가 스스로를 다른 방식으로 상연하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자리라면, 이 두 번의 밤과 공연은 참석자들을 흔들고 요동치게 만드는 자리이고 그 순간을 나눈 경험은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틀의 밤은 모두 무대에서 진행되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공연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이다.

 

제니 리빙스턴,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0)>의 한 장면

 

첫 번째 밤(26). 오용석은 레나타 로렌츠의 <Queer Art : A  Freak Theory>에서 제시된 퀴어 이론과 미학을 설명했다. 이 책의 저자가 갖는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1990년대 이른 바 에이즈 위기라는 상황에서 게이해방전선의 예술적 싸움과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했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마돈나의 뮤직비디오에서 나타난 보그’, ‘보깅을 예로 들면서, 무대 위에서 공연자들이 1980년대 흑인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실천들을 차용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긴 장식이 달린 모자와 화려한 깃털로 이루어진 의상들을 <파리 이즈 버닝>이라는 흑인 퀴어 공동체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보깅>, <보그>가 주류 문화 속에 어떻게 치환/차용되는지를 감각하도록 만들었다. <보그><보깅>은 흔히 ‘DRAG’과 같은 뉘앙스로 활용되는 것인데, 의상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변용하는 방법인 드랙이라는 전략은 계급, 계층, 인종, 젠더를 무대에 올려 그것의 경계가 분명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강연자가 보내준 요지서에 따르면 레나타 로렌츠가 1990년대 이후 퀴어 예술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가 내세우는 관점은 프릭드랙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릭은 프릭쇼와 같은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가정된 정상성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저자가 퀴어를 급진화하기 위해 차용한 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퀴어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지배적 시선과 논리를 급진적으로 전유해 퀴어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릭은 역사적 유산들을 기괴한 것으로 그래서 퀴어로 전유함으로써, 과거를 (몸으로) 다시 쓰는 일을 중요한 실천으로 삼은 예술들을 대상으로 한다. 드랙은 단순히 의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몸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랙은 이러한 규범들, 예컨대 양성체제, 백인임, 비장애인임, 그리고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거리를 생산하는 일련의 효과적인, 수고로운, 한편으론 친숙하고 한편으론 공격적인 방법론들을 조직하는 한 방식이다.”

 

 

이 두 조건을 통해 레나타 로렌츠는 퀴어 예술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1)급진적 드랙 2)전환시간적 드랙 3)추상적 드랙. 이 세 범주의 논리는 젠더’, ‘역사’, ‘지각을 동시대 퀴어의 관점에서 재전유함으로써 제시한다. 가령, 퀴어와 무관하지만 부드리와 로렌츠의 공동 작업인 <살로메니아>(2009) 1923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퀴어로 전유하고 무대 위에서 재상연하도록 배치하는 작업을 전환시간적 드랙으로 범주화한다. 이 작업의 전략은 기존의 예술사, 영화사는 물론이거니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역사를 퀴어의 역사로 배치하고자 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살로메라는 극적 인물이 퀴어내부에서 재해석되고 재공연되는 이었다는 사실 역시 주지해야 한다. 요컨대, 퀴어 예술에 대한 한 지도를 그리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레나타의 흥미로운 참조점을 제공한다는 것.

 

두 번째 밤(27). 보다 중요한 사실은 강연자가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퀴어의 역사화 작업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퀴어는 게토에 머물러 있음을 강하게 자각하면서, 자신은 몸과 작업의 일치가 일어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연자는 퀴어 내부의 위계화 문제 또한 제기하면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게이해방전선에서 배제되었는지를 보여주며 향후 퀴어 구성의 문제를 한국사회 내부에서 고민하려 한다는 말을 했다.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다음 날 밤, 아프콤월례발표회(4)의 플로어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주유신)과 공명했다. 퀴어 씬 내부의 위계화 문제는 퀴어 문제를 다룰 방법적 논의가 무척 중요해지는데, 이에 대한 한 응답이 전날 밤의 논의를 통해서 일정부분 이루어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와 관련하여 발표자(박수지)퀴어성’(이 용법은 다소 불분명한 표현으로 보인다)이라는 게 만약 정치가 될 수 있다면, 이들이 가시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플로어에서 퀴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의 총체를 다만 퀴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면, 이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퀴어가 이름을 도무지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있음의 상태를 규정하는 퀴어성이라는 범주적 표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권명아)라는 관점을 이야기했다. 퀴어가 다만 당사자 운동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데도, 당사자로서 운동으로 귀착시키는 논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제시했다. 이는 토론자(양창아)의 수많은 질문들과도 공명하는 논의이기도 했다.

 

 

 

이 논의에서 퀴어를 둘러싼 문제의식들, 그러니까 1990년대 이후 해소되지 않고 진행되어온 저간의 담론적 맥락과 쟁점들을 해소하지 않고 온 사정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관점이 피력되었다. 정체성이 주요한 의제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영역이 페미니즘의 선후배 세대가 교차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대화의 자리라는 것을, 페미니즘의 역사를 쓰는 영역이라는 사실이었다. 페미니즘 내 세대적 갈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은 엡데이트로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반복을 피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함께 기획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다만 여성의 이론이 아니라 소수자 해방 정치를 위한 기획을 실현하는 영역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아프콤의 월례 연구/발표회는 드문 자리일 것이다. 여러 연구자끼리 교류하는 자발적 모임이 사실 상 전무한 부산에서 이 연구/발표회가 점점 취약해져 가는 연구자 지반으로 꾸역꾸역 일구어 나가는 지역에서는 무엇보다 귀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아프콤의 멤버들의 수고로움이 가시적 성과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간을 더할수록 참여자와 밀도를 더 해 가는 과정은 향후 연구자들의 고립을 해소하는 데도 중요한 몫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과장이겠지만 어떤 기대와 모종을 삽입해두는 건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지역의 대학에서 대학원을 중요한 목적으로 사고하지 않게 되어버린 현실은 안팎으로 연구자들의 장치를 모색하게 만들고 있으니, 외려 긍정적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fin)

 

 

 

 

아프꼼 3차 월례 연구 발표회

나카야 이즈미, 수탈당하는 여성표상 발표 참관 후기

 

박 수 진

 

 

   난 금요일, -학교와 그 외피씨방(매우 중요)집의 패턴을 거의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제게 좋은 자리가 있으니 가자! 하고 끌고 나가준 여러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동아대에서 있었던 아프꼼 월례 연구 발표회에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발표회가 있으니 시간이 괜찮다면 가자는 권유를 받은 것은 한주 전, 그때라도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여쭸더라면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여유로울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애살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던 탓에 그날의 발표 주제가 해외 연구 소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동아대로 출발하기 한 시간 전쯤이었으며, 심지어 그 해외 연구자께서 직접 오셔서 발표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세미나실에 들어간 직후였습니다. 덕분에 그 자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름의 준비(?)를 하셨을 다른 분들과 달리 전 자리에 앉은 직후부터 아차……. 논의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는지……. 아득함과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러나 그런 고통은 정작 발표가 시작되자 그다지 의미 없는 걱정이 되어 사라지게 되니, 나눠 받은 요약지에 쓰여 있던 차례에 따라 충분한 설명을 곁들여주신 발표자와 곁에서 발표자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공들여 통역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신현아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논의의 시작은 생활기록의 필자들’, 즉 어린이의 작문 문체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공들에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색채가 미디어를 거치면서 일어난 맥락의 삭제로 인해 성장 도중의 주체로 읽히게 되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이 글쓰기는 단순히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쓰기 공동체 내에서의 대화가 전제된 글쓰기였기에 쓰인 것 이상의 출구 모색을 위한 주체의 치열한 과정이 있었을 테지만, 이것이 미디어를 거치고 비정치적인 글이 되는 과정은 마치 그렇게 열심히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갔을 여공들이 결혼 후에는 자신이 그 이전에 해온 많은 주체적인 것들이 삭제 당한 채 가정이라는 테두리 내에 속박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의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에 비정치적인 것으로만 읽히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그들을 성장 도중의 주체로만 보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이 얼마나 폭압적인 것인지는 이어서 나온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발표자께서 요약자에 적어둔 대로, 말 그대로 이야기의 수탈이었습니다. 사실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했는데(최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호 스트레인 독스를 통해 또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믿고 일기장을 보냈던 아리아케 시즈의 이야기를 가로채 소설로 바꿔 쓰며 서술자의 이미지를 섹슈얼리티와 접속시킨 행위는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성장 과정 중의 여성을 정지시키고 그 순간을 박제하고자 하는 기이한 욕망, 즉 소녀에 대한 기분 나쁜 집착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중문화물을 적지 않게 접했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역시 이런 건 단순히 예능 사업이나 애니메이션 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또 이처럼 여성을 한 자리에, 한 시간에 붙들어 두고자 하는 시도는 일본의 문제만도 아닐 겁니다.

 

 

  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발표자께서는 아마도 소녀라는 이미지가 현대에까지 문제적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서사 장르인 애니메이션을 가져오셨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텍스트의 선택에 있어서는 조금 많은 부분을 간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일 겁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은 이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엔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시장이기는 하지만(그런데 또 알 수 없지요, 넷플릭스가 들어간다니까. 예토전생 기대해봅니다.), 그래도 한때 소녀만이 아니라 소년을 만들어내는데도 크게 일조했던 서사 장르입니다. 이데올로기가 젠더의 선을 가르는 데 있어서 첨단의 도구였던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간이 박제된 소녀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하셨던 발표자의 시도는 긍정하지만, 동시에 오타쿠 계 내에서의 반성과 거기서 비롯된 장르 내외의 대중적 효과가 일본의 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너무 단순하게 읽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발표자의 논의 중에서도 아주 국소적인 부분에 해당하지만 후기에까지 이 부분 때문에 분량을 넘긴 걸 보면 사실은, 제법 곱씹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고 이렇게 소심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발표 이후에 이어졌던 자리까지 따라간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권명아 교수님과 동아대 선생님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하셨던 다른 연구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선생님들의 문제의식과 다양한 연구 주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가자고 하니까 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제가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몸을 조금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리가 있었던 덕분에 찾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고, 덕분에 제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자리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제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프꼼 3차 월례 연구/발표회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후기

 

신민희

 

 

프꼼 3차 월례 연구/발표회에 대한 후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할수록, 좋은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면 가질수록 왜 이와는 점점 멀어진 채, 자질구레한 어릴 적 나의 글쓰기 경험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을 규명하는 일이, 어느 지점에서 발표회의 후기와 맞닿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남해군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열었다. 그때 제시된 주제는 가족이었는데, 그 당시에 나는 가족의 위기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경제적으로 위태로웠는데, 그해는 한국 전체에 IMF위기가 불어닥치던 때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고통은 경제적 궁핍이라기보다 부모님들의 무기력함, 분노, 짜증을 보는 일이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기억하는 일은 사실 부모님의 대화를,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전화통화를 엿듣는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도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저 엿듣고 훔쳐보면서 가늠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런 방식이 내가 가족의 위기를 더 크게 공포로 인식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큰 공포와 불안감이 가족이라는 주제 앞에서 글을 쓰게 했던듯하다. ‘우리가 너무 가난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면서도 글을 썼던 기억, 쓸 수밖에 없었던 기억. 이것이 나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었던 것인지, 글을 쓰는 일을 생각하면 늘 이때의 경험만이 떠오른다. 엿듣는 위치에서 내가 나의 고통을 글로 썼다는 경험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경험이 떠오르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때 쓴 나의 결말이 늘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우리 가족이 이 위기를 극복해,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은 것. 그 당시에도 내가 그 글을 마무리하면서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를 봉합해버렸다는 기억이 있다(하지만 이 극복의 의지가 없었다면 상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앞의 글의 전개가 어떠했든 글의 결말이란 으레 그런 방식으로만 마무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상상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이 결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고, 그리고 누군가 나의 글을 심사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금 나의 글쓰기가 이날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그리고 멀리 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해방과 검열의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 자체가 나의 글쓰기 동력이 되고 있음을, 그로부터 나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어릴 적 글쓰기 기억을 반추하는 일이 후기 쓰기에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연구/발표회가 적어도 내 글쓰기를 반추하게 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을 함께 나눌 다른 동료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된 귀한 경험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研究会affcom 月例研究/発表会

 

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ジェンダー・階級・アイデンティティ

 

 

 

今回の研究/発表会には日本の文学研究者中谷いずみ先生の『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を一緒に読みます。

声がない存在たちはいくつかの名前に呼名されました。その中で「民衆」という名前は長い歴史と様々な意味が重なっている歴史的ば名前です。『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は1930年代から1950年代まで日本で民衆主義体制が構築されていた期間中に、「民衆」という名前が呼名される時に発生される権力とアイデンティティの力学を分析しています。

 

<論文PDFリンク>

女子工場労働者の綴方: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f721230d30ec11bec85d2949c297615a

‘소녀’들의 이야기의 행방: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6ae4efbb207f47efd18150b21a227875

 

 

2017。09。28(木) 午後6:30
東亜大学スンハクキャンパス人文大学7階705号

 

연구모임 아프꼼 월례 연구/발표회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 젠더/계급/아이덴티티


 

이번 연구/발표회는 일본의 문학연구자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의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를 중심으로 열리게 됩니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주변부의 존재들은 매번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어 왔습니다. 그 중 '민중'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중요한 의미가 쌓여 있는 역사적인 이름입니다. 『그 민중이란 누구인가(その民衆とは誰なのか)』는 1930년대부터 1950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가 구축되는 시기 속에서 '민중'이라는 이름이 호명될 때 발생하는 권력과 정체성의 역학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 저작에서 주목하고 있는 1950년대 일본 노동자들의 서클운동을 1970-1980년대 한국노동자의 활동과  겹쳐 읽어보고 매번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지만 그 이름 바깥으로 나아가려던 주체들, 다스려지지 않는 존재들의 역사적인 역능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9월 아프꼼 월례 연구 발표회에서는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의 <여자공장노동자의 글짓기(女子工場労働者の綴方 이영재 역)>와 <'소녀'들의 이야기의 행방(少女たちの語りのゆくえ 신현아 역)>을 다룹니다. (riss에 접근이 어려우신 경우 메일 주소를 댓글오 달아주시면 보내드릴게요~)

<논문 pdf 다운 링크>

여자공장노동자의 글짓기: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f721230d30ec11bec85d2949c297615a

소녀들의 이야기의 행방: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6ae4efbb207f47efd18150b21a227875

 

일시: 2017년 9월 28일 오후 6시 30분
장소: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A705

 

 

 

<테크네-인문/테크 프로그램 개발> 연구팀, 동아대 링크 플러스 사업단, 학부생 프로그램 참여 피드백 노트연구모임 아프콤(off-com) 월례발표(2) 회로들 속에서 : 미디어, 세대, 정체성




'원래 그러함'의 그렇지 않음에 대하여




박채린






1. 페미회로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확정되지 않는 다양성의 정체성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근대의 나혜석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여성 예술가들은 이상한 여자취급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페미니즘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시간이 지나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일상화 된 혐오발화의 세상에서, 물 밑에 잠겨있던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소위 말하는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을 통해 그간 문제시 되지 않았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페미니즘적 문제상황들이 폭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에 예술계, 문단계의 성폭행을 고발하는 해시태그운동이 일어나면서 원래 그쪽은 그래원래 그러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책이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놓이고, 여러 페미니스트 단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적은 수이지만 여성학과 페미니즘을 다루는 수업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편한 방법으로 페미니스트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취약점이 있다면, 상황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과 지나친 정보의 중앙집중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KAIST, UNIST, DGIST, POSTECH, GIST로 이루어진 이공계 특성화 대학은 그 위치가 지방, 그 속에서도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 학교 간의 교류가 힘들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터넷밖에 없으며, 남녀 성비가 약 3:1이라는 이공계라는 학문적 특성 때문에 여성학 관련된 수업이 거의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페미니즘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는 학문의 영역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진입하기도, 그 속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이 부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 속에서 페미회로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공계의 실력중심주의에 가려진, 그리고 개별의 문제로 환원되어버리는 수많은 젠더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또 다른 원래 그러함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 연합의 페미회로는 인터뷰 프로젝트, 북 큐레이션,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면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한 개의 확정된 흐름이 아닌 여러 개의 흐름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확정되지 않은 다양성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직면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과제는 많지만, 그들이 스스로 취약점을 분석하여 찾아내고 그것을 보안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어서, 쉽게 생기고 사라져버렸던 여타 다른 페미니즘 단체들과의 차이점으로 둘 수 있다.

 

2. 폐쇠회로 Tv키즈 CCTV공시족- 죽어버린 공부의 거대화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개개인의 삶을 보안이라는 명목하의 더욱 세밀하고 정확한 감시 속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 또한 충족시키기 위해서 엄격한 출입보안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는 현재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들이 대거 집중되어있는 공무원 시험 시스템 속에 파고들어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업종의 기업이 이윤을 취하는 기이한 시스템을 형성시켰다. 아무리 좋은 명문대를 나와도 결국에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길로 들어서는 청년, 점점 낮아지는 퇴직의 나이에 제 2의 안정적인 직장을 준비하려는 중장년층 등 공무원 시장은 포화상태를 넘어서 이미 폭발의 상태에 도달해있다. 이러한 상황은 개개인의 합격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더욱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고자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생활을 감시체제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장난을 가장한 합격자 쳐내기가 만발하는 흐름 속에서 공시생들은 닭장 같은 한 칸의 책상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사각형의 전자화면, 사각형의 책만 보면서 지내는 것이다.

커질대로 커져버린 공무원 시장의 악순환은 묶여있는 청년들의 엄청난 기회비용만을 보고서 한 번에 끊어내기도, 어떠한 방안을 내세우기도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불안정해지는 사회에서 안정적인 것을 찾고자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과포화의 상태는 대체할 길을 만들어 낼 새도 없이 폭발해버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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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딱딱한 분위기에서 발표를 하는 형식인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시작을 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는 분위기여서 놀람 반, 안심 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루는 주제들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이어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직면해 있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한번 더, 그리고 또 한번 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약 학교 수업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다룬다면 현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현실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나아갈 길을 약간이나마 같이 모색해 나가는 방향으로 흐름을 정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미래는 주체적으로 찾아가야 함이 맞지만, 희미한 가이드 라인 조차 없는 여백의 상태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공계열의 페미니즘 수업은 그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그러함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있는만큼, 그것이 왜 원래 그런것이 아닌가 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즐겁고 신선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번 만남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연구모임 아프콤(off-com) 월례발표(2) 

회로들 속에서 : 미디어, 세대, 정체성

2017년 8월 18일_부산





페미니즘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분야를 막론하고 페미니즘이 붐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미회로>는 과학기술계 내의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는 모임이다. 결성 초기엔 페미니즘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과학을 한다는 것의 정체성이 너무 강한 공간’이어서 대개 ‘실력으로 인정 받으면 된다’는 논리가 절대적으로 발휘되는 탓에 젠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공계 내의 성차별 사례들을 모으지 않으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전달하고 증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기에 연합을 통해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구조가 내부적으로 워낙 조밀하게 나뉘어져 있고(실험실, 분반, 동아리 등) 소문이 너무 빨리 퍼지며(‘쟤 매갈이라던데?’) 페미니스트로 오인 받지 않게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연대가 무척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과학기술계의 상황과 잘 어울리지 않은 형편과 넷페미의 논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는 조직적인 조건 또한 있었던 터라 <페미회로>의 활동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쯤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슈파이팅이나 이슈메이킹보다 시급한 이공계 내의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주류 페미니즘 진영의 중요 이슈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발표 현장에서 현재 페미니즘 운동의 특징과 문제들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무척 많은 의견들을 이끌어내었다.


지역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여성학 관련 수업 및 세미나를 접하기 어려운 형편과 불균형한 성비. KAIST 마고, POSTECH 포스텍 페미니즘, UNUST 오프코르셋 등 지역의 과학특성화대학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조직적 움직임과 연대를 모색하게 된 것은 2015~2016년에 불거진 SNS 상의 페미니즘 담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디에서 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각각의 지역이 달랐던 탓에 연락을 취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페미회로>의 회의 및 기획이 주로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지역 간 거리 차이와 구성원 절반이 대학원생이어서 실험 일정 때문에 오프라인이 주가 되면 오히려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악한 여건 속에서 활동을 하는동안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주요 활동 무대와 형식이 온라인이긴 해도 SNS 상의 광역 연결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고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은 온라인 운동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회로>의 지리적 특성상 지역에 거점을 두고 할 수 있는 활동과 지역 이공계 중점 대학의 삶(들쑥날쑥한 실험실 스케쥴, 주변 대학과의 교류 미비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약적 조건’이 외려 모든 활동은 유연해야 한다는 내부 원칙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페미회로>의 주요활동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삶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여성과학기술인 배제문제와 성차별적 과학지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젠더서밋 스토리펀딩’, ‘매달 두 권식 SF, 페미니스트 STS, 혹은 과학과 젠더 관련 책을 읽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북큐레이션’, 이공계 대학 내에서 겪는 성차별을 기록하는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이슈를 정해놓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나간다고 한다. ‘성평등을 코딩하라’ 상영회나 여성과학기술인 배제 문제를 거론한 ‘March for Science’와 같은 활동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비교적 짧은 이력에 비해 아주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은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활동이 다 다르기 때문인데 조직적인 운동의 경험이나 학습이 없었던 이유로 매번 달라지는 활동이 외려 혼란스럽게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스스로의 활동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정체성 찾기 회의’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었는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자의 입장을 공유했던 그 시간이 무척 흥미 있게 들렸다. 페미니즘 운동이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강해 국지적이고 개별적인 이슈를 귀담아 듣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페미회로> 내부의 회의들 속에서 구체적인 이력을 듣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페미회로>의 활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학술대안운동의 형식과는 다른 운동체이자 연대체의 사례로 읽혔다. 기존의 코뮨운동이 대의를 모임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개별적인 관심사와 욕망을 인정하면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페미회로>가 자유주의자들의 느슨한 연대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공계 대학 내의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조리돌림과 폭력, 조직 내에서의 왕따라는 직접적인 폭력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하자면 코뮨적 이력이 전혀 없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페미회로>의 활동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평가하는 비평 또한 이들의 정체성을 전공과 일치시켜버리거나 환원해버리는 측면 또한 있다. 1시간동안 ‘막힘없이, 꾸밈없이, 체계적으로’ 이어졌던 <페미회로>의 발표는 기왕의 것과는 조금 다른 연대체이자 운동체의 중요한 사례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연구모임 아프꼼 제2회 월례 연구/발표회

  <회로들 속에서: 미디어, 세대, 정체성>



이번 월례 연구/발표회는 과학기술중점대학교 페미니즘 연합모임인 <페미회로>의 강미량님과 테크놀로지-인문학 연구자인 임태훈님의 발표를 듣고자 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연결 가능한 “개방-회로” 위에서 서로 경합하고 발산하며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연합-회로와 일방향적 회로에 찍거나 찍히며 폐쇄 회로를 맴도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과 포착되지 않는 만남을 발신할 수 있을까요?

연구와 만남이 있는 월례/발표회에 오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시: 2017. 08. 18. 금. 오후 2시
장소: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국제관 B5-0409

 

 

연구모임 아프꼼 제 2회 월례 연구발표회

   회로들 속에서: 미디어, 세대, 정체성

 

2017. 08. 18. PM 2:00~5:00

동아대 부민캠 국제관 B5-0409

14:00~15:20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페미회로

15:20~15:40

휴식

 

15:40~17:00

<폐쇄회로 TV 키즈>

임태훈

 

 

<‘로컬-대안-연구장’을 위한 구상>에서 발표될 네번째 글 소개입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문화적 재현: 해방 이후부터 50년대를 중심으로>

(<문학3>, 2017년 2호 게재)


 

장수희

 

 

 

 

 


 

작년 대구의 희움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은 1주년 기념으로 문옥주 20주기 추모전 <옥주씨,>라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부대행사로는 문옥주 여사의 일대기를 쓴 모리카와 마치코 씨의 강연과, 키리타니 나츠코 씨의 낭독극이 있었다. 모리카와 씨도 문옥주 여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왔던 대구에서 문옥주 여사와의 만남과 증언들, 그리고 그 증언을 기록하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고인을 생각하며 눈물이 고였습니다. 연기자인 키리타니 나츠코 씨는 문옥주 여사의 증언을 낭독극으로 공연했지요. 키리타니 씨도 낭독을 하며 그 공간에 ‘옥주상’이 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눈물을 잠깐 흘립니다.
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문옥주 여사의 삶이 일본어로 담담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벅찼습니다. 문옥주 여사의 경험이 일본어로 전해지고, 일본어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고, 그 한국어가 돌고 돌아 나에게 도착합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은 각기 다른 삶의 결과 서사와 말과 문장으로 우리에게 도달해왔습니다. 소설은 그 한 방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의 삶이 재현된 작품의 ‘세계’와 나에게 그녀들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도착한 ‘세계’는 간단하게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요? 1990년대의 증언과, 해방 직후 소설의 세계,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발표되는 일본군‘위안부’를 재현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의 세계. 이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변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우리에게 발견되고, 또 발견되지 않았는지는 아마도 일본군‘위안부’ 재현의 계보가 완성되었을 때 다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부감을 가진 일본군‘위안부’들의 삶을 더듬는 것-그것이 이 계보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그 시작을 이 발표에서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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